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유등천 꿈꿨던 내가 바보였다
10년 만에 찾아간 유등천 발원지... 난개발로 자연 정취 잃어
10년 만이다. 맑은 물과 울창한 숲으로 기억된 곳을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매며 찾아갔다. 내비게이션도 오락가락해서 어렵게 찾아간 그곳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더덕 냄새 가득하고 게 오지를 찾아가는 듯한 기억은 와르르 무너졌다. 자연 숲 그대로를 품어 안식처와 같이 느꼈던 그곳은 이제 안식처가 아니었다. 유등천 발원지 답사 이야기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에서 들어오자마자 2005년 유등천 종주를 진행해보자고 시작하여 8개월간 구간을 나누어 종주를 완료했다.
그때를 기억하며 2015년 정초 유등천의 발원지를 다시 찾아가 보기로 결심했다. 지난 14일 대전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함께 다시 종주를 감행하였다. 하지만 차라리 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마저 들게 했다.
발원지를 다시 찾아가는 길은 오지를 찾아가는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주소를 잘 인식하지 못하며 다른 길을 안내하면서 난관에 봉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유등천 발원지를 찾아가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첨단시대를 살아가면서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스마트폰마저 통화가 되지 않는 오지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물어 물어 찾아간 유등천 발원지 입구에서 들어가진 얼마 되지 않아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다.
계곡에 즐비하게 자리 잡은 평상이 여름철 한 철 장사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뒤집어 놓아 내년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계곡 양 안에 즐비하게(?) 자리 잡은 민박과 펜션은 계곡을 펜션 것인냥 소유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돈벌이 수단이 된 유등천 발원지의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10년 전 워낙에 좁은 계곡이라서 산을 훼손하지 않고는 펜션이나 민박이 들어오기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잘 보전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었다. 그 때문에 10년 만에 찾아간 발원지의 모습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은 그야말로 난개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펜션과 민박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공사 중인 곳도 있었다. 펜션 주인에게 물어보니 여름철에는 장사가 잘 된다고 설명하면서 너무 많이 개발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며 설명하는 모습에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일부 구간은 하천정비마저 진행하면서 옹벽이 쌓여 자연계곡의 모습을 상실한 곳도 있었다. 재해예방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을 법한 하천 정비는 인공 하천의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유등천을 따라 눈이 녹지 않은 빙판길을 걸으면서 찾아간 발원지 입구에서 나는 다시 놀랐다. 길이 없어 계곡을 따라 발원지를 찾아갔던 10년 전과는 다르게 훤하게 만들어진 임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자연스러움은 사라진 채 다시 큰길을 걸어 가야하는 심정이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웠다.
임도를 따라 얼마 가지 않아 더욱더 놀라운 모습을 만나야 했다. 산림재해예방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사방댐이 저수지처럼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성된 사방댐에는 물이 얼어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사방댐 옆으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예전에 발원지로 추정했던 곳을 접할 수 있었다.
유등천의 발원지는 정확하게 지정되어 있지 않다. 사람마다 월봉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인대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뉘어 있다.
발원지의 개념이 길이나 폭, 수량 등으로 정의되어야 하지만, 개념 정의가 되어 있지 않기에 금강 뜬봉샘처럼 지정된 발원지는 그리 많지 않다. 유등천의 경우, 갑천과 합류되는 지점에서 가장 먼 곳이 월봉산에서 계곡이다. 그 때문에 발원지라고 설정하고 2005년과 2015년에 다시 찾아간 것이다.
각설하고 유등천 발원지는 다행히 아직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이 남아 있었다. 또한 물은 너무나 맑고 투명해서 건드리기 조차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주변의 임도나 펜션과 민박은 이런 감흥을 반감시키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발원지 주변에 양식되고 있는 산양삼밭이라는 푯말과 줄들은 안식처로 느꼈던 월봉산을 감옥으로 바꾸어 버렸다. 삼 재배를 위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곳곳에 진행한 벌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숲 가꾸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지막지한 벌목이 아닐 수 없었다.
유등천은 그야말로 개인화되어 있었다. 철조망과 울타리, 끝 등으로 사유지 경계를 치면서 계곡에 접근조차 할 수 없게 된 지역도 생겨났다. 안식처를 감옥으로 바꾸어 놓은 인간의 행위에 진절머리가 났다.
10년 전의 유등천을 꿈꿨던 내가 바보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 선조의 말이 떠올랐다. 10년이 지난 유등천 발원지의 모습을 보면서 강이 변한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참고
월봉산에서 만난 나무
사위질빵, 인동덩굴, 으름덩굴, 칡, 곰딸기, 가시오가피, 두릅, 복분자, 산초, 산딸기, 찔레,
화살나무, 붉나무,층층나무, 감태나무, 갯버들, 엄나무, 참죽나무, 엄나무, 편백나무,
오동나무, 굴피나무, 오리나무, 물오리나무, 밤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나무
월봉산에서 만난 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박새, 쇠박새, 굴뚝새, 노랑턱멧새, 멧새, 쑥새, 큰부리까마귀, 어치, 까치
▲ 10년전 유등천의 모습아름답기만 했던 유등천의 10년전 모습 ⓒ 대전환경운동연합
대전환경운동연합에서 들어오자마자 2005년 유등천 종주를 진행해보자고 시작하여 8개월간 구간을 나누어 종주를 완료했다.
그때를 기억하며 2015년 정초 유등천의 발원지를 다시 찾아가 보기로 결심했다. 지난 14일 대전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함께 다시 종주를 감행하였다. 하지만 차라리 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마저 들게 했다.
발원지를 다시 찾아가는 길은 오지를 찾아가는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주소를 잘 인식하지 못하며 다른 길을 안내하면서 난관에 봉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유등천 발원지를 찾아가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첨단시대를 살아가면서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스마트폰마저 통화가 되지 않는 오지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물어 물어 찾아간 유등천 발원지 입구에서 들어가진 얼마 되지 않아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다.
계곡에 즐비하게 자리 잡은 평상이 여름철 한 철 장사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뒤집어 놓아 내년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계곡 양 안에 즐비하게(?) 자리 잡은 민박과 펜션은 계곡을 펜션 것인냥 소유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돈벌이 수단이 된 유등천 발원지의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10년 전 워낙에 좁은 계곡이라서 산을 훼손하지 않고는 펜션이나 민박이 들어오기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잘 보전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었다. 그 때문에 10년 만에 찾아간 발원지의 모습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팬션의 모습팬션과 민박이 곳곳에 들어와 유등천의 경관을 헤치고 있었다. ⓒ 이경호
현장은 그야말로 난개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펜션과 민박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공사 중인 곳도 있었다. 펜션 주인에게 물어보니 여름철에는 장사가 잘 된다고 설명하면서 너무 많이 개발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며 설명하는 모습에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일부 구간은 하천정비마저 진행하면서 옹벽이 쌓여 자연계곡의 모습을 상실한 곳도 있었다. 재해예방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을 법한 하천 정비는 인공 하천의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유등천을 따라 눈이 녹지 않은 빙판길을 걸으면서 찾아간 발원지 입구에서 나는 다시 놀랐다. 길이 없어 계곡을 따라 발원지를 찾아갔던 10년 전과는 다르게 훤하게 만들어진 임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자연스러움은 사라진 채 다시 큰길을 걸어 가야하는 심정이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웠다.
▲ 임도 조성을 위해 만들어진 다리하류에 약간이 쇠굴현상도 있었다. ⓒ 이경호
▲ 발원지 가는길에 만들어진 임도임도와 접하는 유등천(상류:삼가천)에는 이렇게 시멘트로 조성해놓아 자연스러움을 훼손했다. ⓒ 이경호
임도를 따라 얼마 가지 않아 더욱더 놀라운 모습을 만나야 했다. 산림재해예방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사방댐이 저수지처럼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성된 사방댐에는 물이 얼어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사방댐 옆으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예전에 발원지로 추정했던 곳을 접할 수 있었다.
유등천의 발원지는 정확하게 지정되어 있지 않다. 사람마다 월봉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인대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뉘어 있다.
발원지의 개념이 길이나 폭, 수량 등으로 정의되어야 하지만, 개념 정의가 되어 있지 않기에 금강 뜬봉샘처럼 지정된 발원지는 그리 많지 않다. 유등천의 경우, 갑천과 합류되는 지점에서 가장 먼 곳이 월봉산에서 계곡이다. 그 때문에 발원지라고 설정하고 2005년과 2015년에 다시 찾아간 것이다.
각설하고 유등천 발원지는 다행히 아직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이 남아 있었다. 또한 물은 너무나 맑고 투명해서 건드리기 조차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주변의 임도나 펜션과 민박은 이런 감흥을 반감시키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발원지 주변에 양식되고 있는 산양삼밭이라는 푯말과 줄들은 안식처로 느꼈던 월봉산을 감옥으로 바꾸어 버렸다. 삼 재배를 위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곳곳에 진행한 벌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숲 가꾸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지막지한 벌목이 아닐 수 없었다.
▲ 옛모습이 남아 있는 구간을 걷고 있다.참가자들이 주변을 살피며 걷고 있는 모습 ⓒ 이경호
유등천은 그야말로 개인화되어 있었다. 철조망과 울타리, 끝 등으로 사유지 경계를 치면서 계곡에 접근조차 할 수 없게 된 지역도 생겨났다. 안식처를 감옥으로 바꾸어 놓은 인간의 행위에 진절머리가 났다.
10년 전의 유등천을 꿈꿨던 내가 바보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 선조의 말이 떠올랐다. 10년이 지난 유등천 발원지의 모습을 보면서 강이 변한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 철조망으로 막혀버린 유등천접근을 할 수 없도록 막혀 있다. ⓒ 이경호
참고
월봉산에서 만난 나무
사위질빵, 인동덩굴, 으름덩굴, 칡, 곰딸기, 가시오가피, 두릅, 복분자, 산초, 산딸기, 찔레,
화살나무, 붉나무,층층나무, 감태나무, 갯버들, 엄나무, 참죽나무, 엄나무, 편백나무,
오동나무, 굴피나무, 오리나무, 물오리나무, 밤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나무
월봉산에서 만난 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박새, 쇠박새, 굴뚝새, 노랑턱멧새, 멧새, 쑥새, 큰부리까마귀, 어치,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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