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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10권만 찍을 생각이었는디"

한글 배워 쓴 생활글 책으로 묶은 전남 장성 박정열 할머니

등록|2015.01.15 20:28 수정|2015.01.15 20:29

▲ 박정열 할머니가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팔순을 앞둔 할머니가 최근 생활글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 이돈삼


'사랑하는 여보당신. 당신과 나와 연을 맺어진 지도 55년을 맞이한 세월이 유수와 갗이 흘러서 머리에 흰꽃이 피었군요. 그동안 우리가 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살아왔지요. 그러나 당신이 부족한 나를 넓은 아량으로 채워가며 살아주셔서 항상 감사했지요. 진작이라도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펜을 들기가 너무나도 쑥스러워 못했읍니다. 그리고 부탁이 한나 있어요. 그것은 다름이 않이라 말 좀 잘 하고 잘 웃어 주세요. 이제 남은 여생 즐겁게 살자구요.'

팔순을 앞둔 박정열(79·전남 장성군 장성읍) 할머니가 난생 처음 쓴 고백 글이다. 대상은 지금도 한 이불을 덮고 사는 배우자 노유근(81) 할아버지다. '얼마나 말수가 없고 웃지 않으셨으면 이리 쓰셨겠냐'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멋쩍은 듯 웃는다. 할머니도 그 모습을 보며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 박정열 할머니가 펴낸 책에 실린 생활글.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진하게 묻어난다. ⓒ 이돈삼


▲ 박정열 할머니가 펴낸 '나는 문불여대학생이다'의 앞표지. 할머니가 한글을 배우면서 쓴 생활글 57편이 실려 있다. ⓒ 이돈삼


박 할머니가 자신의 글 57편을 모아 최근 책으로 묶어 펴냈다. A4용지 크기 88쪽 분량의 <나는 문불여대학생이다>가 그것. 장성공공도서관이 운영하는 '문불여대학'(文不如大學)에 다닌 지 8년 만이었다. 글은 남편과 자식에 쓴 편지와 일기, 기행문 등으로 이뤄져 있다.

"처음에는 10권만 찍을 생각이었는디. 식구들만 돌려서 볼 생각으로. 근디 그렇게 안 된다고 해서, 더 찍었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도 나눠 주고."

박 할머니의 소박한 출판 계기다. 책에 실린 글에는 한글을 익혀가면서 느낀 기쁨과 가족에 대한 마음이 녹아 있다. 한글을 가르쳐 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도 묻어난다.

'우리 선생님은 화 한 번 내지 않으시고 웃음으로 저히들을 대해 주시니 너무 죄송하여 몸둘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히들은 배우는 순간은 소녀 되어 재미가 너무 좋아요. 그러니 우리 선생님은 언제나 젊음을 간직하시며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 박정열 할머니가 배우자인 노유근 할아버지와 함께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있다. ⓒ 이돈삼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박 할머니는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이었다. 젊은 나이에 시집을 가선 생활에 쫓겨 살아야 했다. 50년 넘게 신발가게를 운영하며 2남 2녀를 키웠다.

그러던 지난 2005년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경로당 친구들을 따라 '문불여대학'에 입학했다. 칠순을 앞둔 나이였다. 문불여대학은 전남도교육청이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른들을 위해 장성공공도서관에 개설한 문자해득 프로그램이다.

어깨 너머로 익혀서 글자는 알고 있었지만 박 할머니는 배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글을 알게 되면서 편지와 일기 쓰기에도 재미를 붙였다. 서툰 글씨지만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수시로 전했다. 한글을 익히면서 느끼는 마음도 진솔하게 담았다.

'세월아 가지 말고 거기 서 있거라/니가 가면 나도 따라가고 마음이 서글퍼서 내가 울잖니/그러니까 가지를 마라/니가 가서 내 청춘도 가고 젊음도 갔으니 나는 니가 원망스럽다/그러니 제발 가지 않는다고 약속 좀 해다오.'

빠르게 스쳐가는 세월에 대한 무상함이 묻어나는 이 글은 할머니가 밤에 운동을 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을 옮겨 적었다고.

▲ 박정열 할머니와 노유근 할아버지. "앞으로는 좀 웃고 살자"는 박정열 할머니의 말에 노유근 할아버지가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다. ⓒ 이돈삼


▲ 박정열 할머니가 가게에서 신발을 정리하고 있다. 할머니는 50년 넘에 장성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해 오고 있다. ⓒ 이돈삼


박 할머니는 지난해까지 문불여대학에서 초등학교 3∼4학년 과정을 마쳤다. 올해는 5∼6학년 반으로 올라간다. 이 과정을 마치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다. 문불여대학에 다니지 않는 날엔 필암서원으로 향한다. 10리 길이지만 걸어 다니면서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할머니의 이름처럼 정열적이다. 거기서 '사자소학', '명심보감' 등을 배운다.

"배우지 못한 게 늘 한으로 남았는데, 배우는 게 얼마나 즐겁고 재밌는지 모르겠다"는 박 할머니는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면서 "앞으로 중학교 과정도 계속 다니고,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배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 박정열 할머니가 신발가게에서 자신의 살아온 삶을 들려주고 있다. 할머니는 장성읍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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