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동행하는 길에는 '왜'가 필요없어요"
깊은 산골의 치료감호소에서 삐뚤삐뚤한 소감문
▲ 발표 직전의 '몸으로 표현하는 숲'의 주제에 맞게 푸른 숲이미지의 플랜을 설치하였다. ⓒ 이영미
산골의 치료감호소에서 온 팩스 소감문
야근하면서 오후에 온 팩스를 읽었다. 그리고 서점에 가서 책을 몇 권 보냈다. 팩스를 보낸 그들에게 보내기 위해서다. 여러 명이 쓴 글씨를 모아서 보낸 팩스는 온통 삐뚤삐둘한 글씨들이 많다. 그래도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찡'하다.
애칭이었던 오뚜기의 모습과 반장을 맡았던 홍두깨. 홍두깨님은 발표 때 숲의 사자역할을 맡았는데 아직도 자기도 모르게 운동하느라 몸을 움직이면 "어흥.. 어흥'한다고 하는 글에 절로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안녕하십니까? 무용교육할 때 애칭 독수리입니다. 이번 무용으로 해서 내 체력이 달라졌습니다. 밥맛도 좋아졌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 더 해보고 싶습니다. 할 말은 많지만 글씨가 서툴러 이만 줄이겠습니다."
"저는 커뮤니티 댄스를 하면서 굳은 몸이 많이 풀렸습니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이나 모든 것들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율동이 저를 신세계로 인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구르고, 뒤로 구르고, 옆으로 구르고, 모든 것이 저의 몸을 달달 볶아 숨은 근육까지 틀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굳은 저의 몸 움직임을 그나마 빠르게 만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제가 '몸으로 표현하는 숲'이란 주제에서 제가 맡은 역할인 '고릴라' 에 대해서 말인데요 아직도 주변에서 저를 보면 "아아아..!" 이렇게 놀립니다. 교육을 마친지 1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후유증으로 저를 달랩니다. 언제 또 다시 우리가 이런 교육을 받아 발표를 할 수 있을까요?"
"여지껏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봐서 색다른 경험이었고 참 재미있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소극적이었는데 동물 커뮤니티 댄스 발표를 하고 나서는 야외체조를 하러 나가 체조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흥 어흥 소리를 내고 맙니다. 그만큼 발표준비에 몰입하였나 봅니다. 발표회할 때 앞에서 관람했던 치료감호소 환우들은 의아해 하겠지만 저는 처음에 나무씨에서 씨를 뿌려서 자라나는 뿌리싹으로 시작하여 표현하고 그 뿌리가 자라서 가시 나무가 되었다가 다시 동물 사자가 되는 역할에서 정신과 마음이 굳건하게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2015년 양띠년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올해 한 해 동안 계룡산 근처에 있는 반포면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 새로 생긴 병동에 보급한 프로그램의 교육생들이 보낸 소감문이다.
왜 그들이 이곳에 왔는지 모르지만...
전국의 교정시설에 수용된 수용생들 중에서 일반수용생들과 함께 하기 어려운 다양한 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감호하면서 치료를 하는 곳이 바로 국립법무병원이다. 이들에게 몇 년 전부터 예술치유교육프로그램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 수년 전부터 '난타'와 현대무용 및 커뮤니티 댄스 등을 기획하여 치열한 공모에 프로그램을 설계하여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정되면 보급하였다. 프로그램의 설계에는 교육의 커리큘럼 뿐만 아니라 교육에 소모되는 모든 재료와 교육을 실행하는 강사기용과 추진방법과 중간점검 그리고 발표 및 평가와 분석과 정산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올해 처음 시작할 때 나는 교육을 실행하는 강사가 다리골절상을 입어 난감했다. 그러나 자원관리적인 면에서 인적자원을 항상 관리하고 있어서 그 방면에 노하우가 많은 노련한 실력있는 예술단체 대표분을 섭외해서 특강을 한 동안하였다.
아주 더웠던 혹서기에는 선풍기도 에어콘도 없는 강당에서 구르고 뛰고 함께 몸을 부비면서 무용교육을 함께 하였다. 그러나 매주 또는 격주로 도경계를 지나 그 곳에 가는 날이면 나는 운전의 피곤도 모를만큼 어떤 좋은 기운과 함께 하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비가 몹시 와서 개울에 바퀴가 빠진 적도 있고, 눈이 펑펑와서 살얼음같은 외진 도로를 지날때도 있었다. 하지만 반갑게 맞이 하는 간호사들과 한 주를 참 기다렸다는 듯이 전심으로 교육에 집중하는 그들을 만나면 뭔가 뭉클하는 것들이 항상 내 가슴을 실로폰처럼 울렸다.
이른 봄부터 시작된 교육은 12월 초에 종강을 했다. 그리고 종강 바로 전에는 종합발표회를 치렀다. 무슨 죄로 교정시설에 들어갔고, 어떻게 해서 그 안에서 조차 어울리지 모르고 외딴 곳에 따로 감호되어 깊은 산골의 병실에서 살아가는지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그들도 깊은 상처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입었고 깊은 상처 속에 있을 때 나의 심신을 살려나갔던 것이 '예술과 사랑의 기운'이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가 나눌 수 있는 예술의 물줄기를 나눈다는 것이다.
예술로 동행하는 길에는 동행자에게 "왜?" 라는것이 필요없다는 생각이다. 간혹 누군가는 왜 그들이 그곳에 왔는지 무척 궁금하여 간호사에게 또는 교도관에게 질문하지만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그들에게 온 팩스의 소감문은 무척 짧다. 왜냐하면 지적장애인이 대부분이고 정서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고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교육생은 보통사람보다 더 명석하다. 그러나 생각이 때로 가시나무풀처럼 자라나 상상의 세상에서 살기도 한다. 그들의 짧은 문장 혹은 긴 문장에서 나는 충분히 잠시나마 춤추면서 즐거워하던 그들의 호흡을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실행한 예술교육프로그램은 그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고, 즐거운 속에 좋은 기운을 주어, 약을 먹고 하는 치료가 살리지 못하는 마음영역에서는 더 치유의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올해도 느꼈다.
때때로 산길도 시골길도 아름답다. 그리고 연인과 손잡고 가는 길도 더 없이 소중하다. 피를 나눈 가족과 함께 도란 도란 한 밥상에서 살아가는 소박한 밥상의 시간도 정겹다. 그러나 여기 이렇게 외진 곳에 있는 그들과 예술로 동햏하는 시간의 길도 나름대로 참 뿌듯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