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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억' 박 대통령, 2014년 마지막날 뭐했나

[프랑스 정치 vs. 한국 정치] 현안 해법 전한 올랑드 vs. 수사 나열한 박근혜

등록|2015.01.15 11:30 수정|2015.01.15 11:30

▲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 francoishollande.fr


프랑스 대통령이 '생 실베스트르(Saint Sylvestre·새해 전날)'에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국민에게 신년사를 보내는 일이다. 신년사는 지나간 한해 결산과 새해에 전개될 국정계획을 국민에 알리고, 그 계획 실현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국민의 신망과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2014년 12월 31일 파리 포브르 쌩토노레 거리 55번지의 엘리제궁에서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공·민영 TV의 저녁 8시 메인뉴스를 통해 프랑스 국민과 재외 동포에게 신년사를 전했다.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단호한 얼굴의 국가 수반이 의지로 가득 찬 음조와 빠른 어조로 신년 연설을 시작했다. 9분 23초의 담화는 한국 대통령의 신년사에 비해 여섯 배 가량 길었다.

프랑스 대통령, 9분 23초 신년사에 당면 현안 메시지 꼼꼼히 담아

유럽선거와 실업 정책 실패로 인한 정치·경제적 재앙에 대통령 사생활 폭로까지 겹쳐 지리멸렬했던 2014년을 결산하고, 새해 계획과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말 내내 준비했다는 올랑드 대통령의 신년사는 3개의 큰 메시지를 담았다.

첫째, 과거지향이 아닌 미래지향이 되기 위해 투지와 인내가 필요하다. 둘째, 마크롱법을 중심으로 프랑스 젊은이들을 보호하고 기업의 자율성 보장·봉급자 보호·교육과 국민복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세금개혁을 단행하겠다. 셋째, 테러리즘·집단주의·원리주의·인종주의와 싸우고 연대해 국제사회의 주역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이 메시지 속에는 정치·경제·사회·국방·외교를 총망라해 프랑스가 지금 이 순간 직면하고 있는 주요 이슈들이 꼼꼼하게 들어 있다. 경제 불황, 청년실업, 인종주의, 노년층 병마 등 프랑스 국민들이 안고 있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짚어갔다. 또 이러한 문제를 헤쳐갈 수 있는 길은 '믿음'과 '의지'임을 상기시켰다.

특히 이번 신년사에서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가 안고 있는 최대 과제인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의 공감을 불러 모았다. 국정 운영의 '고객'인 국민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일종의 '정책 프로모션'(정책홍보)에 최선을 다하려는 프로패셔널리즘이 엿보였다.

프랑스 대통령의 연봉은 2억 원(매월 약 1만4910 유로)으로 알려져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2억 연봉'에 걸맞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정성을 기울여 신년사 원고를 준비했다. 그렇다면 역시 '2억 연봉'을 받는다는 한국 대통령의 신년사는 어떠했을까?

박근혜 대통령 1분 50초 신년사, 선거공약 재탕한 듯 모호하고 공허

▲ 지난해 12월 31일 박근혜 대통령 신년사 당시 모습. ⓒ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도 같은 날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의 청와대 관저에서 국민들에게 신년사를 발표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신년사는 올랑드 대통령의 신년사와는 달랐다. 1분 50초의 짧은 연설에서 불안과 좌절을 겪고 있는 국민의 눈길을 끌 만한 메시지나 공감할 수 있는 문구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지난 한해 한국은 프랑스보다 더 큰 재앙들이 겪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각종 대형사건·사고들, 극심한 이념적 갈등, 정권을 뒤흔든 '십상시 파문'으로 민심이 요동쳤다. 경기침체 속에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가계부채로 IMF 환란보다 더 큰 국민경제의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이런 당면과제에 대한 해법이 없었다. 청와대 인적쇄신, 가계부채와 청년실업·경기침체 등과 관련된 경제문제, 경직된 남북관계 등 현안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플랜은 보여주지 않았고 '잘 해서 황금알을 낳겠다'는 식의 추상적인 말만 반복했다.

신년사에서 '창의와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로 체질을 바꾸고', '적폐를 해소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이끌어가고 통일의 길을 열겠다'고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해나가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게다가 신년사에 담긴 대부분의 말은 과거 2년 동안 국민에게 내놓았다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약속의 재탕이다. 지키지도 않은 약속을 또 믿어 달라는 말인가? 공허한 약속만 반복하는 신년사는 하나마나다.

대형참사·경기침체 해법 없고 인적쇄신 바란 민심마저 거부한 신년회견

신년사에 이어 지난 12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은 더욱 공허했다. 20분 가량의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임기 3년차의 국정운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2년차 국정수행 결과에 대한 자화자찬과 '선거에 이긴다면 이러한 것을 하겠다'는 선거 유세 공약을 연상 시키는 언어를 쏟아냈다.

대통령 신년사와 신년 기자회견문이라면 구겨진 국민의 가슴 속 주름살을 다림질해 줄 수 있는 공감의 메시지를 하나 정도는 들려줘야 했다. 잇단 참사와 경기 침체로 인해 불안과 절망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과 활력을 불어 넣기는커녕 국민의 바람인 인적쇄신마저 거부한 채 지친 국민에게 오히려 또 힘을 모아달라는 부탁만 읊조렸다.

'2억 연봉' 대통령의 새해 첫 일솜씨는 이렇게 실망스러웠다.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야당은 신랄한 비판을 내놨고 거의 모든 언론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부 신문들은 '국민에게 항명'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에 올렸다. 보수 정치권과 보수 언론에서조차 '졸렬', '오불관언', '민심과 정반대', '민심 무시'라는 평가를 쏟아냈다.

'신년사'는 대통령-국민의 새해 첫 정치적 랑데부... 국민에게 믿음 줘야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고액 연봉자들의 '프로정신'이다. '2억 연봉'의 대통령이라면 정성을 다해 알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다.

프랑스는 제 5공화국 초기 드골 대통령 때 텔레비전을 통한 신년사의 전통이 생겼다. 대통령들은 신년사에서 지나간 한해에 일어났던 프랑스 국내외 정치·경제·사회 문제를 포괄적으로 총결산하고, 동시에 새해에 펼쳐질 정부의 플랜을 국민에게 선명하게 제시하고 이를 잘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국민은 대통령의 신년사를 듣고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며 좀 더 나은 새해에 대한 희망도 품는다. 프랑스에서 국민과의 새해 첫 랑데부(rendez-vous)인 신년사가 프랑스 정치의 필수적 이벤트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런 데 있다.

같은 '2억 연봉'을 받는다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신년사와 신년 기자회견을 본 대한민국 국민들도 이런 믿음과 희망을 품었을까? 지난 2년에 대한 성찰과 반성과 새해 국정운영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계획은 없고 도리어 국민의 바람에 '항명'하는 듯한 신년사에 국민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변화와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데 함께 힘을 모아주기 바란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사는 그래서 국민들에게 무리한 요청인 것 같다. 이런 실망스런 신년사를 보내고도 한국의 대통령은 프랑스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의 '2억 연봉'을 받겠지만, 프랑스 국민보다 더 힘든 한해를 살아온 우리 국민은 올해도 별로 희망차 보이지 않는다.

올랑드 대통령의 2015년 신년사 VS. 박근혜 대통령의 2015년 신년사
<올랑드 대통령의 2015년 신년사>

"세계경제 5위 대국인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주역이다. 연구, 투자 등 주요 분야의 리더로 올해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전진해야 하고, 담대해야 하고, 현 상태를 거부해야 하며, 퇴행을 용납해선 안 된다. 변함없는 지지와 프랑스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 프랑스는 노스탈지가 아니라 희망이다. 발스 정부와 함께 우리 모두는 내일의 프랑스를 준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투지와 인내가 절실하다.

2014년은 힘든 한해였다. 대화를 통해 기업주와 함께 협상하고, 경제시스템은 가능한 한 기업에게 아주 심플하도록 개혁하고 프랑스의 경쟁력을 최대한 살려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 취임 이후 지난 2년간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국토개혁을 이룬 것은 큰 성과였다. 프랑스는 따라서 탈바꿈할 능력이 있다. 여러분들이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2015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사회로의 선회를 시도할 것이고 그 주역은 수상 발스와 경제부장관 마크롱이 될 것이다. 1월에 소개될 마크롱법은 자유로운 구상과 에너지의 발산, 일자리의 창출, 기업의 자율성보장, 봉급자들의 보호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사회를 젊게 하는 하나의 활력제가 될 것이다. 이 법은 특히 젊은층을 위한 것이다. 젊은이들은 항상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하다. 학교불평등을 줄이고 젊은 교사들의 양성을 위해 추가적인 방법을 동원하겠다. 학교에서 정보통신에 대한 플랜을 교육하도록 하여 프랑스가 뉴테크롤로지를 유럽에서 가장 잘 사용하는 국가로 만들겠다.

2015년은 놀라운 지식의 확장과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게 하고 세금정책에 대한 개혁을 단행하겠다. 국민건강에 대한 사회보장(노인보호시설 등)을 확대하고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률이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인생 말년을 고통으로 보내는 환자들의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환자들의 의지를 존중하겠다.

적극외교로 우크라이나와 중동 문제 등의 해결책을 찾고, 이라크, 아프리카 등지에서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군의 노고를 치하한다. 유로존의 침체를 해소하고 민주적 토대를 마련하겠다. 정교분리의 원칙에서 그리고 공화국의 질서와 개인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를 위협하는 테러리즘, 집단주의, 원리주의, 인종주의와 싸울 것이다. 여성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공공서비스를 확대할 것이다. 2015년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기후온난화에 대한 국제회의가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차가 있지만 우리 모두 혼연일체 해야 된다. 프랑스는 모든 분야에서, 그리고 모두를 위해 내년에도 전진할 것이다. 나는 이 투쟁을 끝까지 관리 감독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보수주의자와 위험한 인민주의자들과 대적해 싸울 것이다.

2015년은 대담한 시도와 행동, 그리고 연대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나는 오늘밤 특별히 1인 가정과 약자들, 그리고 최근 참사된 모든 희생자들을 떠올린다. 내 메시지는 믿음이고 특히 우리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의 힘과 우리의 활력에 대한 믿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2015년 신년사>

"지난 70년간 국민 모두가 불굴의 의지로 합심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고,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후손들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줄 역사적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다. 창의와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로 체질을 바꿔가면서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어나가겠다.

깨끗하고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오랫동안 쌓여온 적폐를 해소하는 일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다.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이끌어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 여러분의 하나 된 마음이다. 변화와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 가는 데 함께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최인숙 기자는 프랑스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 정치학 박사로 한국미래발전연구원에 프랑스와 한국의 대통령, 정치인과 정치 그리고 미디어에 관한 재미있는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에도 동시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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