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돌아온 모국의 영광
국가인권위, 2014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자로 고 이주헌씨 선정 수상
지난 10일(수),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세계인권선언 66주년 기념식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인요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국민훈장 근정훈장을, 서인환 한국장애인재단 사무총장이 국민포장을 각각 수상하고 10명의 개인이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표창을, 5개 단체가 단체상을 각각 수상했다.
그런데 이날 수상자 중에는 해외 국적을 가진 자로는 두 번째, 고인으로는 유일하게 고 이주헌 의료선교사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고 이주헌씨는 1935년 황해도 남천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에서 심장내과 의사로 일했다. 타이트워터 한인침례교회에서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활동하던 이씨는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을 위한 선교 파송을 결심하고 1992년 러시아 극동 하바로프스크로 아내와 함께 선교를 떠났다.
하바로프스크에서 현지 러시아인들은 물론 고려인, 북한 벌목공들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물심양면으로 치료했다. 탈북자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95년 3월, 이씨는 물론 이씨의 부인도 함께 자택에서 피살된 채 발견됐다.
그 때, 그 사건의 전말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다. 당시 이 사건을 두고 당시 미국 국적자였던 이씨 신분상 미국과 러시아, 북한과 한국 모두 외교적으로 민감한 상황에 접어들기도 했다.
이씨는 일본에서 한국인 의학박사 1호이자 평생 농촌의료사업과 군산 개정중앙병원과 개정간호전문대학등을 설립하는 등 한국의 슈바이처로 칭송받는 고 이영춘 박사의 조카이자 몽골 울란바타르대학교를 설립한 윤순재 총장의 매형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이자 군산와이즈멘 총재를 역임한 이주민 이사장의 친형이기도 하다. 사회봉사와 기독교적 정신에 입각한 이씨의 집안 분위기는 이씨를 사랑과 헌신의 길로 이끌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씨 부부의 시신은 버지니아에 나란히 안치돼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씨의 동생인 이주민 전 군산YMCA이사장이 대신 인권상을 수상했다. 실로 20년 만에 돌아온 영광의 상이었다.
▲ 고 이주헌씨의 동생인 이주민 전 군산YMCA이사장이 고 이주헌 선교사의 대힌민국 인권상을 대신 수상하고 있다 ⓒ 이영일
그런데 이날 수상자 중에는 해외 국적을 가진 자로는 두 번째, 고인으로는 유일하게 고 이주헌 의료선교사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고 이주헌씨는 1935년 황해도 남천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에서 심장내과 의사로 일했다. 타이트워터 한인침례교회에서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활동하던 이씨는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을 위한 선교 파송을 결심하고 1992년 러시아 극동 하바로프스크로 아내와 함께 선교를 떠났다.
▲ 고 이주헌 의료선교사. ⓒ
그 때, 그 사건의 전말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다. 당시 이 사건을 두고 당시 미국 국적자였던 이씨 신분상 미국과 러시아, 북한과 한국 모두 외교적으로 민감한 상황에 접어들기도 했다.
이씨는 일본에서 한국인 의학박사 1호이자 평생 농촌의료사업과 군산 개정중앙병원과 개정간호전문대학등을 설립하는 등 한국의 슈바이처로 칭송받는 고 이영춘 박사의 조카이자 몽골 울란바타르대학교를 설립한 윤순재 총장의 매형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이자 군산와이즈멘 총재를 역임한 이주민 이사장의 친형이기도 하다. 사회봉사와 기독교적 정신에 입각한 이씨의 집안 분위기는 이씨를 사랑과 헌신의 길로 이끌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씨 부부의 시신은 버지니아에 나란히 안치돼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씨의 동생인 이주민 전 군산YMCA이사장이 대신 인권상을 수상했다. 실로 20년 만에 돌아온 영광의 상이었다.
▲ 고 이주헌 선교사의 러시아 활동 모습. ⓒ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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