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검사들에게 날린 '펀치'..."저는 검사입니다"

[드라마리뷰] "검사는 청와대의 하명 아닌 '법의 명령' 들어야" 대사가 준 울림

등록|2015.01.07 11:45 수정|2015.01.07 11:45

▲ <펀치> 속 윤지숙(최명길 분) 법무부 장관과 정국현(김응수) 차장검사 ⓒ sbs


"장관님, 저는 검사입니다. 검사가 들어야 할 명령은 청와대의 하명이 아니라 법의 명령입니다."

어쩌면 이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추격자>와 <황금의 제국>을 집필한 박경수 작가가 굳이 식상한 소재라는 비판을 등에 짊어지면서까지 검사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지난 6일 방영된 SBS 월화드라마 <펀치> 속 정국현(김응수 분) 차장검사의 한마디는 커다란 울림을 자아냈다. 

지금껏 이태준(조재현 분) 검찰총장과 윤지숙(최명길 분) 법무부 장관의 '선vs악' 대결로 흘러가던 드라마는 7회에 이르러 하나의 반전을 선사했다. 정의의 편에 서서 공명정대한 수사를 지시하던 윤지숙 장관의 허물을 밝힌 것이다.

윤 장관은 과거 자신의 안위와 아들을 키기기 위해 병역 비리 사건을 덮은 전력이 있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비리로 얼룩진 이태준의 검찰 장악을 막는 것이었지만, 결국 그녀는 법과 양심의 명령을 저버렸고,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똑같은 선택을 되풀이했다.

선vs악 아닌, 나쁜 사람과 덜 나쁜 사람의 권력다툼

이날 이태준 총장이 '병역비리 수사' 카드를 꺼내들어 윤지숙 장관을 압박해오자 결국 윤 장관은 이 총장과 손을 잡고, 그와 오션캐피탈 실소유주인 김상민 회장 사이의 비리를 박정환(김래원 분) 검사 개인에게 덮어씌우기로 결정했다. 이태준 총장과 윤지숙 장관의 힘겨루기는 사실상 부패와 정의의 싸움이 아닌, 나쁜 사람과 덜 나쁜 사람의 권력다툼이었던 것이다.

신하경(김아중 분) 검사에게 이태준 총장과 에 대한 수사를 그만하라고 지시한 윤지숙 장관의 핑계는 더욱 가관이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한 타협이었음에도 "청와대의 지시"라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안 그래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회장를 무리하게 수사하는 것은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윤장관에 맞서 신하경 검사는 "한 집안의 가장도 구속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맞불을 놓지만, 결국 수사권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다.

많은 시청자가 그렇게 느꼈을 테지만, 경제가 어려우니 기업 대표에 대한 수사를 중간에 마무리하고, 또 청와대의 명령이니 기소를 중단해야 하는 장면들은 단지 드라마 속 설정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비슷한 사례들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가 따라야 할 것은 청와대의 하명 아닌 법의 명령"

▲ <펀치> 속 신하경(김아중 분) 검사와 박정환(김래원 분) 검사 ⓒ sbs


물론,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박정환 검사의 말도 일리는 있다.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데도 동의한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묵묵하게 땀 흘리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롱받고 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신하경 검사의 말대로, 원래 그렇다는 이유로 법을 어기면서까지 이겨온 사람들과 똑같이 살면 당연히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아야 한다.

비록 우리나라 검사들의 현실이 드라마 속 이호성(온주완 분)의 대사처럼 '나쁜 사람과 덜 나쁜 사람 중 선택'해야 하는 운명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그 선택의 기준이 상부의 명령이나 권력자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진실은 저 바다 깊숙이 가라앉게 될 것이고, 이태준 검찰 총장이 자신의 비리를 박정환 검사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는 일이 현실에서도 횡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날 법무부 장관에 맞서 신하경 검사에게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수사 계속 진행하라"고 지시한 정국현 차장검사의 한마디는 실제로 박경수 작가가 우리나라 검사들에게 외치는 울분처럼 느껴진다.

과연 <펀치> 속 검사들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라는 거대 권력에 맞서 끝까지 '법의 명령'을 완수해낼 수 있을까. 장담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한발 더 내딛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권력자의 가이드라인이 아닌 법과 양심의 명령에 더 귀를 기울이는 그런 법조인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saintpcw.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