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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유적지 보존 방안 생각해 볼 때다

수원화성 돌 뜨던 터 방치

등록|2014.12.26 16:35 수정|2014.12.26 16:35

수원화성 돌 뜨던터방치되어있는 돌 뜨던 터 ⓒ 한정규


'화서전철역 부근 옛 연초제조창의 건너편 숙지산(孰知山)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화성을 축조하기 위한 성돌의 채석(采石)이 이루어졌던 유적으로 팔달산과 함께 중요한 성돌의 공급원 이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채석된 성돌은 수레를 이용, 치도(治道)를 통해 화성 축성 장소까지 운반되었다. 채석 당시의 쐐기 자국이 여러 곳에 남아 있어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유적이다.'

'숙지산 화성 채석장' 현장에 가보면 '수원시향토유적 제15호',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산41번지'라고 써진 낡은 간판만 산길 모퉁이에 달랑 세워져 있고, 바로 옆의 채석장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안내간판이 없다면 그곳이 채석장이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유적지라고 소개 하면서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숙지산은 화성을 축성할 때(1794.1 ~ 1796.9) 대부분의 돌을 조달했던 곳이다. 지금도 바위 군데군데에 돌을 자르기위해 쐐기를 박았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정을 사용해 돌에 구멍을 판 뒤, 그 속에 물푸레나무나 밤나무 등을 박고 물을 부어 팽창하는 힘으로 돌을 잘라냈다.'

숙지공원에 가면 '돌 뜨던 터(浮石所)'란 조그만 비석만 있을뿐 도대체 어디서 돌을 떴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공원이 조성되면서  돌 뜨던 터가 훼손된 것 같다.

화성을 축조하기 위한 성돌이 팔달산에서도 채석되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팔달산을 여러번 돌아다녀봐도 안내판 하나 찾을 수가 없어 돌 뜨던 터가 어디인지 현장을 찾을 수 없다.

수원화성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수원시민에게는 물론이며, 국내외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었다. 수원시를 대표하는 수원화성의 컨텐츠를 확보하고 다양화할 수 있는 차원에서 '돌 뜨던 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수원화성 관련기관에서 철저한 고증을 통해 '돌 뜨던 터'를 보존하면서 유적지로 개발하여 수원화성과 연계한 관광 상품으로 만들면 어떨지. 기본 단계부터 수원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시민의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우리시대에 우리의 손으로 새로운 역사유적지를 발굴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고 신나는 일인가.

돌 뜨던 터돌 뜨던 터는 공원이 되었다 ⓒ 한정규


'돌 뜨는 터'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선생이 화성 성역을 위해 새로 고안한 거중기(擧重器), 유형거(游衡車), 화성 성역에 사용되었던 운반기기인 대거(大車), 평거(平車), 동차(童車) 등을 복원해 전시하면, 화성박물관 야외전시관에 있는 것 보다 교육적이고 현장감이 있을 것이다.

수원화성 성곽건물 대부분이 복원되었지만, 남공심돈(南空心墩), 남암문(南暗門), 남동적대(南東敵臺), 남서적대(南西敵臺), 중포사(中鋪舍) 등은 복원되지 못했다. 특히나 팔달문 좌우에 있는 적대와 남공심돈, 남암문은 도시화로 인해 단시일 내에 복원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위 성곽건물들은 미복원된 문화재지만 복원에대한 로드맵은 있으리라 본다. 여기에 더해 '돌 뜨던 터' 복원사업도 진행되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은 '화성성역의궤'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훌륭했던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일은 가치있는 일이니만큼 하루빨리 복원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e수원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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