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3면 가득 울려퍼진 전자음악의 '빛과 소리'
[리뷰] 홍대 CGV에서 열린 조은희 '송 에 뤼미에르' 공연
▲ 첫 곡 <Glacier>에서 조은희가 직접 신디사이저를 치고 있다. 화면가득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이 시원하다. ⓒ 조은희
전자음악가 조은희의 <송 에 뤼미에르(Son et lumiere)>공연이 지난 2014년 12월 30일 오후 8시, 홍대 CGV 스크린엑스 영화상영관에서 열렸다.
'Son et lumiere'는 프랑스어로 사적지 등에서 밤에 특수 조명과 음향을 곁들여 그 역사를 설명하는 쇼를 뜻한다. 조은희는 전자음악 기반으로 사운드와 작곡의 영역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다원부문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공연제목에서도 보이듯 '빛과 음향'이라는 주제를 기존의 공연장이 아닌 3면의 대형화면으로 둘러싸인 스크린엑스 영화상영관에서 펼친다. 총 6곡을 선보였다. 클래식 공연장이 아닌 영화관으로 음악을 들으러 가는 발걸음은 왠지 더 설레고, 무언가 신선했다. 연말의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었다.
실험적 무대임에도 매진... 기획 의도 잘 살린 공연
▲ 전자음악가 조은희(가운데)의 '송 에 뤼미에르(Son et lumiere)' 중 마지막 곡 <Sleeping Sun>. 공연장 3면 가득 영상과 이색적인 전자음향의 결합이 '빛과 소리'라는 공연명을 잘 드러낸다. ⓒ 조은희
공연장 로비에는 조은희의 앨범이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4곡이 수록되어 있고, 가격은 5000원이었다. 음반판매수익은 전액 불우이웃돕기 모급으로 쓰인다고 한다. 일반 음반보다 확연히 낮은 가격에 그녀의 음악이 궁금했다. 내 집, 내 책상에 작곡가의 음악을 두고 들을 수 있음에, 관객들도 쉽게 지갑을 열었다. 프로그램지는 붉은색과 초록색의 그라데이션이 엷게 섞여 있었다. 돌돌 말려 리본으로 묶여서 작은 선물처럼 진열되어 보기에 예뻤다.
영화관. 전체는 어둡고 앞면이 커다란 화면으로 둘러싸인 전방 좌측에 신디사이저와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작곡가의 자리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작곡가 조은희가 등장하고 첫 곡 <글래시어(Glacier)>가 시작됐다. 눈 앞 큰 화면에 델타 항공 비행기가 보이고 이내 이륙한다.
영상작가 'GAB'이 만든 하얗고 푸르게 펼쳐지는 구름과 하늘이 영화관 벽면의 3면에 가득하다. 조은희가 4도, 7도 음정으로 이루어진 선율을 횡단하며 즉흥인 것 마냥 자유롭고 잔잔한 자신의 피아노 소리를 낸다. 화면가득 밑으로 보이는 하늘에, 관객은 비행기에 탑승한 듯 작곡가의 음악을 온몸 가득 듣는다.
두 번째 <웜 오어 콜드(Warm or Cold)>는 '가가 트랙(GAGA TRACK)'이 영상을 맡았다. 강렬한 비트와 다양한 변주에 맞춰 검정색, 흰색 선들이 삼면 가득 현란하게 분할되어 움직인다. 클라이맥스에서는 그 선들이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 인 듯 보인다. 소리와 이미지의 상호 교류와 다양한 변주가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다음으로 <스토리 오브 사운드(Story of Sound)>였다. 사인웨이브에서 파생되어 최소한으로 움직이는 사운드가 영상제작소 '57STUDIO'의 영상과 함께한다. 원시 고분 속 벽화를 탐험하는 느낌을 주었다. 옛 벽화 속 주인공 사람들이 화면에 초점이 잡히는 순간, 붉고 푸른빛을 내는 수십 개의 장면이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네 번째로 <NSS_0010>은 제일 전자적인 느낌과 영상의 경쾌함이 가득했다. 강렬한 고동을 느낄 수 있는 박자 그리고 다채로운 사운드와 리듬, 소용돌이치는 회오리의 다양한 변주로 가득 찬 작품이었다. 영상은 'VJ박태리'가 함께했다.
다섯 번째 <체인 리액션(Chain Reaction)>은 댄스필름으로, 연출가 김제민(극단 거미 대표)의 영상이었다. 사슬과 물로 채워진 어둡고 좁은 공간 속에 갇힌 남자(안무가 신창호)의 몸짓이 펼쳐진다. 그 상황과 느낌을 물소리, 사슬소리, 밀폐된 공간의 소리를 살려 변주한 전자음향으로 묘사했다. 프로그램지에 댄스필름이라는 장르를 전자음악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작곡가가 고심했다는 만큼, 무용수의 움직임과 물과 사슬의 마찰 등 장면과 심경 묘사에 각별히 신경을 썼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슬리핑 선(Sleeping Sun)>은 작곡가 조은희가 영상작가 김세진의 영상에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넓은 동산 저 멀리 높다란 첨탑 하나가 서 있다. 한 여인이 그것을 향해 다가간다. 아무도 없는 거리, 미국 워싱턴 기념탑과 백악관 등을 배경으로, 어둡지만 천천히 떠오를 듯한 희망을 영상은 담고 있다. 전자음향은 화면 속 배경과 톤을 표현하고, 조은희의 피아노는 그 속의 여인처럼 외롭지만 담대히 오늘을 걸어가는 성숙한 한 여인 같았다.
공연 며칠 전, 실험음악 공연이라 할 수 있는 무대임에도 좌석 200석 규모의 표가 이미 매진되었다는 소식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작곡가 조은희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와 또 호기심이 있다는 얘기다. 좋은 음악 영화인 줄 알고 예매한 관객들도 있다고 하니, 작곡가의 공연 콘셉트와 기획의도가 적중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공연은 음악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공연하는 공연장이 어디인지, 로비에서의 티케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관객안내는 어떤지 등도 중요하다. 프로그램북은 어떤 형태이고, 또 그 외에 무엇이 더 특별한지도 공연전체에 대한 느낌을 좌우한다. 이런 측면에서 조은희의 <송 에 뤼미에르(Son et lumiere)>공연은 연말시즌의 전자음악과 피아노, 한 여성 젊은 작곡가의 개인 작곡발표회와 영상의 결합이라는 부분을 충분히 숙고해 잘 세팅된 작품이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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