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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의 진수를 보여주는 추리소설

[리뷰] 존 딕슨 카 <황제의 코담뱃갑>

등록|2014.12.17 16:13 수정|2014.12.17 16:13

<황제의 코담뱃갑>겉표지 ⓒ 엘릭시르

고전추리소설의 황금기를 장식했던 작가 존 딕슨 카의 작풍(作風)은 '밀실과 괴기'로 요약할 수 있다.

카는 작품 속에서 수많은 밀실을 만들어냈고, 자신만의 괴기취향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으스스하게 꾸며냈다. <화형법정>, <흑사장 살인사건>, <마녀가 사는 곳>, <해골성> 등이 그런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반면에 밀실과 괴기의 요소를 제거하고 순수하게 트릭으로만 승부를 걸었던 작품도 있다. 1942년에 발표한 <황제의 코담뱃갑>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고전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트릭에 관심을 갖게 된다. 범인이 탐정을 속이고, 작가가 독자를 속이는 트릭. 존 딕슨 카가 밀실에 집착했던 것도 트릭 때문이었을 것이다. 트릭의 정수를 집약해 놓은 것이 바로 밀실이니까.

이혼 이후에 새 삶을 꿈꾸는 여성

대신에 <황제의 코담뱃갑>에서는 물리적인 트릭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에 기초한 트릭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 속에서 범인은 암시의 힘을 통해서 그 속임수를 완성한다. 암시에 넘어가기 쉬운 유형의 사람, 타인의 말을 쉽게 믿는 사람을 상대한다면 그런 트릭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황제의 코담뱃갑>에는 바람둥이 전 남편과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여성 이브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브는 자신의 집 맞은 편 저택에서 살고 있는 한 청년과 약혼한다. 하지만 끈질긴 전남편은 이브를 그냥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어느 늦은 밤, 전 남편은 이브의 침실로 찾아들어오고 둘은 언쟁을 벌이게 된다. 그 도중에 맞은편 저택에서 약혼자의 아버지가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희생자는 살해당하기 전에 최근에 구입한 코담뱃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살인사건 이후에 이브의 전 남편은 달아나고, 여러 가지 정황상 이브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귀중한 코담뱃갑은 산산조각난 상태다. 살인사건을 목격했지만 용의자로 몰린 이브, 범인은 도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

코담뱃갑에 얽힌 미스터리

존 딕슨 카는 수십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카는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 못지않은 다작형의 작가였다. 그중에서 국내에 번역소개된 작품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카는 추리소설 뿐 아니라 역사와 관련된 미스터리물도 여러 편 발표했다. 그렇게 본다면 카의 작품세계를 가리켜서 '밀실과 괴기'로 한정하는 것도 다소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담뱃갑'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코담배를 보관하는 케이스다. 작품 속에 나오는 코담뱃갑은 나폴레옹이 생전에 사용했다는 물건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가치를 가진 물건인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담뱃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름은 약 6센티미터, 언뜻 보기에 회중시계처럼 보인다. 하필이면 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코담뱃갑을 소재로 사용했는지, 트릭의 핵심은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

고전추리소설을 읽다보면 마지막 수십 페이지가 가장 흥미롭다. 그 부분에서 범인의 정체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황제의 코담뱃갑>처럼 신선하고 충격적인 엔딩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애거서 크리스티 조차도 이 작품을 읽고 '이 트릭에는 나도 속아 넘어갔다'라고 감탄했다.
덧붙이는 글 <황제의 코담뱃갑> 존 딕슨 카 지음 / 이동윤 옮김. 엘릭시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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