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부담감에 도망치기도...결국 힙합이었다"
[인터뷰] 래퍼 도넛맨, 딜레마 속 신세계를 말하다
▲ 래퍼 도넛맨 ⓒ 도넛맨
세기 말, 공연하게 퍼진 유언비어가 종말론이었다면 21세기 초인 현재는 '신세계'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커뮤니티, 매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된 새 유형의 조합 언어는 이상향에 대한 열망을 단어로 나타냈다. 사회 전반에 닥친 새 시대의 흐름과 풍조는 기괴한 야자수 헤어스타일로 내면을 표출한 어느 예술가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실과 이상의 딜레마에 공감하는 수많은 현대인에게 음악으로 교집합을 묶어 내고 함께 신세계로 향하는 과정이 정상을 향하는 올바른 태도라고 말하는 그는 1991년생의 아티스트 도넛맨이다.
힙합 컨피티션으로 신에 등장해 신선함을 피력한 도넛맨은 크루셜 스타, 더콰이엇 등의 피처링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싱글 < Welcome To The Game(웰컴 투 더 게임) > <데려갈게>를 연달아 발표했다.
"우스꽝스러운 이름에 한겹 한겹 쌓이는 신뢰 감사해"
- 당신은 누구인가.
"처음 인사드린다. 도넛맨이다. 근래에 첫 싱글을 발매했고 현재는 다음 곡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 도넛맨이라니. 독창성에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위권일 거다.
"곡 등록 시간을 몇 분 앞두고 크루셜 스타 형 작업실에서 급하게 만든 예명이다. 개인적으로 그리 정감 가지는 않았는데 강하게 각인된다는 점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우스꽝스럽다면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이 이름으로 한 계단씩 신뢰를 쌓고 있으니 더욱 감사해야 할 일이고.(웃음)"
- 보통 래퍼들은 무작정 내뱉고 본 예명이라도 후에 찰떡같이 의미를 부여하더라.
"멋있어 보이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해봤지만 가망이 없어 포기했다.(웃음)"
- 컴피티션 참가곡에 대한 문의가 많다. 지금 들을 방법은 없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찾을 수 없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고 갖고 있지도 않다."
- 이 분야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노래방에서 힙합곡을 즐겨 부르는 마니아 정도였다. 소울컴퍼니의 공연을 보고 별생각 없이 instrumental 앨범을 구매했던 것이 계기였다. 취미로 가사를 쓰고 녹음 본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반응이 꽤 괜찮더라. 그렇게 준비 아닌 준비를 차근차근히 했던 것 같다."
- 크루셜 스타와의 인연도 꽤 깊다고 들었다.
"같은 고교 선후배 사이다. 내가 전학을 간 뒤 연락이 조금 뜸해졌는데 그 후 메신저를 통해서 재회하게 됐다. 작업할 때는 물론이고 사적으로도 자주 보는 친한 형이다."
- 싱글을 내는 데 오래 걸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회사와 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보니 제작비 충당이 쉽지 않더라. 조금 더디지만 음원 정산이 되면 그 금액으로 다음 앨범을 작업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 레이블에 몸담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내가 나의 색을 명확히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물드는 게 싫다. 음악 제작 외에 부수적인 요인까지 담당해야 해서 힘들지만, 그래도 아직은 혼자 하는 것이 편하다."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신세계라는 미지의 이미지"
▲ ⓒ 도넛맨
- 싱글 '데려갈게' 발표 후 주변 반응은 어떤가.
"대체로 양호하다. 음악 하시는 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참 다행이고, 팬들의 의견은 갈리는 듯했지만 그건 내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 부담감이 될 수도 있겠다. 주위의 기대와 기다림 등등.
"그 부분은 이미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1년 믹스테잎 발표 후 약 2년간 작업을 하지 않았다가 2013년 11월부터 다시 음악 작업을 시작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 그럼 음악을 쉬다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심경에 변화가 있었나.
"음악을 안 하기로 하고 약 한 달간 수중에 있는 돈을 다 써버릴 만큼 정신없이 놀았다. 그렇게 대책 없이 굴고 나니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다. 두려움과 부담감에 질식할 것 같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더 나빠지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고 한 차례 지나가니 놀랍게도 무서운 게 다 사라지더라. 그 뒤로는 작업 속도도 빨라지고 삶 자체가 훨씬 나아졌다."
- '데려갈게 정상까지'라는 가사가 비장하더라. 도넛맨이 생각하는 정상은 어디인가.
"이번 앨범의 콘셉트가 '신세계'라는 미지의 이미지다. 나는 불만이 참 많은 아이였고,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되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내면 세계를 지지하다 보니 꿈꾸는 것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겼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세상, 즉 신세계를 건국하기 시작한 거지.
앞서 발표한 싱글 'Welcome To The Game'이 '나'라는 주체가 신세계로 입성하는 과정을 담았다면 '데려갈게'는 청자를 신세계로 인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곧 발매 예정인 싱글 역시 이것의 연장선이다. 친구들과 신세계로 가는 내용인데 이러한 연결 과정이 내가 그리는 정상 아닐까 싶다."
- 그래서 그런 걸까. 최근에는 미래지향적인 가사가 대부분이다.
"점차 간절해진다. 음악을 통해 인정받고 싶고 돈을 벌고 싶다."
- 도넛맨은 신비주의다.
"공연 섭외가 들어와도 요즘엔 크루셜 스타 형의 콘서트 말고는 따로 무대에 서진 않는다. 아직 회사가 없고 인맥이 협소해서 큰 공연에는 못 섰던 것뿐인데 그렇게도 비칠 수 있다니!(웃음)"
- 기존 힙합 리스너들 사이에서 도넛맨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이유가 뭘까.
"이번 싱글의 퀄리티가 정말 좋았다. 곡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 트레이드마크가 된 야자수 머리는 본인 아이디어인가.
"신세계의 이미지를 그리는데 잔디밭과 야자수가 떠올랐다. 잔디 머리를 할 수는 없으니 야자수 머리를 택한 거다. 그런데 이 스타일이 은근히 유지하는데 번거롭다.(웃음)"
- 직접 쓰는 가사는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100% 실화를 바탕으로 쓴다. 그래서 사랑이나 이별 노래가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 부분에서는 구구절절 풀어낼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더라. 그러고 보니 사랑 노래는 크루셜 스타 형과 함께한 곡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올해의 목표"
▲ ⓒ 도넛멘
- '데려갈게'의 가사에서는 공격성도 묻어난다. 여성 래퍼, 아이돌 래퍼에 대해 말하지 않나.
"여성 래퍼의 부재와 극명하게 갈리는 아이돌 래퍼의 편차를 짚고 넘어간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바비나 비아이는 힙합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는 친구들 같다."
- '데려갈게'라는 곡이 여러모로 대단하다. 더콰이엇이 참여하지 않았나.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해봤는데 음악만큼이나 정말 멋진 분이다. 피처링은 개인적으로 부탁한 거고. 가사는 비행기 안에서 썼다고 들었다."
- 영감의 출처는 어디인가.
"사색하다 보면 문득문득 생각난다. 당연한 이치겠지만 아련한 비트를 들으면 아련한 주제가 떠오르고 강한 비트 들으면 강한 주제가 떠오른다."
- 음악을 하면서 가장 감사한 사람을 언급해 보자.
"주변 사람들 모두 누구랄 것 없이 감사하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친구들에게 고맙고, 음악적으로 힘써주는 한 분 한 분 늘 감사드린다."
- 도넛맨에게 남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가사에 자신 있다. 어느 한 부분이 좋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짜임새를 괜찮게 구성하는 것 같다."
- <쇼미더머니>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부정적이지는 않다. 지속해서 방송한다는 전제하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 만일 <쇼미더머니3>의 방식이라면 일리네어 방을 택하지 않았을까."
- 올 한 해 꼭 이루고 싶은 것은?
"'next year' 속 가사가 내 포부를 말해주고 있다.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삶과 더불어 경제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타인을 끌어줄 수 있을 만한 수준이라면 성공한 한 해이지 않을까 싶다."
- 도넛맨의 딜레마는 무엇인가.
"내 유명세가 높은 것도 아니고 딱히 나와 말을 섞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술자리만 가면 한국 힙합에 대한 토론이 시작된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웃음)"
- 마지막이다.
"시작하는 단계이니만큼 더 보여주고 더 가까이 들려주고 싶다. 일단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게 올해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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