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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숨죽인 씨앗들 이내 피어날 것입니다

[포토에세이] 새싹 이야기

등록|2014.12.30 18:14 수정|2014.12.30 18:14

들판의 쑥이 씨앗을 달고 겨울을 나고 있다. 이미 바람을 타고 날아간 씨앗들도 추위 속에서 겨울을 나고 있을 것이다. ⓒ 김민수


새해를 맞이할 때에는 늘 기대에 부풀기 마련입니다.
청마의 해를 맞이하면서도 그랬을 것입니다.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며, 내 삶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보겠노라는 다짐들로 한 해를 맞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저마다 다르겠지만, 제게 2014년은 이전과 이후의 삶을 통틀어 최악의 해로 자리매김을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험난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올해의 험난함을 모두 털어버리고 내년엔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소망하며, 또 새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삶을 힘겹게 했던 사건은 먼저 외부로부터 터졌습니다.

먼저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전반의 문제뿐 아니라 개인 삶의 문제까지도 되돌아봐야할 사건이었습니다. 단지 저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저마다 최대의 잉여를 남기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 결과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모두들 '미안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6월말 사표를 내고 공식적인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계획들도 포함된 것이었지만, 결국 모든 계획들은 수포로 돌아갔고 연말이 되면서 실업자로 6개월을 꽉 채우는 중입니다. 이 나라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 경제권을 잃어버렸다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지만, 아직까지는 묘연합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리를 다쳐서 한달 반 동안 꼼짝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년 초에 물리치료를 받고, 연말에 뼈에 박은 철심을 빼어내야 온전히 치료가 끝납니다. 좋은 일도 물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험난한 일년이었습니다.

마늘싹봄이 오면 여기저기 연록의 싹이 올라올 터이다. 남도에서는 지난 해 심었던 마늘들이 한창 싹을 냈을 터이다. ⓒ 김민수


그런데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것은 '아직도' 마음 아픈 일들이 진행형이며, 특별히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라는 점입니다. 책임자처벌과 원인규명을 철저하게 하겠다던 대통령은  그 약속을 속된말로 '개무시'하고 있습니다.

올해 사자성어로 '지록위마'가 선정되었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올해의 현상은  '갑질의 횡포'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갑질의 횡포에 힘을 합해 맞서야할 을들이 구심점을 잃고, 을과 을이 원수가 되어 싸우는 상황들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던 해였습니다.

서북청년단의 재건이나 일베의 폭식투쟁, 사제 폭발물 투척 등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현실화되는 시점이 2014년 청마의 해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그냥 올해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동안 준비되었다가 싹이 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씨앗처럼 말입니다.

새싹대지가 촉촉해지고 햇살이 따스해지면 대지에 묻혀있던 씨앗이 싹을 틔운다. ⓒ 김민수


씨앗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작습니다. 그러나 일단 싹을 틔우면 수백 수천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시작은 작지만, 일단 자라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습니다. 특히 잡초는 맨 처음 새순이었을 때는 연약하고 부드럽기가 그지 이를데 없었으며, 어떤 해도 주지 않을 것처럼 생겨먹었습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어린 싹을 보고도 잡초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어 마음껏 자라 농작물을 해치기 전에 김을 매지요.

그런에 우리는 그것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갑질을 끊임없이 하고자하는 이들은 의도적으로 그런 것들을 자라나게 했을뿐 아니라 씨를 뿌린 것이지요. 우리와 같은 분단된 국가에서는 '종북좌파빨갱이'라는 이념갈등을 부추기는 씨앗이 아주 좋은 것이었겠지요. 그런 증오의 씨앗들을 은연 중에 뿌려가면서 이젠 갑과 을의 싸움이 아닌 을과 을의 싸움으로, 국민과 권력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과 국민의 싸움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그런 교묘한 속임수는 아주 치밀했던 반면에 그런데 대항하는 움직임들은 너무 허술하고 두루뭉수리하고 감정적이고 낭만적이었습니다.

이끼의 새싹날이 차가울수록 초록의 빚을 더해가는 이끼의 삭, 겨울이 끝나기 전에 그들은 한창 푸른 날을 만끽할 것이다. 그들의 잔치가 마무리될 즈음 완연한 봄도 올 것이다. ⓒ 김민수


그러나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다시한번 희망의 씨앗을 뿌려봅니다. 내년에는 이제 우리가 그런 씨앗을 뿌리는 것이지요. 지금은 겨울이라고 치고, 지금 꽃눈처리를 하는 중이라 치고, 새 봄이 오면 당장에 무슨 열매를 맺을 생각하지 말고 작은 씨앗들을 하나 둘 뿌리고 싹을 틔우게 하는 것이지요.

모든 씨앗들은 대지를 만나기 전에는 딱딱합니다. 대지를 만났더라도 싹을 틔울만한 조건이 아니면 부드러워지지 않습니다. 싹을 틔울 조건이 되면 부드러워지고, 그 부드러운 씨앗 속에 꽃눈이 싹을 냅니다. 그리고 대지에 부드러운 새순을 냅니다. 일년초들도 그렇지만, 거목이 되는 나무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무슨 성과를 얻거나 열매를 거두기 위해 씨앗을 뿌리지 말고, 그 과정을 즐기자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즐기되 지혜롭게 잡초는 뽑아내자는 것입니다. 그런 새해가 된다면, 우리 대한민국뿐 아니라 개인의 삶도 한결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싹싹을 틔운 그곳이 어떤 곳이든 그의 삶은 거기서 시작되고 거기서 끝난다. ⓒ 김민수


씨앗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 자리를 지킵니다. 설령 그곳이 너무 척박한 곳이라 자라다 그 생명이 끊어질지라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씨앗들이 다른 곳에서 또 싹을 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연의 역사는 지금껏 그렇게 진행되어 왔구요.

그러나 때로는 그것이 마지막 씨앗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 푸른 싹이 소중한 것이라면, 척박한 곳에 자리잡았다고 손가락질만 한다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스스로 꽃피워 열매맺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를 돕는 것이겠지요.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난제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2014년을 보내면서 공고화된 것들도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절망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절망에 절망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북주고 가꾸어 물주며 키워야할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볼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깨어있는 사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겨울이라 숨죽인 씨앗들이 봄이 오면 피어날 것입니다. 역사의 겨울을 살아가느라 숨죽인 씨앗들 역시 역사의 봄이 오면 피어날 것입니다. 그 씨앗들 건강하게 잘 지키는 날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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