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선고 받았던 아내... 기적이 일어났다
천리향 꽃망울 터트리듯 아름답게 피어난 아내
무려 보름 만에 연천 집에 도착하니 사방이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처마 밑에 놓아 둔 큰 양동이에는 얼음이 통째로 얼어있고, 보일러실 밖으로 나온 수도꼭지 밑에도 바윗덩어리 같은 얼음덩어리가 빙벽처럼 얼어붙어 있습니다. 아마 수도꼭지에서 한 방울씩 새어 나오던 물방울이 너무 춥다 보니 그대로 얼어버린 것 같습니다. 춥다고 집을 오랫동안 비워둔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 셈입니다.
"저 양동이에 얼어붙은 얼음을 어이할꼬?"
지붕에 있던 눈이 햇볕이 들면서 조금씩 녹아 물방울이 돼 홈통에 흘러내려와 그대로 얼어붙어 있습니다. 얼음이 얼기 전에 양동이를 치웠어야 하는 건데, 지난 12월 5일 내린 빗물이 하루 만에 저렇게 얼어버리더니 지금까지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양동이가 터져 버릴 것만 같습니다.
나는 창고에서 곡괭이를 들고 와 얼음덩어리를 깨부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곡괭이로 찍어 내려도 꿈쩍을 안 하더니 자꾸 찍어내리니 조금씩 얼음조각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열 번 찍어 안 깨지는 얼음이 있을까?"
"여보, 그러다가 다쳐요. 어깨도 시원치 않은 분이 그러다가 큰일 나겠어요. 제발 좀 그만둬요."
아내가 극구 말렸지만 그대로 중단할 수는 없는 일. 그러나 윗부분에 언 얼음은 다소 조각이 났지만 통 안에 얼어붙은 덩어리는 여간해서는 부서지지 않습니다. 양동이라도 홈통 밑에서 조금 빗겨나게 움직여야 할 텐데 도대체 꿈쩍을 하질 않습니다.
"이이가 정말, 그만 두시래도…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뜨거운 물을 좀 부어 봐요."
"옳지! 그 방법이 좋겠네요. 허허. 이렇게 멍청해서야, 나 원 참…."
나는 뜨거운 물을 작은 양동이에 퍼 와서 큰 통에 부어넣고, 밑 부분에도 흘려보냈습니다. 아, 그랬더니 통 안에도 물이 살살 녹아내리고, 통 밑에 꽁꽁 얼어붙었던 얼음도 녹아내리더군요. 그리고 곡괭이로 찍어대니 훨씬 더 잘 으깨집니다.
조각난 얼음 덩어리를 바가지로 퍼내고 통을 밀었더니 드디어 통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여자 말을 들어서 손해날 것 없다더니... 남자들이야 힘만 좀 세다 뿐이지 역시 여자들의 생활 지혜를 따라갈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큰 통을 홈통에서 빗겨나게 옆으로 굴리는 작업을 마치고 나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힙니다.
2년 밖에 못 산다던 아내에게 일어난 기적... 그리고 천리향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치며 거실로 들어오니 여자의 분 냄새 같은 은은한 향기가 온 몸으로 밀려왔습니다.
"어? 이거 무슨 향기지?"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천리향이 피어났어요!"
"오, 이 한겨울에 피어난 천리향 향기는 정말 은은해요!"
꽃들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보름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추운 거실에서 천리향이 홀로 피어 진한 향기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에 피어나던 붉은 크리스마스선인장은 하나둘 시들어 가는데, 그 옆에 놓아두었던 천리향이 밤하늘의 별처럼 하얗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 향기가 천리를 간다하여 '천리향'이라 붙여진 이름답게 몇 송이 핀 천리향 향이 거실은 물론 다락방 서재에도, 화장실에도, 집안 구석구석 어디를 가나 아득하게 밀려옵니다. 마치 아내의 향기처럼 천리향이 품어낸 향기가 온 집안에 퍼져 있습니다.
이 천리향은 3년 전 구례 섬진강변 수평리에 살 적에 화단에서 다 죽어가던 것을 아내가 화분에 옮겨 심어 애지중지 키워온 귀한 나무입니다. 아내는 시들시들 다 죽어가는 천리향을 정성들여 물을 주면서 길러왔습니다. 아내는 마치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내듯 천리향을 정성스럽게 보살피며 키웠습니다.
아내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천리향은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나듯 양지바른 거실에서 생기를 찾아 갔습니다. 그러더니 저렇게 해마다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우리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있습니다.
6년 전만 해도 아내 역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심장이식을 하지 않으면 2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삶이 아내에게 주어졌습니다, 지금은 지나간 말처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그땐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모든 것이 저 수평선 너머로 가물가물 사라지듯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식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사람이, 그것도 나와 가장 가까운 아내의 생명이 산다는 기약도 없이 매일 꺼져가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아내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내 마음속에 가진 '사랑'을 온전히 다 쏟아붓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마 그 6개월 동안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40년을 살아온 기간보다도 더 절실하고 치열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의 기적일까? 아니면 천운일까? 아내는 심장이식 등록을 한 지 6개월 만에 장기 기증자를 만나 기적처럼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사랑의 기적'이라는 것을 믿기로 했습니다.
아사 직전에 있던 이 천리향도 아내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천리향을 구례에서 이곳 연천으로 이사올 때에 가져왔는데, 매년 겨울이 오면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주고 향기를 품어주고 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다가 다시 기적처럼 살아난 아내는 모든 생명을 자기 생명처럼 더욱 귀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내 앞에서 나뭇가지나 화초 잎사귀 하나를 함부로 자르지 못합니다. 아무리 작은 나뭇가지를 자르더라도 아내에게 물어본 다음에 손질을 해야 합니다.
"여보, 당신 덕분에 이 엄동설한에 아름다운 천리향 꽃도 볼 수 있고, 향기도 맡을 수 있으니 참으로 고맙소."
"고맙긴요. 물이나 잘 주세요."
"아무렴 여부가 있소."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아내가 다시 살아난 이후, 나는 정말로 정성스럽게 화초를 물을 주게 되었습니다. 물을 적당히 잘 준다는 것은 뿌리에 골고루 스며들도록 아주 천천히 주는 것이지요. 우리 집 거실에는 40여 개의 화분이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모두 실내로 들어와 한 식구처럼 지내는 화초와 나무들입니다. 오전 10시에 도착하여 그 40개의 화분에 물을 다 주고 나니 벌써 점심때가 다 되었습니다.
"여보, 라면이 다 퍼져요. 빨리 오세요."
"그렇지, 나도 먹어야 살지. 크크."
사람이든 나무든 사랑을 듬뿍 주어야만 생명의 꽃을 아름답게 피우는 모양입니다. 매년 이 맘때쯤이면 우리 집 거실에는 천리향이 슬프도록 아름답게 피어나 향기를 뿜어냅니다. 그것은 마치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아내가 내뿜는 향기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이라는 손택수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것은/살을 부비면서도/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어디나 있다는 거지/허나 네가 갸륵한 것은/연애 적부터 궁지에 몰리면 하던 버릇/내 숱한 거짓말에 짐짓 손가락을 걸며/겨울을 건너가는 아내 때문이지/등을 맞댄 천리 너머/꽃망울 터지는 소리를 엿듣는 밤/너 서럽고 갸륵한 천리향아'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 집 거실에는 지금 등을 맞댄 천리 너머에 겨울을 건너가는 아내가 천리향 꽃망울을 터트리듯 서럽고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저 양동이에 얼어붙은 얼음을 어이할꼬?"
▲ 처마 밑 홈통 밑에 얼어붙은 양동이. 곡괭이로 찍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 최오균
지붕에 있던 눈이 햇볕이 들면서 조금씩 녹아 물방울이 돼 홈통에 흘러내려와 그대로 얼어붙어 있습니다. 얼음이 얼기 전에 양동이를 치웠어야 하는 건데, 지난 12월 5일 내린 빗물이 하루 만에 저렇게 얼어버리더니 지금까지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양동이가 터져 버릴 것만 같습니다.
나는 창고에서 곡괭이를 들고 와 얼음덩어리를 깨부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곡괭이로 찍어 내려도 꿈쩍을 안 하더니 자꾸 찍어내리니 조금씩 얼음조각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열 번 찍어 안 깨지는 얼음이 있을까?"
"여보, 그러다가 다쳐요. 어깨도 시원치 않은 분이 그러다가 큰일 나겠어요. 제발 좀 그만둬요."
아내가 극구 말렸지만 그대로 중단할 수는 없는 일. 그러나 윗부분에 언 얼음은 다소 조각이 났지만 통 안에 얼어붙은 덩어리는 여간해서는 부서지지 않습니다. 양동이라도 홈통 밑에서 조금 빗겨나게 움직여야 할 텐데 도대체 꿈쩍을 하질 않습니다.
"이이가 정말, 그만 두시래도…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뜨거운 물을 좀 부어 봐요."
"옳지! 그 방법이 좋겠네요. 허허. 이렇게 멍청해서야, 나 원 참…."
▲ 아내의 말을 듣고 뜨거운 물을 부으니 스르르 녹아내려가는 얼음 ⓒ 최오균
나는 뜨거운 물을 작은 양동이에 퍼 와서 큰 통에 부어넣고, 밑 부분에도 흘려보냈습니다. 아, 그랬더니 통 안에도 물이 살살 녹아내리고, 통 밑에 꽁꽁 얼어붙었던 얼음도 녹아내리더군요. 그리고 곡괭이로 찍어대니 훨씬 더 잘 으깨집니다.
조각난 얼음 덩어리를 바가지로 퍼내고 통을 밀었더니 드디어 통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여자 말을 들어서 손해날 것 없다더니... 남자들이야 힘만 좀 세다 뿐이지 역시 여자들의 생활 지혜를 따라갈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큰 통을 홈통에서 빗겨나게 옆으로 굴리는 작업을 마치고 나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힙니다.
2년 밖에 못 산다던 아내에게 일어난 기적... 그리고 천리향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치며 거실로 들어오니 여자의 분 냄새 같은 은은한 향기가 온 몸으로 밀려왔습니다.
"어? 이거 무슨 향기지?"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천리향이 피어났어요!"
"오, 이 한겨울에 피어난 천리향 향기는 정말 은은해요!"
꽃들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보름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추운 거실에서 천리향이 홀로 피어 진한 향기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에 피어나던 붉은 크리스마스선인장은 하나둘 시들어 가는데, 그 옆에 놓아두었던 천리향이 밤하늘의 별처럼 하얗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 아시직전에 있던 천리향이 아내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엄동설한에 피어나 온 집안 가득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 최오균
그 향기가 천리를 간다하여 '천리향'이라 붙여진 이름답게 몇 송이 핀 천리향 향이 거실은 물론 다락방 서재에도, 화장실에도, 집안 구석구석 어디를 가나 아득하게 밀려옵니다. 마치 아내의 향기처럼 천리향이 품어낸 향기가 온 집안에 퍼져 있습니다.
이 천리향은 3년 전 구례 섬진강변 수평리에 살 적에 화단에서 다 죽어가던 것을 아내가 화분에 옮겨 심어 애지중지 키워온 귀한 나무입니다. 아내는 시들시들 다 죽어가는 천리향을 정성들여 물을 주면서 길러왔습니다. 아내는 마치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내듯 천리향을 정성스럽게 보살피며 키웠습니다.
아내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천리향은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나듯 양지바른 거실에서 생기를 찾아 갔습니다. 그러더니 저렇게 해마다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우리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있습니다.
6년 전만 해도 아내 역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심장이식을 하지 않으면 2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삶이 아내에게 주어졌습니다, 지금은 지나간 말처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그땐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모든 것이 저 수평선 너머로 가물가물 사라지듯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식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사람이, 그것도 나와 가장 가까운 아내의 생명이 산다는 기약도 없이 매일 꺼져가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아내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내 마음속에 가진 '사랑'을 온전히 다 쏟아붓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마 그 6개월 동안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40년을 살아온 기간보다도 더 절실하고 치열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의 기적일까? 아니면 천운일까? 아내는 심장이식 등록을 한 지 6개월 만에 장기 기증자를 만나 기적처럼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사랑의 기적'이라는 것을 믿기로 했습니다.
아사 직전에 있던 이 천리향도 아내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천리향을 구례에서 이곳 연천으로 이사올 때에 가져왔는데, 매년 겨울이 오면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주고 향기를 품어주고 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다가 다시 기적처럼 살아난 아내는 모든 생명을 자기 생명처럼 더욱 귀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내 앞에서 나뭇가지나 화초 잎사귀 하나를 함부로 자르지 못합니다. 아무리 작은 나뭇가지를 자르더라도 아내에게 물어본 다음에 손질을 해야 합니다.
▲ 별꽃처럼 피어나는 천리향 ⓒ 최오균
"여보, 당신 덕분에 이 엄동설한에 아름다운 천리향 꽃도 볼 수 있고, 향기도 맡을 수 있으니 참으로 고맙소."
"고맙긴요. 물이나 잘 주세요."
"아무렴 여부가 있소."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아내가 다시 살아난 이후, 나는 정말로 정성스럽게 화초를 물을 주게 되었습니다. 물을 적당히 잘 준다는 것은 뿌리에 골고루 스며들도록 아주 천천히 주는 것이지요. 우리 집 거실에는 40여 개의 화분이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모두 실내로 들어와 한 식구처럼 지내는 화초와 나무들입니다. 오전 10시에 도착하여 그 40개의 화분에 물을 다 주고 나니 벌써 점심때가 다 되었습니다.
"여보, 라면이 다 퍼져요. 빨리 오세요."
"그렇지, 나도 먹어야 살지. 크크."
사람이든 나무든 사랑을 듬뿍 주어야만 생명의 꽃을 아름답게 피우는 모양입니다. 매년 이 맘때쯤이면 우리 집 거실에는 천리향이 슬프도록 아름답게 피어나 향기를 뿜어냅니다. 그것은 마치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아내가 내뿜는 향기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이라는 손택수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것은/살을 부비면서도/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어디나 있다는 거지/허나 네가 갸륵한 것은/연애 적부터 궁지에 몰리면 하던 버릇/내 숱한 거짓말에 짐짓 손가락을 걸며/겨울을 건너가는 아내 때문이지/등을 맞댄 천리 너머/꽃망울 터지는 소리를 엿듣는 밤/너 서럽고 갸륵한 천리향아'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 집 거실에는 지금 등을 맞댄 천리 너머에 겨울을 건너가는 아내가 천리향 꽃망울을 터트리듯 서럽고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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