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86]12. 피바람의 계절
▲ 위대한 어머니김봉준 작. 이소선 어머니 서거 추모그림 ⓒ 김봉준
이소선은 졸지에 빼앗긴 노조사무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청계피복노조사무실! 평화시장 옥상에 있는 이 노조사무실은 1970년 노조창립 당시부터 쓰던 사무실이다. 일곱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지만 멸시 천대 받는 청계천 노동자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의 노동자들이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고 함께 해결하던 곳, 고단한 노동을 잠시 쉬고 정다운 얼굴들을 맞대고 한줌 햇볕을 쬐던 곳, 늦은 밤 우리를 짓누르는 세상과 맞서 그것들을 바꾸기 위해 허기진 배를 참아가며 거칠게 토론하다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의기투합해서 마음을 모으기도 했던 곳, 수많은 사람들이 헤아릴 수없이 드나들어 문턱이 닿고 곳곳에 손때가 묻어있는 곳, 그렇게 우리들의 꿈과 희망과 분노와 좌절과 아우성과 사랑과 미움과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었다. 그곳을 졸지에 거대한 권력의 힘에 의해 접근하기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저 사무실에는 '전국연합노동조합청계피복지부'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그 간판은 그냥 나무에다 글자를 파서 새긴 그저 그런 간판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이소선은 온 몸을 바쳤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 민주인사들의 목숨을 건 투혼과 한숨과 분노와 외침이 서려있는 간판이다. 그 사연 많은 간판이 군부독재 정권의 군화 발에 짓밟혔다. 손만 뻗으면 금방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지만 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막혀 이제는 접근조차 할 수가 없게 되었다.
▲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 ⓒ 청계피복노조
한편, 투쟁을 준비해온 사람들은 일단 아프리 사무소를 농성 장소로 찍어놓고 아프리 사무소에 대한 사정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1월 20일 임현재 지부장과 이승철 지도위원이 대명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민종덕은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는 임현재 지부장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아프리 사무소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뜻밖에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1월 30일 오후 4시경에 '아시아아메리카자유노동기구(아래 아프리)' 본부장 미국인 '모리스 파라디노'가 한국에 와서 임현재 지부장과 면담키로 했다는 것이었다.
아프리는 미국 노총이 아시아 후진국 노동조합을 지원하는 기구다. 아프리와 청계피복노조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청계노조가 아프리로부터 노동교실 기자재를 지원 받은 적이 있어서다. '아프리'에 대해서는 상반된 시각이 있다. 후진국의 노동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구로 보는 관점과, 다른 한편으로 후진국을 조금 지원해주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투쟁을 준비하는 쪽에서는 자신들이 아프리에 가서 투쟁을 하게 되면 아프리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모리스 파라디노'가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국제노동연맹 아시아 지역기구 연사로 참석했다가 한국에 오는 것을 놓치지 않고 그와 함께 농성을 한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이라고 이들은 보았다.
이날부터 민종덕은 신광용, 전태삼, 황만호와 을지로 6가 덕수다방, 양지다방, 솔다방 등을 전전하면서 회합을 했다. 이들은 지금 노조가 강제 해산 당하는 상황에서 이대로 뒷걸음 친다면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으니 싸우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함께 했다.
그래서 아프리 사무소를 점거, '파라디노'와 면담을 요구하고 해산된 노조지부의 원상회복을 위해 농성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민종덕은 성명서 등 유인물 및 농성에 필요한 음식물과 초 등을 준비하고 신광용, 황만호, 김영대, 전태삼은 각자 노조원들을 동원하기로 업무분담을 한 뒤 박계현, 김성민, 임기만, 이덕곤 문숙주, 정화숙 등 12명에게 개별적으로 위의 사실을 알리고 동조를 얻었다.
이들이 '아프리'에서 농성하기로 한 사실이 미리 정보기관 등 다른 곳에 알려진다면 일을 치르기도 전에 모두 사전 검거될 수가 있기 때문에 소수 몇 명만 모여서 의논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수시로 장소를 옮겨가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민종덕은 빼돌린 타자기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방주인이 출근한 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커튼과 담요로 문을 겹겹이 가리고 농성 때 필요한 '호소문' '청계피복노조 해산명령을 철회하라' '성명서' 등을 만들었다. '호소문'은 당시 한국 상황에서 청계피복노조를 비롯 민주노동운동이 어떻게 탄압 받고 있으며 앞으로 어떠한 탄압이 자행될 것인가를 폭로하고 이어서 아프리에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우리는 당면한 당국과의 투쟁을 힘써 해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신념을 갖고자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 약하고 외롭다. 우리의 이러한 외로운 생존권 투쟁, 민주노동운동 발전투쟁에 당신들의 성원을 요청한다. 당신들은 그렇게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노동자의 생존권이 보장되고 세계평화가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 우리는 긍지를 갖고 있는 한국의 노동자들이다."
이 당시에 이란에서 미국인을 인질로 잡은 사건이 있어서 이들이 아프리에서 농성을 하게 되면 그러한 차원으로 받아들일까봐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이들은 미국의 노동단체로 하여금 '연대를 요청'한다는 것을 미리 알려준 것이다.
'성명서'는 우리가 '아프리'에서 농성을 하게 되면 당국이 우리를 '사대주의자'라고 매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 쓴 내용이다. 이것은 유신정권 말기에 야당과 민주세력이 미국한테 한국의 독재정권을 지원하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한국의 독재정권은 이것을 두고 야당과 민주세력을 '사대주의'라고 매도했던 일이 있었다. 그래서 혹시 이들이 외국기관에서 농성을 하게 되면 자신들을 '사대주의자'라고 매도하지 않을까 해서 '성명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청계피복노조 해산 명령을 철회하라'는 당국에 대한 우리의 요구사항을 담은 내용이다.
1월 29일 13시경 이소선은 임현재 지부장과 함께 아프리 사무소에 찾아갔다. 지부장과 이소선은 아프리 사무장 '조지 카틴'을 만나 노조 복귀문제를 건의하고 지원해준 재봉틀 등을 계속 사용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목적이었다. 이 자리에 민종덕 사무장이 따라갔다. 그는 아프리 농성을 앞두고 사전 답사가 목적이었다. 그는 농성 조건이 충분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덧붙이는 글
[이소선 평전]은 매일노동뉴스와 함께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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