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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꽉 깨물고, 박근혜 정부에 '한목숨' 바치겠다

적어도 새날이 올 때까지만이라도....어느 범상치 않은 금연의 이유

등록|2015.01.01 15:02 수정|2015.01.02 12:08
아주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것도 넋을 놓고 말이다. 지난 주말에 방송된 MBC '무한도전 토토가'는 예능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첫 무대였던 터보의 댄스곡에서부터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뜨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그 시절의 기억에 대한 향수와 스러져간 청춘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누구의 삶을 가져다 그린다 해도 영화의 주인공이 될 법한 그 시절.

바로 그 시절부터 나를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켜주던 친구가 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암흑과도 같은 나날을 보낼 때도, 면허증 시험을 준비하느라 가끔씩 밤을 지새울 때도, 첫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며 초조함을 달랠 때도, 인생의 얕은 변곡점마다 그 친구는 내게 누구보다 든든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변덕스러운 나의 오욕칠정을 포근히 감싸주던 친구.

이제 그 친구를 보내려 한다. 그 시절의 노래만 들어도 울컥해 오는데, 내 청춘을 관통하여 함께 한 그를 보내려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물론, 그 동안 몇 번이고 놓아주려고 시도했으나, 정 때문인지 필요에 의해선지, 아니면 중독 때문인지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다. 그 친구는 바로 담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숱한 담배 심부름 하면서...

금연서약서그 동안 담배를 끊기 위해 안 해 본일이 없다. 금연침, 금연초, 금연 패치, 전자담배까지. 하다못해, 아내의 생일 선물 대신 서약서를 작성해서 금연을 맹세했던 적도 있다. ⓒ 이정혁


어릴 적 아버지의 숱한 담배 심부름을 하면서, 나중에 커서 절대로 담배 따위는 피우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머리가 굵어지고 난 후, 어른들 몰래 한 모금 빨았다가 그 역한 냄새와 매캐함에 눈물 콧물 다 쏟고는 정나미가 뚝 떨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 입학과 동시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고,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늘 그렇듯이 덥석 그 손을 잡고야 만다.

홍콩 느와르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인 우리에게 담배는 일종의 멋스러움이었다. 이틀쯤 감지 않은 긴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담배를 물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주윤발과 유덕화가 부럽지 않았다. 용돈이 늘 부족하던 시절, 성한 꽁초를 찾기 위해 자취방 재떨이를 헤집던 기억이며, 담배연기 자욱한 지하 막걸리 집에서 한 개피를 안주삼아 들이키던 탁주 한사발의 기억은 담배에게 면죄부를 주기에 충분할 만큼 아리고 저릿한 청춘의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끊어야 한다. 때가 되었다. 담배 값이 오른다는 발표가 나고 주위 흡연가들의 반응은 보통 세 가지로 나뉘었다. 전자담배로 갈아타거나 담배 사재기로 한동안 버티거나 끊거나. 그중에 마지막 부류인 금연을 결심한 사람들은 각자의 정당성과 근거를 내세우며 금연에 도전하겠지만, 내가 금연을 하는 이유는 살짝 다르다.

뭐 그렇다고 일반적인 금연의 이유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40대에 접어들면서 운동이라고는 2층에 있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것이 전부인 내 육신에 더 이상의 폐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거기에 말이 늘기 시작한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흡연의 문제점들을 배워 와서는 "아빠는 안 피지?"라고 캐묻는다. (난 아이들 앞에서는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 언제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 점점 담배 피울 장소가 없어진다는 점과 흡연자들을 범죄자처럼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에 위축이 된다. 내가 일하는 곳도 건물 전체가 금연이라서 실외기가 있는 좁은 공간에 나가 쪼그리고 담배를 폈는데,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여름에는 그 공간의 열기가 찜찔방을 능가하고, 겨울에는 냉기로 인해 담배를 쥔 두 손가락이 얼어버릴 듯 하다는 것을.

이러한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담배를 끊어야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카운터펀치가 한방 날아 왔다. 정부가 담뱃값 2천 원 인상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초강수를 둔 것이다. 슬프게도 개인의 의지는 국가적 외압에 쉽게 굴복하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담뱃값을 올려서 금연을 유도하겠다는 정부 당국의 발표는 전혀 믿음이 안 간다고.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릴 거면 금연 효과가 최대로 나타난다는 6천 원 이상이 적절하지 않냐고. 사실 2천 원 인상은 갈등의 범주에 속한다. 다른 데 쓸 용돈을 조금 아껴서 담배를 피우겠다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부족한 세수 확보를 위해 애꿎은 담뱃값을 올린다는 건 경제생활을 좀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꼼수라고. 2천 원 담뱃값 인상으로 흡연율이 29%까지 낮아질 거라는 예측은 숫자 놀음에 불과하며, 술과 담배만큼 꼬박꼬박 나라 곳간을 채워주는 충신 상품이 어디 있느냐고? 그럴꺼면 애초에 팔지를 말라고.

4대강에서 뺨 맞고, 편의점 와서 화풀이해도 유분수지

어느 편의점의 담배 판매대잘 알고 지내는 편의점 사장님의 이야기로는 2015년 1월 1일부로 담배값이 2천원 인상되면 실제 마진은 여섯배쯤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소매점 마다 담배가 없어서 못 판다고 할수 밖에. 그나마, 이곳은 비어있는 담배칸이 많지 않다. ⓒ 이정혁


또 누군가는 이렇게 푸념한다. 오른 담배 가격이 4대강 사업으로 구멍 난 국가 재정을 메우는 데 쓰일 거라는 슬픈 예감 때문에, 거기에 증세 없는 복지의 신기루를 보호해줄 안전장치로 사용될 거라는 불편한 예감 때문에, 없는 서민들 쥐어짜서 대기업들 세금 낮추는 데 퍼부을 거라는 복장 터지는 예감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결국 많은 이들이 이번 기회에 담배를 끊을 것이다. 이래저래 세금으로 다 뜯어가고 모자라 담배 값에 세금을 더 붙이겠다는 정부의 행태에 화가 나서 끊을 것이고, 방만한 국가 경영의 뒤처리는 늘상 죄 없는 백성들에게 떠넘기는 수작에 넌덜머리가 나서 끊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비참하게도, 4500원으로 담배를 사 필 경제적 능력이 안 되서 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국가 정책에 놀아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는 선량한 애국 시민이다. 얼마나 고민 끝에 오른 담뱃값인가. 지지율에 악영향이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법안을 통과 시켜준 국회 아니던가. 이것은 국가의 정책이다. 군말 없이 끊으라면 끊어야 한다. 국가 정책도 복고라는 게 있다. 이제 70년대로 돌아가자는 거다.

제 몸 생각해서, 제 가족 생각해서 끊으라는 것인데, 4대강에서 뺨 맞고, 편의점 와서 화풀이해도 유분수지, 어딜 감히 반항의 목소리를 내느냐 말이다. 흡연자의 권익이 어쨌느니, 오른 담배 값 중에 얼마가 금연정책에 쓰이는지 뒤에서만 떠들어 대지 말라는 거다. 그렇게 국가 정책에 관심이 많았으면 투표를 똑바로 하라 이 말이다.

내가 금연하는 결정적 이유는 따라서 이것이다. 국가 정책에 순응하는 일.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국가의 정책에 충실했던 우리 부모님처럼, 담배 값 올려 국민 건강 증진에 힘쓰겠다는 국가의 정책에 이 한 목숨 바쳐보겠다는 것이다. '하얀 날개를 휘저으며 구름 사이로 떠나 가버린 친구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더라도', 어금니 꽉 물고 끊어 보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새날이 올때까지 만이라도...

책상 위에 쌓여 있는 금연 보조제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사탕을 사 들인다. 금연초와 금연껌은 예전에 도전했을때, 실패하고 것들. 이번에는 최대한 의지만 가지고 끊어 보고자 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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