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항명 수석' 사표, 즉각 수리한 이유
[주장] 김기춘에 대한 항명... '충'과 '기강확립' 강조해도 안 먹혔다
지난 9일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놓고 공개적으로 '항명'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사의를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수용했다. 물의를 빚었고 그로 인해 사의를 표명했으니 당연한 조치로 해석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정권의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수행하는 민정수석의 항명은 그 자체로 큰 충격이지만 더 큰 충격은 그것을 대하는 청와대 대응자세에 있다.
고위공직자의 노골적 항명, 왜 '진상규명' 없이 내보내나
민정수석이 항명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들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궁금해 한다. 대통령과 김기춘 실장 역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그 궁금증을 풀 힘을 가지고 있다. 한 명은 최고 권력자이고, 다른 한 명은 비서실장 아닌가.
실제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김영한 전 수석처럼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계를 잠시 돌려 2013년 9월로 돌아가 보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과 접하게 된다. 당시 채 전 총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에 생채기를 냈다.
2013년 9월 6일자 <조선일보>는 '채동욱 혼외자' 문제를 특종으로 터트린다. 채 전 총장은 부인했지만 보수언론의 보도는 계속되었다. 같은 달 13일, 법무부에서 혼외자와 관련해 감찰에 착수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흐른 뒤 채 전 총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새가 둥지를 떠날 때는 둥지를 깨끗하게 하고 떠난다는 말이 있다"는 말을 남긴 채 대검청사를 떠났다.
인상적인 장면은 그 다음날 등장했다. 2013년 9월 14일, 모든 언론에서 '채 총장 사의표명'을 머리기사로 보도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진실 규명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사표수리 여부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하면서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채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보름가량 지난 9월 27일, 법무부에서 진상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법무부는 "혼외 아들 의혹이 사실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여러 진술과 정황 자료를 확보했다"며 "(청와대에) 채 총장의 사표 수리를 건의했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28일, 채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지 보름 후에야 박근혜 대통령은 비로소 사표를 수리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흘렀다. 이번에는 정권과 각을 세웠던 검찰총장이 아닌 청와대에서 검찰을 관리하는 민정수석이 '항명'을 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리고 다음날 박 대통령은 사표를 수리했다. 앞서 채동욱의 경우에 비춰 이해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출석을 요구했고, 직속상관인 비서실장이 출석을 지시했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 사건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앞서 언급했던 '공직기강'을 정확히 훼손한 행위가 아닌가.
이 사건은 채동욱 전 총장의 '언론에 의해 11세로 주장되는 혼외자 존재 여부' 이상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공직기강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그러나 사의를 표명한 다음날 그의 사표는 수리됐다. 괘씸했던 채 전 총장은 보름 동안 진상조사를 받았지만, 김영한 전 수석은 청와대 감찰은커녕 사표만 바로 수리됐을 뿐이다.
박 대통령, '꽃놀이패' 외면한 까닭은?
김영한 전 수석의 '항명'은 충격적이었지만 대반전의 기회는 충분했다. 여기서 대반전이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선택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김기춘 실장이 사표수리를 건의했다손 치더라도, 박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한 후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지시했더라면 박 대통령의 선택은 돋보였을 것이다. 리더십 의혹도 상당부분 해소되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시했더라면 그는 출석할 수밖에 없었다. 대내외 압박도 컸을 것이고 대통령의 의중을 이해한 여당에서 '동행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불출석한다면 관련법에 의거, 고발도 가능했다. 박 대통령이 그의 국회 출석을 지시했더라면 그의 출석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에게는 '꽃놀이패'였을 것이다.
박 대통령과 참모들이 위 내용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회찬 전 의원 등은 실제로 김 전 수석에 대한 사표를 반려하고 국회에 출석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SNS상에서 펴기도 했다. 야당의 총공세에 여러 가지 대응책을 생각했을 것이고 '사표반려 후 국회 출석'도 선택옵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항명'이 박 대통령이나 김기춘 실장 입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우발적 행동이라 하더라도, 즉각적인 사표수리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불출석한 김영한 전 수석에 대해 야당에서는 '여야 합의만 하면 민간인 신분으로도 증인석에 세울 수 있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민간인 신분으로라도 부르겠다는데 사표 수리라니, 그리 급했던가. 해석이 어려운 대목이다.
결국 모든 일은 박근혜 뜻대로
박근혜 정부는 몇 번의 위기를 잘 모면해 왔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파문도 결국 헤쳐 나왔다. 2014년 세월호 대참사를 겪었지만 매달리는 유가족을 외면하고도 지지율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 말 터져 나온 '정윤회 문건'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힘겹게 헤쳐 나오는가 싶었는데 2015년 초부터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항명파문이 권력 기반을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다.
민정수석의 항명은 충격적이지만 앞선 두 사건(국정원 대선개입과 세월호 참사) 대비 그 자체로 갖는 의미는 가볍다. 주목할 대목은 '항명'을 통해서 청와대의 권력 민낯이 그대로 국민들 앞에 노출됐다는 점이다.
이번 항명은 공개적이었고, 노골적이었다는 대목에서 파장이 더 크다. 김기춘 실장이 부하직원들 앞에서 충(忠)을 강조한 게 엊그제였다. 그런데 청와대는 다른 선택은 생각도 하지 않은 것처럼 다음날 즉시 김영한 전 수석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국회 증언대에 서지 않게 됐다. 여야가 합의하면 민간인도 증언대에 세울 수 있으나, 여당이 합의해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정권의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수행하는 민정수석의 항명은 그 자체로 큰 충격이지만 더 큰 충격은 그것을 대하는 청와대 대응자세에 있다.
고위공직자의 노골적 항명, 왜 '진상규명' 없이 내보내나
▲ 사표냈지만... 수리 않고 '진상규명'2013년 9월 13일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과 관련해 전격적으로 사표를 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진상규명'과 '공직기강'을 언급하며 수리하지 않았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13년 9월 16일자 1면 ⓒ 조선일보PDF
민정수석이 항명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들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궁금해 한다. 대통령과 김기춘 실장 역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그 궁금증을 풀 힘을 가지고 있다. 한 명은 최고 권력자이고, 다른 한 명은 비서실장 아닌가.
실제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김영한 전 수석처럼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계를 잠시 돌려 2013년 9월로 돌아가 보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과 접하게 된다. 당시 채 전 총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에 생채기를 냈다.
2013년 9월 6일자 <조선일보>는 '채동욱 혼외자' 문제를 특종으로 터트린다. 채 전 총장은 부인했지만 보수언론의 보도는 계속되었다. 같은 달 13일, 법무부에서 혼외자와 관련해 감찰에 착수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흐른 뒤 채 전 총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새가 둥지를 떠날 때는 둥지를 깨끗하게 하고 떠난다는 말이 있다"는 말을 남긴 채 대검청사를 떠났다.
인상적인 장면은 그 다음날 등장했다. 2013년 9월 14일, 모든 언론에서 '채 총장 사의표명'을 머리기사로 보도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진실 규명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사표수리 여부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하면서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채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보름가량 지난 9월 27일, 법무부에서 진상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법무부는 "혼외 아들 의혹이 사실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여러 진술과 정황 자료를 확보했다"며 "(청와대에) 채 총장의 사표 수리를 건의했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28일, 채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지 보름 후에야 박근혜 대통령은 비로소 사표를 수리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흘렀다. 이번에는 정권과 각을 세웠던 검찰총장이 아닌 청와대에서 검찰을 관리하는 민정수석이 '항명'을 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리고 다음날 박 대통령은 사표를 수리했다. 앞서 채동욱의 경우에 비춰 이해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출석을 요구했고, 직속상관인 비서실장이 출석을 지시했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 사건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앞서 언급했던 '공직기강'을 정확히 훼손한 행위가 아닌가.
이 사건은 채동욱 전 총장의 '언론에 의해 11세로 주장되는 혼외자 존재 여부' 이상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공직기강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그러나 사의를 표명한 다음날 그의 사표는 수리됐다. 괘씸했던 채 전 총장은 보름 동안 진상조사를 받았지만, 김영한 전 수석은 청와대 감찰은커녕 사표만 바로 수리됐을 뿐이다.
박 대통령, '꽃놀이패' 외면한 까닭은?
▲ 그가 항명한 이유?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김기춘 문건' 조사에서 완전히 배제됐기 때문에 항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 1월 12일자 4면 ⓒ 동아일보PDF
김영한 전 수석의 '항명'은 충격적이었지만 대반전의 기회는 충분했다. 여기서 대반전이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선택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김기춘 실장이 사표수리를 건의했다손 치더라도, 박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한 후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지시했더라면 박 대통령의 선택은 돋보였을 것이다. 리더십 의혹도 상당부분 해소되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시했더라면 그는 출석할 수밖에 없었다. 대내외 압박도 컸을 것이고 대통령의 의중을 이해한 여당에서 '동행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불출석한다면 관련법에 의거, 고발도 가능했다. 박 대통령이 그의 국회 출석을 지시했더라면 그의 출석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에게는 '꽃놀이패'였을 것이다.
박 대통령과 참모들이 위 내용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회찬 전 의원 등은 실제로 김 전 수석에 대한 사표를 반려하고 국회에 출석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SNS상에서 펴기도 했다. 야당의 총공세에 여러 가지 대응책을 생각했을 것이고 '사표반려 후 국회 출석'도 선택옵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항명'이 박 대통령이나 김기춘 실장 입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우발적 행동이라 하더라도, 즉각적인 사표수리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불출석한 김영한 전 수석에 대해 야당에서는 '여야 합의만 하면 민간인 신분으로도 증인석에 세울 수 있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민간인 신분으로라도 부르겠다는데 사표 수리라니, 그리 급했던가. 해석이 어려운 대목이다.
결국 모든 일은 박근혜 뜻대로
▲ 김기춘 거취에 관심 집중 박근혜 대통령 기자회견 직전에 터져나온 청와대발 항명사태로 인해 모든 관심은 김기춘 실장의 거취에 쏠리고 있다. 이를 보도한 <중앙일보> 1월 12일자 4면 ⓒ 중앙일보PDF
박근혜 정부는 몇 번의 위기를 잘 모면해 왔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파문도 결국 헤쳐 나왔다. 2014년 세월호 대참사를 겪었지만 매달리는 유가족을 외면하고도 지지율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 말 터져 나온 '정윤회 문건'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힘겹게 헤쳐 나오는가 싶었는데 2015년 초부터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항명파문이 권력 기반을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다.
민정수석의 항명은 충격적이지만 앞선 두 사건(국정원 대선개입과 세월호 참사) 대비 그 자체로 갖는 의미는 가볍다. 주목할 대목은 '항명'을 통해서 청와대의 권력 민낯이 그대로 국민들 앞에 노출됐다는 점이다.
이번 항명은 공개적이었고, 노골적이었다는 대목에서 파장이 더 크다. 김기춘 실장이 부하직원들 앞에서 충(忠)을 강조한 게 엊그제였다. 그런데 청와대는 다른 선택은 생각도 하지 않은 것처럼 다음날 즉시 김영한 전 수석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국회 증언대에 서지 않게 됐다. 여야가 합의하면 민간인도 증언대에 세울 수 있으나, 여당이 합의해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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