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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망명하고... 한국은 왜 군대에 관대한가

[망명 25시 - 예다링과 함께 한 격동의 4일, 후일담] 군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 필요

등록|2014.12.24 19:04 수정|2014.12.25 10:52
저는 지난 2014년 9월 17일부터 20일까지, 4일간 일본에서 이예다씨와 함께 징병 반대 활동을 하고 온 '안악희(가명)'라고 합니다. 이예다씨는 2012년 징병을 거부하고 프랑스 정부에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오로지 병역거부라는 하나의 사유로만 망명이 받아들여진 최초의 사례입니다. 저는 앞으로 진행될 연재에서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여러분께 알리고자 이렇게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예다씨의 방일은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우선, 2014년 내내 벌어진 군 내의 사고와 맞물려서, 한국군이 얼마나 전근대적이고 비인권적인 구습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지, 병사들에 대한 처우는 얼마나 열악한지를 외신 기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아울러 민주화 이후 자유국가가 되었다고 알려진 한국에서 아직까지 병역거부를 비롯한 인권 상황은 좀체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이예다씨는 아주 바르고 반듯한 분이셨습니다. 덕분에 일본의 활동가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작가 아마미야 카린씨로부터는 '예다링'이라는 애칭까지 받았습니다. 4일 동안 벌어진 질풍노도와도 같은 이야기들을 이곳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많은 일이 있었다. 군대에 관한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수많은 청춘들은 여전히 군대에 갔고, 일부는 '다른 방법'을 찾았고, 또 일부는 병역을 거부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영화감독 김경묵씨의 병역거부 소식이 들려왔고,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씨는 윤 일병 사망사건 공판 중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치명령을 받는 초유의 사건도 일어났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한국은 조용했다.

일본 외국 특파원 협회의 입구에 걸린 명사들의 사진일본 외국 특파원 협회에 걸린 달라이 라마의 사진 앞에 선 필자와 이예다씨. 이 분도 세계평화에 일조하고 계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비스티 보이즈도 달라이 라마도 참 좋아한다. ⓒ 최태현


기자회견을 통하여 외신에 "병역 거부로만 망명이 인정된 최초의 사례"가 알려진 뒤, 한국은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앞서 밝혔 듯,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자 회견장에 한국 기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이 소식은 한국에 전혀 알려지지 못했다. 일본 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유수 언론들이 앞다투어 취재한 이 사건을 한국의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치 다른 세계에 다녀온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이예다씨와 함께 보낸 며칠간의 일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밀려왔다. 나는 본의 아니게 한국의 많은 사람들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것 같았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필자와 이예다씨는 순식간에 '민족 반역자' 취급을 받았고, 조국을 떠나 도망간 자를 옹호 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 쇄도했다. 나는 실제로 "외국 나가서 나라망신 시키고 다니지 말라"는 욕설과 신체적 위협이 담긴 쪽지를 수차례 받았다.

군대 때문에 망명... 정작 한국은 조용

반면 의외의 반응도 있었다. 다소 소수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거나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는 사이트들은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일단 이예다씨의 처지를 완전히 지지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자신이 뜻한대로 한국을 영영 떠난 건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의견이었다. 더군다나 한국 징병제의 현실을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아무런 보상 없이 희생만을 강요하는 부조리가 이러한 사건으로 조금이나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내비쳤다.

가장 의외의 반응은 현재 한국에서 호불호가 가장 강하게 갈리는,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모 사이트였다. 이 사이트에도 나의 글이 올라갔다. 나는 조금 과장하자면 '이제 광장에서 효수 당하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곳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뒷풀이가 끝나고일정을 모두 마치고 뒷풀이가 끝난 뒤. 아마미야 카린씨와 이예다씨. 일본의 많은 분들이 아낌없는 도움을 주셨는데, 그 중 특히 아마미야 카린씨의 도움이 컸다. 작가이자 활동가인 아마미야씨는 일본 반빈곤 네트워크의 부대표로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다. ⓒ 최태현


이곳의 게시판 이용자들은 찬반으로 나뉘어 격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래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과 "솔직히 한국군 상태가 너무 엉망진창이어서 저런 결정에 뭐라고 말을 못 하겠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들이 자주 인용하는 고인이 된 한 정치인의 말 마따나 "대한민국 군대 이제까지 뭐했느냐"는 의견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해결된 것은 없다. 짧은 시간 안에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나겠냐마는, 징병제는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신문 지상에는 과거의 일이든 최근의 일이든 군대라는 폐쇄 공간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일들이 오르고 있다.

나는 독자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싶다. 단순히 도망간 사람들, 거부하고 감옥에 간 사람들, 대체 복무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주어지는가에 대해 생각하면 어떨까? 징집 장병들은 2년 가까운 세월을 국가에 헌납하면서 월급이라 부르기 민망한 돈을 받는다. 참고로 나는 24개월 꽉 채우고 전역했다.

헌법이 지위, 성별, 직책, 나이와 관계 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했음에도 군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그것도 원해서 간 것도 아닌데) 멸사봉공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그만큼 신성하고 중요한 일이면 왜 단순히 머릿수를 채울 요량으로 신체검사 등급을 낮춰서 인원을 징집하며, 노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주지 않는가?

왜 평화주의자들은 이 국가와 양립할 수 없는가? 그들도 분명 이 사회에서 세금을 내고 사는 인간이며 동등한 천부인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사실, 비록 우리가 상존하는 위협인 조선인민군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간다고 해도, 모든 이들이 평화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평화는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종래에는 지향해야 할 하나의 이상이다.

망명자의 삶 - 이예다씨의 프랑스에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단편2013년 말, 파리 18구 시청에서 사회단체들을 지원하는 파티에서 찍은 사진. 와인들과 간단한 요리를 만들고 18구 시장님과 단체에 대해 토론하고 그 단체가 도와주는 학생들과도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뜻깊은 자리였다고 한다. 왼쪽부터 이예다씨, 엠마뉴엘 선생님, 에델리나 선생님. 엠마뉴엘 선생님이 만드신 사회단체 KOLONE 에서 1년간 프랑스어 수업도 들었고 (지금도) 파티에 초대 받고 박물관 관람이나 근처의 공원에 피크닉도 다닌다고 한다. ⓒ 최태현


비록 이들의 언사가 과격하고 급진적이라 할 지라도, 이들을 위한 공간은 없는것일까?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백가쟁명하며 최대한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체제가 아닌가. 사회주의 국가와 달리, 이곳은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낸다고 해서 투옥이나 처벌같은 신체적, 사회적 위협에서 자유로운 것이 가장 큰 장점인 사회가 아닌가. 만약 이곳을 국가사회주의나 파시즘으로 물들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를 반대하는 것을 나는 이해한다.

나는 망명과 병역 거부라는 것을 실행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 이전에, 망명이 받아들여졌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문제임을 모두가 인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일단, 국제적으로 한국의 징병제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예다씨의 망명 신청이 프랑스 정부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또한 한국인들은 과거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망명한 위인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서인지 망명이라는 단어가 왠지 친근한 것 같다.

그러나, 망명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일단 망명을 하면 절대 한국에 돌아올 수 없다. 당신이 이제까지 살아온 세월과 친구, 학교, 배경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씨도 1987년 민주화가 된 뒤 10년이 넘어서야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제7공화국이 성립하지 않는 한 이예다씨가 한국에 돌아올 길은 없다는 이야기다.

또 한편으로 놀라운 것은, 이 연재가 시작하고 나서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이예다씨를 비롯한 우리 모임의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파리에서의 망중한해먹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예다씨. 파리에서 만난 영화 관련 종사자 친구분이 파티장면을 찍기 위해서 진짜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정말 자연스럽게 파티를 열어 고기를 굽고 와인들을 마셨다고 한다. 이예다씨는 프랑스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계신다. ⓒ 최태현


대부분 망명 방법에 대한 문의였다. 벌써 트위터를 비롯한 각종 SNS를 통해(물론, 이예다씨와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는 대부분 각종 SNS를 이용하고 있다) 수십 건의 메시지와 이메일이 도착했다. 성 소수자로서 박해 받을것이 두렵다는 이야기부터 도저히 군대를 갔다 오지 않고는 한국에서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 싫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도착했다.

다른 생각, 존중해주길

뭐, 이러한 심각한 이야기들에도, 나와 이예다씨는 각각 한국에서, 프랑스에서 잘 지내고 있다. 이예다씨는 빵 가게에서 베이글을 만드는 일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찾고 있으며, 나도 여전히 음악과 출판 활동을 병행하며, 하루하루 먹고살 길을 찾고, 이래저래 재미있는 일을 궁리하고 있다. 우리는 국제 기자들을 모아 놓고 기자회견을 한 사람 치고는 매우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보통 사람들이다.

한국보다 경제 사정이 안 좋은 태국, 베트남, 타이완도 징집 장병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고, 징병제를 실시하는 대부분의 나라는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충분한 대체 복무 제도를 마련해 놓고 있다. 한국이 무엇이 부족하기에 이런 보상과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단 말인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자는 소리다. 이제 사람을 공짜로 끌어다 마구 부려먹는 현행 징병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

끝으로 이러한 여정을 가능하게 해준 아마미야 카린씨, 참의원 야마모토 타로씨, 참의원 후쿠시마 미즈호씨, 양성택씨, 평화주의 단체 전쟁없는 세상의 최정민씨와 구로씨, 일본 TBS의 기자 여러분, 아사히 신문의 사쿠라이 이즈미씨, 병역을 거부하고 수감된 수많은 평화수감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행운과 가호가 있기를.

추신 : 최근 병역을 거부하고 해외로 출국하거나 잠적한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 법안은 여야 대타협을 통해 통과되었다. 예다링의 망명 때 프랑스 정부는 병역을 수행중인 장병들의 생활 수준뿐만 아니라,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탄압에 대해서도 크게 놀랐으며 이는 망명을 받아들인 근거가 되었다. 병역거부를 성범죄자 수준의 개인정보 공개라는 사회적 극형에 처하는 이와 같은 조치는 망명인정률을 높일 결과만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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