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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찾아갈 만한 최고의 명소는?

독립운동과 후삼국통일의 역사가 서린 앞산 안일사와 왕굴

등록|2015.01.01 13:46 수정|2015.01.01 13:46

▲ 대구앞산 안일사 대웅전의 아침 7시 풍경(왼쪽 사진)과, 대웅전 안에서 절을 하고 있는 불신도의 모습(오른쪽) ⓒ 정만진


새벽 6시 20분, 집을 출발하여 앞산으로 향한다. 1월 1일을 맞아 늦잠을 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다고 멀리 동해까지 달려가는 부산을 떠는 것은 진작에 '과유불급'의 지혜를 남겨준  선현들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 걸어서도 닿을 수 있는 앞산이 새해 첫날에 찾을 곳으로는 딱 제격인 것이다.

앞산 중에서도 안일사와 그 뒤 왕굴을 찾는다. 대구에서 일출을 볼 만한 곳으로는 동촌 해맞이공원 등이 유명하지만, 자연의 해만 보면 뭘하나? 1월 1일에 떠오르는 해와, 바로 하루 전인 12월 31일에 떠오르는 해 사이에는 아주 미미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저 사람의 생각속에서만 '새해 일출'이지 사실은 그 해가 그 해인 까닭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이 역사의 강을 타고 녹아 있는 곳을 찾아야 참다운 1월 1일 아침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그 적격지가 대구에서는 안일사와 그 뒤 왕굴이다. 안일사는 1910년대 국내 항일 무장투쟁의 중심이었던 조선국권회복단이 결성된 독립운동의 성지다. 뿐만 아니라, 927년 왕건이 견훤군에 대패한 후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숨어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물론 왕굴도 그 당시 왕건이 몸을 숨기고 살았던 곳이다. 반쪽짜리 통일인 신라의 것에 비해 자주적일 뿐만 아니라 국토도 더 넓었던 왕건의 후삼국통일의 촛불이 꺼지지 않고 타올랐던 곳이 바로 안일사와 왕굴인 것이다.

▲ 왕굴 가는 도중의 거대한 돌탑과(사진의 인물은 김두현 대구공정여행A스토리협동조합 이사장) 왕굴의 풍경 ⓒ 정만진


안일사는 왕굴까지 가는 등산로의 중간쯤에 있다. 주차장에서 대략 15분가량 가파르게 오르막을 걸으면 절에 닿는다. 대구에서는 1월 1일 아침 일출 시간이 오전 7시 35분경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주차장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출발 시점은 7시보다 조금 이전이라야 한다. 주차장에서 안일사까지 15분, 안일사에서 왕굴까지 20분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오전 7시경의 안일사는 아직 캄캄하다. 대웅전 법당 건물도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열성적인 신도가 금당 안에서 허리를 굽히며 합장 기도하는 광경은 노란 불빛을 받은 탓에 선명하다. 이곳이 안일사인 탓에 나는 문득 "통일과 자주독립을 기도하기에 딱 좋은 곳이 여기로다"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가족과 친구들의 행복을 비는 소시민적 기원을 한다고 해서 누군들 그를 나무라서는 안 될 일이다.

안일사와 왕굴 사이 1/3 지점에 있는 거대한 돌탑도 구경거리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나는 아직 이곳의 것만큼 어마어마한 돌탑은 본 적이 없다. 혹 왕건이 이곳에 숨어지내면서 쌓은 것인가, 하고 한때 기대도 했지만,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이 거대 돌탑을 쌓은 이가 왕건이라고 자꾸만 믿고 싶어진다. 비록 왕건이 다 쌓지는 않았지만, 그가 단 하나의 돌은 놓지 않았겠는가?

▲ 7시 35분, 왕굴에서 바라본 팔공산 방면. 날씨가 흐려 일출 광경이 흐릿하다. ⓒ 정만진


아직 캄캄한데, 왕굴에는 벌써 사람들이 몇 찾아와 있다. 촛불도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기도를 올리고 있는 중인 듯하다. 왕굴 오른쪽 전망대에도 젊은 부부가 두 자녀를 데리고 서 있다. '정말 왕건이 저기 동굴에서 살았어요?'하고 작은아이가 물으니, '그럼! 여기 숨어서 고생하다가 나중에 탈출해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지. 아마 왕건은 여기서 고생한 시절을 생각하면서 항상 살아가는 자세를 가다듬었을 거야'하고 어머니가 대답한다.

멀리 팔공산 방향을 바라본다. 왕굴 오른쪽 전망대는 정면으로 동쪽을 향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일출 광경을 즐기기에 최적의 지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대구 시내 전경 감상지이므로 훌륭한 전망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나저나 오늘은 엷은 구름이 팔공산 자락을 덮고 있어 주황빛 기운은 감돌지만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없는 날인 듯하다.

그러나 어떤가! 애시당초 일출을 보려고 앞산을 오른 게 아니다. 안일사와 왕굴을 보려고 이 추운 1월 1일 새벽에 이곳까지 찾아왔다. 일출은 제대로 못 보았지만 '통일'의 왕건을 만났고, 독립운동의 조선국권회복단을 만났다. 이만 하면 새해맞이 아침 나들이로는 썩 의미 있지 않나?

▲ 하산 무렵(8시)의 안일사 대웅전 풍경. 낡이 밝아 모습이 환하다. 1월 1일을 맞아 절에서 제공한 떡국을 받아 기와 담장에 얹어둔 채 맛나게 먹었다. ⓒ 정만진


다시 안일사로 내려오니 8시가 다 되었다. 일주문 앞에서 중년의 남자가 커다란 소리로 "떡국 드시고 가세요!"하고 거듭 소리치고 있다. 추위에 움추려 있던 몸과 마음이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면서 노근하게 녹아내린다. 날이 어느덧 환해져서 안일사 법당 건물들도 뚜렷하다.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선다. 오른쪽으로 떡국을 나눠주는 보살님들의 부지런한 몸놀림이 눈에 들어온다. 성큼성큼 그리로 나아간다.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떡국 한 그릇과 김치 한 종기를 기와 담장 위에 얹은 채로 신나게 아침식사를 즐긴다. 과연 안일사는 좋은 곳이다.

대구는 역사를 기리는 일에 그 동안 소홀히 해왔다. 언뜻 생각해도 대구역사관, 대구자연사박물관, 독립운동기념관 등이 없는 곳이 바로 대구광역시다. 안일사 등산로 입구에 산뜻한 건물 한 채를 지어 그 안에 '1910년대 국내 무장 독립운동 기념실'과 '왕건 후삼국 통일 학습실'을 설치하면 좋을 것이다. 조금 전 왕굴에서 그것을 새해 소원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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