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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아이 죽음 못 받아들이는 어머니 많아요"

'아듀 2014 잊지않을게 송년문화제' 광화문 광장에서 열려

등록|2014.12.31 21:12 수정|2014.12.31 22:05

'세월호 잊지 않고 함께 할께요' 2014년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아듀 2014 잊지않을께 송년문화제'에 참석한 시민이 단원고 학생 고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 씨를 안아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세월호 유가족 힘 내세요"2014년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아듀 2014 잊지않을께 송년문화제'에 참석한 시민이 단원고 학생 고 오영석 군의 아버지 오병환 씨에게 힘내시라며 음료수와 선물을 건네주고 있다. ⓒ 유성호


"저희가 2014년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계속 슬퍼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이들을 보내는 문화제를 준비했습니다. 그간 함께 해준 시민들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2015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저희들과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원고 고 오영석군 아버지 오병환씨)

"그동안 다들 너무 슬퍼만 했잖아요. 세월호 특별법도 그렇고 진상규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 올 한해 그랬듯이 2015년에도 우리 손을 끝까지 잡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단원고 고 이민우군 아버지 이종철씨)

2014년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아듀 2014 잊지않을게 송년문화제'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중심이 돼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문화제다. 4월 16일 숨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한편, 다가오는 새해 시작될 진실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송년문화제는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오후 3시 4분 정각에 시작됐다. 첫 무대는 '노란리본국악단'의 국악 연주에 맞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이 살풀이춤을 추는 무대로 채워졌다. 보통 억울한 죽음이나 재해를 입었을 때 살을 푼다는 의미에서 하는 살풀이지만, 이번에는 약간 달랐다. 

유족들과 함께 문화제 기획에 참여한 윤솔지씨는 "아직도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족 어머니들이 많이 계시더라"며 "그런 분들을 고려해, 정식 살풀이가 아닌 다소 완화된 무대로 만들어 달라고 국악단 측에 부탁했다"고 말했다. 함께 행사를 담당한 김진경씨(영상 담당)도 "유가족 중에는 아직 사망신고를 안 한 분도 많은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문화제가 진행되는 내내 칼바람이 몰아쳤지만, 시민들은 점점 늘어났다. 오후 4시께 200여명이던 시민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 7시께에는 300여 명에 달했다. 광장 옆 도로로 자동차가 달리는 탓에, 바람이 불어 무대 앞에 놓여있던 플라스틱 의자가 저절로 움직일 정도였다. 시민들은 모자를 뒤집어쓰고 목도리를 둘러가며 추위를 견뎠다.

참가 관중들은 커플로 보이는 남녀와 아직 앳된 학생들, 나이가 지긋한 중년 남성 등 다양했다. 여기에는 다섯 살배기 아들 손을 잡고 온 엄마도 있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류수정(39)씨는 "세월호 유가족 분들이 연말에 혼자서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싶어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류씨는 "처음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그저 슬프고 화만 났는데, 나중에는 직접 서명을 받고 행동하시는 유족분들 모습을 보며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가 안전하도록, 저 대신 나서서 행동해주시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엄마아빠, 오늘 하루 소중히 보내주세요" 희생 학생들 마음 담긴 무대

2014년 마지막 밤, 세월호 잊지 않기 위해 모인 수많은 시민들2014년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아듀 2014 잊지않을께 송년문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밴드의 공연을 지켜보며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 유성호


세월호 참사 잊지 않기 위해 준비한 기억의 공간2014년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아듀 2014 잊지않을께 송년문화제'가 열린 가운데,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전시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 유성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서명하는 시민들2014년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아듀 2014 잊지않을께 송년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새해 초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의 진상규명을 위해 서명지에 서명하고 있다. ⓒ 유성호


새누리당 부적격 조사위원 격파2014년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아듀 2014 잊지않을께 송년문화제'가 열린 가운데, 4.16 서명지킴이들이 새누리당 측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들이 부적격하다고 주장하며 격파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내 친구야 잊지 말고 내 몫까지 잘 살아라,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엄마 아빠 삼시세끼 건강하게 꼭 드세요, 눈물로 지내지 말고요.
오늘은 하루라는 걸 나는 이제야 알게 됐지만
여러분은 이런 내 얘기 듣고 나서 소중히 보내주세요…"

공연에는 안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합창무대도 있었다. 하얀 티셔츠를 입고 노란 목도리를 두른 학생들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아카펠라 형식으로 불렀다. 노래 가사에는 희생된 학생들이 친구들과 부모님, 시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내용이 담겨있었다. 유족 아버지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학생들 공연을 바라봤지만, 공연이 끝나자 웃으며 박수를 쳤다.

가사를 직접 쓰고 학생들과 함께 합창에도 참여한 안산제일교회 소속 김가영(23)씨는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해결하기 어려운 슬픔이지만, 사람들이 그 슬픔에서만 머무르는 게 마음 아프고 속상했다"며 "희생된 아이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했다"고 가사를 쓴 배경에 대해 말했다. 

이날 행사는 락 페스티벌이 열리는 '열정의 광장'과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 등으로 채워진 '기억의 광장', 희생자들의 사진이 놓인 '노란리본의 광장'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광장 한 쪽에서는 노란리본과 노란풍선을 나눠주기도 했다. 4~5세로 보이는 아이들이 "SAFE KOREA,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어요"란 적힌 풍선을 손에 들고는 광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또 다른 부스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사진들과 만화,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희생학생 60여 명의 얼굴이 새겨진 목판화도 전시됐다. 한 유가족 아버지는 목판화마다 새겨진 얼굴과 이름들을 짚어가며 "6반 OO이, 4반 OO이…"라고 혼잣말을 내뱉기도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학생들 얼굴을 새겼다는 목판화가 정찬민(57)씨는 "여기서 대통령도 나오고, 스타도 나올 수 있었던 거 아니냐"며 "그 가능성들이 다 사라졌다는 게 기가 막힌다, 300여 명이 다 죽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대통령이 적어도 한 번은 유가족들을 만나서 제대로 사과했어야 하는데, 계속 모른 척만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애들도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 실종자 잊지 말아달라는 유족들

"잊지 않을게" 희생자들 기억하는 '기억의 광장' 부스이 날 행사는 락 페스티벌이 열리는 '열정의 광장'과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 등으로 채워진 '기억의 광장', 희생자들의 사진이 놓인 '노란리본의 광장'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광장 한 쪽에서는 노란리본과 노란풍선을 나눠주기도 했다. 사진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시민참여 부스. ⓒ 유성애


희생학생들 사진에 시민들이 붙이고 간 노란리본들세월호 송년문화제 참여를 위해, 오랜만에 광화문 광장을 찾은 듯한 한 유족 어머니는 농성장에 걸린 아이들 사진을 보며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원래 단원고 희생학생들 사진만 덩그러니 붙어있던 피켓 주변에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붙인 작은 노란리본과 함께 학생들의 반과 이름이 쓰여 있었다. ⓒ 유성애


세월호 참사 유가족 40여 명도 경기 안산에서 버스를 타고 와 송년문화제에 함께 했다. 오랜만에 광화문 광장을 찾은 듯한 한 유족 어머니는 농성장에 걸린 아이들 사진을 보며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원래 단원고 희생 학생들 사진만 덩그러니 붙어있던 피켓 주변에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붙인 작은 노란리본과 함께 학생들의 반과 이름이 쓰여 있었다. 

고 박성호군 어머니 정혜숙씨는 기자의 손을 잡더니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으셨다"며 먼저 감사를 표했다. 정씨는 "저희에게는 (참사가) 평생 갈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잊지 않고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고맙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바닷속에 있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들을 잊지 말라는 부탁도 이어졌다. 단원고 고 권순범군 어머니 최지영씨는 "힘든 한 해였다"고 얘기하면서도, "그런데 우리들은 그렇다 쳐도, 아직까지도 안 나온 아이들이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12월 31일 현재 남은 세월호 참사 실종자는 단원고 2학년 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 학생, 양승진·고창석 단원고 교사, 일반승객 이영숙·권재근씨와 권씨 아들 권혁규(6)군 등 9명이다.

이번 행사는 유족들이 모인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아래 세월호 가족대책위)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공동 주최했다. 오후 3시께 시작된 송년문화제는 밤까지 계속되며, 새해로 넘어가는 밤 12시에는 유가족과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타종행사도 할 예정이다. 행사는 2015년 1월 1일 오전 1시께 끝나게 된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월호 농성장은 당분간 유지될 예정이다. 영석아빠 오병환씨와 함께 광화문 농성장에서 먹고 자며 이곳을 지키는 유족 이종철씨는 "요즘 날씨가 춥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애들도 차가운 바닷속에 묻혀 있는데…."라고 말했다. 할 수 있는 한 농성장을 계속 지키고 있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다음날인 1월 1일 오전 10시에도 경기 안산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엄마의 따뜻한 밥상' 행사를 연다.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의원 295명을 비롯해 시민 등을 분향소로 초청해 떡국을 대접한 뒤, '진상규명을 바라는 애절한 부모 마음'이 단긴 대국민 신년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취지라고 가족들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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