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학교폭력 쉬쉬하는 학교, 이것 때문이었다

대응 매뉴얼 유명무실화... 경기교육청 '회복적 생활교육' 눈길

등록|2015.01.13 10:34 수정|2015.01.14 21:58
전북 전주 지역에 있는 A 중학교는 지난 6일, 학교폭력자치위원회(아래 자치위원회)를 열어 동급생을 6시간 동안 감금·폭행한 가해학생 2명에게 강제 전학을 명령했다.

A 중학교는 피해 학생의 부모가 지난 1년간 4차례나 담임교사에게 피해상황을 상담했음에도 불구하고 도교육청에 사안 보고를 하지 않았다. A 중학교 관계자는 "자치위원회를 열면 교우관계가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해 담임교사가 상담을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했다"고 그 이유를 전했다.

이는 비단 A 중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B 중학교를 다니던 가해 남학생 2명은 지난 7일, 위탁교육과 사회봉사활동, 학부모 특별교육, 피해학생 접근금지 등의 징계를 받았다.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 회피하는 현장... 왜?

학교폭력 신고전화 홍보 조형물지난 2014년 11월 7일 서울 남대문 경찰서 옥상에 설치된 조형물이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경찰관이 버스를 들고 있는 이 조형물은 '광고천재'로 알려진 이제석 씨의 설치미술 작품으로 경찰청이 '학교폭력 신고전화 117의 날'인 11월 7일을 맞아 공개한 옥외광고물이다. ⓒ 연합뉴스


일선 학교는 왜 도교육청에 관련 사안을 보고하지 않는 것일까. 도교육청에 보고하면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고 있어 이를 회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도교육청의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에 따른다면 일선 학교는 학교폭력 발생 시 교육청 보고와 동시에 자치위원회를 구성한다.

자치위원회는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에 대한 상담, 심각한 경우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을 논의한다. 그러나 일부 교사들은, 이 과정에서 학생간 관계가 더욱 악화된다고 우려한다.

전북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12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서 가해학생에게 징계를 내리고 피해자에게 형식적으로 사과하게 하는데, 그러고 나면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보다는 '너 나중에 두고 보자'라는 식의 불만만 가지게 된다"고 전했다.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이 현장에서 외면 당하는 이유다. 근본적인 학교폭력 해결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매뉴얼은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한다'는 논지로, 가해자의 처벌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매뉴얼을 그대로 실행하면 학교폭력이 오히려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피해자 상처 회복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조성현 한국평화교육훈련원 연구원은 전화 인터뷰에서 "학교폭력자치위원회 결과에 따라 가해학생은 봉사활동, 전학, 소년원까지 가는데 그게 과연 결과적으로 당사자들에게 좋은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가 잘못한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벌 받으면 화나고 억울한 마음이 들 텐데, 그러면 재수 없어서 걸렸다는 생각에 복수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조정과 화해로 근본 갈등 해소해야

강제 전학을 보낸다 해도 가해 및 피해 학생 간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하교 뒤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전학을 하려 해도 새로운 학교에서 반기지 않는 데다 또 다시 문제를 일으켜 전학이 되풀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해학생을 소년원에 보낸다고 해도 폭력성은 치료되지 않는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최근 학교폭력 해결 방식을 바꿨다. 2014년부터 146개 학교에 회복적 생활교육을 도입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잘못된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처벌과 비난이 아닌 조정과 화해를 통한 문제해결 방식이다. 일상적인 사건에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폭력사건도 대화로 풀어내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조성현 연구원은 "(생활교육은) 피해자는 전문가가 동석한 상황에서 앞으로 극복할 방안을 이야기하고, 가해자는 앞으로 어떻게 사과하고 금전적, 정신적 보상을 할지 등을 이야기해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한다"며 "경기도 교육청은 폭력사건이 있을 때 선택지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 또는 회복적 교육 가운데서 선택할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학교 폭력 조정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

전북교육청 역시 회복적 생활교육과 관련한 교사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다. 2013년 4월 지평선중 등 2개 학교 38명, 10월 전주서중 등 5개 학교 68명, 2014년 10월 군산 회현중 등 4개 학교 54명이 15시간의 연수를 받았다.

전북은 740여 개의 초중고에 2만4000여 명의 교사가 있다. 이 가운데 관련 연수를 마친 교사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A 중학교 폭력사건을 조정할 전문가가 도내에는 없는 셈이다.

지난 8일, 김재용 전북도교육청 인성건강과 장학관은 "15시간 연수는 기초적인 수업으로, 실전 경험이 없이 도내 큰 폭력사건에서 조정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김 장학관은 "경기도교육청은 한국평화교육훈련원과 함께 협약을 맺어 전문가가 양성된 상태"라며 "전북교육청도 민간단체와 함께 조직화를 해 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북포스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