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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날"...'논란' 중심에 선 캄보디아 국경일

킬링필드를 종식시킨 해방의 날 vs. 베트남 침공 식민역사가 시작된 날

등록|2015.01.08 10:41 수정|2015.01.08 10:41

전승일 기념행사장에 참석한 훈센 총리(가운데)훈센총리의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해온 당서열 2위 헹 삼린 국회의장과 영부인 분 라니 여사도 행사에 참석했다. ⓒ 박정연


지난 7일(현지시각) 오전 캄보디아 여당인 인민당(CPP) 당사에서 제36주년 전승기념일(Victory day)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는 최고 권력자 훈센 총리를 비롯한 정부여당고위관료들과 주재국 외교관, 그리고, 수 천여 명에 달하는 여당지지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식전행사로 전통음악에 맞춘 다채로운 축하공연이 이어졌고, 당 서열 2위 헹 삼린 국회의장이 기념사를 낭독했다. 다만, 오랜 투병중인 것으로 알려진 서열 1위 찌아 심(83) 상원의장은 이날 불참했다.

국가공휴일로 정해진 전승기념일 행사는 지난 1979년 1월 7일 '킬링필드'로 악명 높았던 크메르루주 정권을 무너뜨린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여당 주최로 매년 열린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과거 1970년대 크메르루주는 농업을 기반으로 한 급진공산주의혁명을 표방, 200만 민간인을 학살한 주범 폴포트가 만든 정권이었다. 그런데 이 잔인무도한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 지금의 훈센정권 핵심부다. 크메르루주 정권이 이웃나라 베트남과 영토분쟁을 빌미삼아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전직 크메르루주 장교출신이었던 훈센 총리를 비롯한 반군이 이끄는 게릴라군이 베트남군 예하부대로 합류, 수도 프놈펜을 함락시키고 정권을 차지했다.

따라서, 현 정부입장에서는 단순히 이날이 폴포트정권을 물리친 역사적인 승리의 날이란 의미 외에 지금의 집권여당과 정부가 새롭게 재탄생된 날이란 상징적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시각을 달리하면, 이날은 이웃나라 베트남 군대가 캄보디아를 무력으로 함락시킨 치욕의 날이다. 이날 이후 캄보디아는 식민지나 다름없는 베트남 꼭두각시 정권으로 전락, 무려 10년 간 이나 굴욕의 역사를 경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아픔과 진실 때문에 야당과 진보성향 지식인들은 이날을 '국치(國恥)의 날'이라고까지 표현하며 훈센총리와 각을 세우고 현 집권여당을 향해 맹비난을 쏟아 내곤 한다. 삼 랭시가 이끄는 통합야당(CNRP)측은 이번 전승기념일을 앞두고 금년에도 비난의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어찌됐든, 훈센정권 입장에서는 바로 이런 점이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게 할 만큼 최대 약점인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이러한 태생적 한계로 말미암아, 지금까지도 현정권이 베트남의 정치적 그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정치평론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9단 훈센총리의 정치적 기반은 여전히 건재한 편이다.  지난 1985년 나이 33살 세계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오른 이래 지금까지 무려 30년 넘게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현지인들에게 전승기념일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전승기념일 축하공연 모습지난 1월 7일(현지시각) 전승일 기념행사가 치러진 인민당 당사에서 전통공연 무용수들이 축하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 ⓒ 박정연


직장인 피아랏(41)씨는 "전승기념일은 크메르루주로 부터 해방된 날이다. 그래서 매우 의미 있는 날"이라고 말했다. 반면 야당지지자이기도 한 공장노조원 꽁띠아(29)씨는 "베트남에 나라를 빼앗긴 날을 기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승기념일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예상대로 주로 진보성향의 젊은이들이나 야당지지자들이, 긍정적으로 보는 쪽은 과거 킬링필드를 경험하거나 가난과 착취를 경험한 중년 이상 세대가 많았다. 

요즘 캄보디아에서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변화의 바람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현 정권에 염증을 느낀 진보성향의 젊은 20~30대 유권자들이 늘어나고, 2013년 총선에서도 전체 의석 123석 중 통합야당이 55석을 차지할 만큼 야당세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최근 야당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일각에서는 전승기념일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일고의 논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무런 대꾸조차 없다.

최근 들어 더욱 불거진 캄보디아 전승기념일을 둘러싼 논란이 얼마나 더 계속하게 될지 여부는 아무래도 3년 후인 2018년에 치러질 총선결과에 달려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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