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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떠나기 전 소원한 것... 헤이리에서 찾습니다

[어둠의 재발견] 잃어버린 가치, 어둠

등록|2014.12.11 14:39 수정|2014.12.11 14:43

▲ 밝은 스탠드 조명대신 0,7W의 전구를 켠 서재 ⓒ 이안수


#1

대처를 사는 우리의 잃어버린 보물 중의 하나가 어둠입니다. 도시에서 아니, 사람이 사는 모든 마을에서 이제는 칠흑 같은 어둠을 만날 수 없을 듯합니다. 

거리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 새벽에도 간판은 밝게 빛을 쏟아놓습니다. 인적이 끊긴 시간, 길목마다 가로등이 어둠을 쫓고 있습니다.

헤이리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저는 어제(12월 10일) 한 어머님으로부터 예약전화를 받았습니다.

"모티프원의 한 공간을 예약하고 싶습니다. 아들과 함께하는 여행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별을 볼 수 있는 곳을 원해요. 헤이리에는 아직 별이 있지요?" 

유학을 떠나는 고등학교 2학년의 아들이 한국을 떠나기 전 소원한 두 가지는 '엄마와 단 둘만의 시간'과 '별빛'이었습니다.

#2

별을 보기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합니다. 헤이리는 네온사인을 금하고 있습니다. 고개 숙인 가로등의 조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긴 토의가 필요합니다.

▲ 가로등이 도열한 헤이리 심야의 밤 ⓒ 이안수


​그 결과 제법 촘촘한 별들의 무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갈대늪에서 반딧불이를 목격할 수도 있었지요.

▲ 수년전,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던 헤이리의 갈대늪 ⓒ 이안수


그러나 앞으로도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영업이 끝나고도 간판의 불을 끄지 않는 집이 늘어나고 빛축제와 루미나리에를 거론하기도합니다.

점점 별빛은 희미해질 테고 그 자리를 '별빛축제'라는 전기조명이 대신하는 눈부신 밤의 도래를 얼마나 더 미룰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불을 끄고 별을 켜는 마음으로 0.7W짜리 LED전구 하나를 샀습니다. 서재에 혼자 있을 때면 간혹 천장의 조명이나 스탠드 조명을 끄고 촛불밝기 정도의 이 전구를 켜고 책을 읽습니다. 초가 타는 향기와 서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촛불처럼 위험하지 않고 산소를 태우지 않으니 서재 안 공기의 산소농도가 낮아지지도 않습니다.

▲ 병속에 담긴 0.7W의 전구가 제게 잃어버린 서정, 어둠을 새롭게 일깨워주었습니다. ⓒ 이안수


이 작은 전구는 제게 어둠에 둘러싸인 고요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12월 28일, 별빛을 원했던 그 분이 오시는 날 밤, 그 모자(母子)를 위해 이 0.7W의 전구를 켤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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