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국민대타협기구'... 공무원은 들러리인가
[주장] 공무원 연금 개혁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공무원 의견 듣는 김무성 대표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지난 26일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지도부를 만나 이충재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등과 공무원연금 개혁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 남소연
국회는 지난 26일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공무원연금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안과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구성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10일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를 연내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 26일 이 합의에 대한 후속조치로 운영위원회를 열어 국민대타협기구 구성과 연금특위 구성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지난 10일 여야 합의는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 연금 개혁과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맞바꾼 여야 간의 정치적 '빅딜'의 성격이 강하다. 그동안 공무원 연금 개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던 새정치민주연합이 공무원 단체의 의견도 청취하지 않은 채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공무원 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데 합의를 해 준 것은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대한 새누리당의 합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치적인 '빅딜'은 밀실야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야의 정치적 '빅딜'... 책임 있는 모습 아니다
이처럼 여야가 자원외교 국정조사와 공무원 연금 개혁을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이다.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개별 사안의 중요성과 사회에 미칠 파장에 대한 고려 없이 협상을 통해 처리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다. 자원외교 국정비리와 공무원 연금문제는 성격이 전혀 다른 사안으로 각각의 사안을 독립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여야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적당히 정치적인 타협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나아가, 공무원 연금 개혁과 관련된 여야의 합의 내용도 문제투성이다.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한 '국민대타협기구'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을 살펴보면, 국회의원과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공무원 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민대타협기구'를 연내 구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기구는 기존에 공무원 단체들이 요구했던 '사회적 합의기구'라기 보다는 단지 공무원 연금과 관련된 여론을 수렴하는 형식적인 기구의 성격이 강하다.
국민대타협기구는 여야가 각각 8명(국회의원 2명, 공무원연금가입 당사자 단체 2명, 전문가 및 시민사회 4명)씩을 추천하고 정부에서 공무원 4명을 지명해 구성하게 되어 있다. 이 기구는 연금특위가 구성된 날로부터 90일 동안 활동하게 되어 있는데, 활동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구성원들 간 합의가 되면 단수안을, 구성원간 합의가 안 되면 복수안을 연금특위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즉, '국민대타협기구'는 여야가 추천한 인사들이 모여서 여론수렴 활동을 하고 활동기간이 끝나면 의견서를 단수 또는 복수로 연금특위에 제출하는 것이 주 임무인 것이다.
이 규칙대로라면 '국민대타협기구'에서 제출한 의견서는 연금특위에서 검토하여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국민대타협기구'의 의견서는 그야말로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공무원 연금 개혁안 수립의 전권은 국회의원들이 모인 연금특위가 가지고 있다. '국민대타협기구'는 공무원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생색내기용으로 설치한 기구에 불과하다.
공무원 연금 개혁안에 어떠한 실질적인 영향력도 미칠 수 없는 허울뿐인 '국민대타협기구'를 통해 공무원들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것은 아닌가. 연금특위를 통해 정부가 원하는 공무원 연금 개혁을 단행하려는 시도를 새누리당이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국민대타협기구는 그저 생색내기용
특히, 여야가 이례적으로 연금특위에 입법권을 부여하는 것을 합의한 상태이다. 연금특위에서 합의된 내용은 관련 상임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안으로 성안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다. 이러한 합의는 사실상 연금특위를 통해 공무원 연금 개혁 법안의 단독 처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결국, 국민대타협기구로 여론 수렴의 명분을 만들고, 실제적으로는 연금특위가 공무원 연금 개혁의 최종 권한을 갖게 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여야는 공무원연금특위가 활동을 종료하는 내년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에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 연금 개혁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 또한 참으로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공무원 연금 개혁과 관련해 당사자들인 공무원들의 의견과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정 기한을 정해놓아서는 안 된다.
정부는 공무원 연금과 관련된 각계각층의 구성원들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안이 도출될 때 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시한을 못 박은 상태에서 공무원 연금 개혁을 추진하다보면 연금 개혁이 졸속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들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성실히 국가를 위해 일한 공무원들이 정부에 대해 느낄 배신감과 허탈감을 고려한다면 시한을 정해 놓고 밀어붙이듯이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여야가 합의를 통해 연금특위에 입법권을 부여하고, 공무원 연금 개혁법안의 처리시한까지 정했다. 공무원 연금 개혁 법안이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졸속으로 처리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국민대타협기구에 공무원 연금 개혁 법안의 입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떠한 권한도 부여하지 않은 것은 국민대타협기구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만약 정부가 진심으로 공무원들의 의견을 공무원 연금 개혁 법안에 반영할 의사가 있다면 국민대타협기구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국민대타협기구에서 합의된 안이 나오면 그 안을 가지고 연금특위가 법률제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또한 연금특위가 공무원 연금 개혁법안을 제정하기 전에 국민대타협기구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민대타협기구의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 공무원 가입자 단체 소속 위원을 정당에서 추천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공무원 노조에서 추천하도록 해야 한다. 공무원 노조와 정치권이 국민대타협기구에서 활동할 위원을 반반씩 추천하는 방안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공무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는 새누리당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고, 공무원 연금 당사자인 공무원들도 국민대타협기구가 생색내기가 아니라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기구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최진봉 시민기자는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비즈 앤 라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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