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애를 키우네"...미혼모 울리는 한 마디
[10만인리포트-입양을 인터뷰하다④] 박성희 대한사회복지회 부산지부장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이 글은 김지영 시민기자가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 미혼모가 배 속 아기를 위한 선물을 만들고 있다. ⓒ 대한사회복지회사랑샘
연재의 출발을 미혼모로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미혼모로부터 발생한 영아들이 실질적인 입양대상 아동 중 90%가 넘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정치에 불과하지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혼모는 2만3000여 명이고 이 중 10대 청소년은 2000여 명이다(2013년 기준).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미혼모들이 비난과 힐난의 대상으로 심각한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고 있지만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노르웨이 왕세자빈인 메테마리트는 결혼 전 마피아의 아이를 낳은 미혼모였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반드시 사랑과 이별이 있다. 그리고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간혹 사랑하지 않았는데도 미혼모가 된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많은 미혼모는 사랑하고 이별을 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지 못한 건 결혼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미혼모 하면 다음에 연상되는 단어는 '문제'다. 그 이유는 사랑한 후에, 그리고 하필이면 대부분 이별까지 한 후에 남겨진 '존재' 때문이다. 더욱이 그 존재가 그저 존재라고 얼버무리기엔 너무 버거운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통계적으로 돈도, 학벌도, '사냥감'을 들고 올 남자조차 없는 이 가엾은 여자들은, 혼자 그 버거운 생명과 함께 정글 속 세상을 살아가야 할 형편에 처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미혼모들에게는 크게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어쨌든 직접 한번 키워보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아이가 건강하게, 가능하면 부족함 없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다른 가정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제 미혼모에 대한 이야기는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하여 입양과 미혼모 관련된 분야에서만 20여 년을 활동해온 전문가의 생동감 있는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여기에는 과거의 미혼모와 현재의 미혼모, 정부정책의 변화와 현장에서 느끼는 미혼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흔들림 없는 편견이 있다. 또한 미혼모들의 속 깊은 마음과 그 마음의 결이 시대를 거슬러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는지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들이 있다.
누가 이런 이야기들을 해줄 수 있을가. 수소문 끝에 미혼모 관련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대한사회복지회 부산지부 박성희(53) 지부장을 만나기로 했다. 인터뷰를 위해 지체 없이 부산행 비행기를 탔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복잡한 시장 거리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옹색하고 추레한 건물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번듯하고 단정한 4층짜리 건물이다. 사무실로 올라가면서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 대책 없는 편견에 대해서. 재래시장과 미혼모시설이라는 두 가지 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일으킨 근거 없는 연산작용의 결과였다.
도움 받을 곳 몰라서 아기 버리는 '어린 엄마들'
- 시설에 대해서 먼저 소개해주세요.
"사랑샘은 미혼모자보호시설입니다. 임신 중에 집에서 지내기 힘든 미혼 임신부들이 입소를 해서 분만 및 몸조리를 하고, 양육할 친구들은 도움을 받고 입양을 보내는 친구들은 입양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시설입니다. 1년을 있을 수 있어요.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는 희망샘은 아동을 양육하는 미혼엄마들이 최대 3년까지 머물면서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이에요."
- 사랑샘에는 몇 분이나 계세요?
"정원이 20명이에요. 아기 포함해서요. 정원이 거의 차는 편이죠. 지금도 대기자가 일곱 명 있어요. 연령대는 평균 22세입니다. 가끔 30대 후반이 오는 경우도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스물 한둘셋 이 정도 나이대가 많아요. 막내는 열네 살. 혼인신고가 안 돼 있고 임신 중이면 입소자격이 됩니다."
- 임신을 하게 된 일반적인 배경은 어떤 건가요?
"사귀다가 그런 경우가 흔하지요. 다른 경우는 일시교제, 채팅에서 만났다든지 길거리 가다가 우연히 만나서 그런 경우도 있고요. 술자리에 합석했다가 '원나잇' 하는 경우도 있고. 드물지만 택시 타고 가다가 그런 경우도 있고, 슈퍼 아저씨도 있었고, 친인척도 있었고 종류는 다양하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죠. 지금 시설에 있는 열네 살 미혼모는 가출해서 잘 곳을 찾다가 아기 아빠를 만나서 동거했어요. 나름 피임을 한다고는 하는데 정확한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있고,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 사랑샘에서 지내다가 양육하는 사람과 입양 보내려는 사람이 갈리잖아요. 보통 어느 시점에서 갈리게 되나요?
"분만하기 전에도 생각은 많이 하지만 분만하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엔 입양숙려기간(미혼 한부모가 자녀입양을 숙고할 수 있는 숙려기간)이 있어서 그 기간 중에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말이 일주일이지 서류를 발급받고 하려면 보통은 열흘에서 보름 정도 걸리게 되거든요. 그 사이에 듬뿍 정이 더 드는 거죠. 전국적으로는 양육이 40% 정도 된다고 하는데 부산은 30% 정도도 채 안 되는 것 같아요. 나머지는 다 입양이죠."
- 실제 여기 들어오는 미혼모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미혼모들도 많지 않나요?
"더 많겠죠. 시설을 몰라서 그런 친구들도 있고. 2014년에 부산에서 미혼모 관련 사건이 세 건이나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건이 모텔에서 사산한 케이스였죠. 열여덟 살이었고요. 중학생이 자기 집에서 분만하고 겁이 나니까 상자에 담아서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린 사건도 있었고요.
또 한 사건은 남자를 만나러 부산을 왔는데 배 속에 있는 아이는 다른 남자 애인 거예요. 진통이 왔고, 뭘 사오라고 남자를 내보내고 혼자 모텔에서 분만해서 창 밖으로 던진 사건도 있었어요. 이런 미혼모 시설이라든지 도움 받을 곳을 몰라서, 그런 경우도 생기는 거죠."
상처로 남은 말 한마디... "애가 애를 키우네"
▲ 박성희 대한사회복지회부산지부장 ⓒ 김지영
- 미혼모들이 시설에 온 뒤에도 애 아빠하고 계속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나요?
"네. 여기는 한 40퍼센트 정도. 나머지는 연락이 끊기고, 가끔은 다른 남자친구가 오는 경우도 있고요."
- 10대 미혼모들의 가정형편은 어때요?
"아무래도 이혼가정이 절대적으로 많죠.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아무래도 자녀들한테 신경을 많이 못 쓰고 그러면서 아이들도 남자친구 만나면 많이 기대게 되죠. 좀 전에 말한 열네 살 그 친구도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랑 아빠랑 살았는데, 할머니도 정이 많은 분이 아니고 아빠는 좀 무섭고 그러다보니까 가출을 했다 들어갔다 반복하다가 이제 이런 시설까지 오게 된 거 같아요.
한 살 때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얼굴도 다 모르는 아이도 있어요. 서류상으로는 부모가 있지만 실제로는 얼굴도 못 보고 자라는 아이도 있고. 큰엄마나 친척들에게 맡겨져서 자라는 아이들도 있고요. 가끔은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도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자라온 환경이 원만한 경우는 좀 드문 편이죠."
- 결국은 어른들 문제네요?
"그렇지요. 원래부터 미혼모인 아이들이 어디 있겠어요. 제가 1990년에 입사하고 계속 입양관련 업무를 했어요. 그때는 이런 입소시설이 부산에 하나밖에 없었거든요. 일하다가 학교 다니다가 그냥 분만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출산하자마자 바로 학교에 간다든지 직장에 간다든지 하는 미혼모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미혼모 시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때도 아이를 자기가 키우고 싶어 하는 미혼모들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2000년에 사내 프로그램에서 캐나다를 보내줘서 갔는데, 거기는 미혼모들이 다 아이를 자기가 키우고 있는 거예요. 캐나다 갔다 와서 공동모금회에 신청을 해서, 두 달 동안 위탁가정에서 아기들을 봐주고 그동안 엄마는 몸을 좀 추스린 뒤에 직장에 다니게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그때 도움 받아서 지금까지 잘 키우고 있는 엄마들도 있어요."
- 지금의 미혼모들은 과거의 미혼모들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성관계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거죠. 사회일반적인 현상이긴 하겠지만요. 예전에는 이성을 만나서 성관계까지 하는 데 서너 달 걸렸다면 지금은 한 달 미만인 경우가 많고요. 술 담배에 노출된 미혼모도 많아지는 흐름이 있죠. 아무래도 여성흡연인구가 늘고 있잖아요. 정말 어른들이 문제인 게, 10대들한테 술을 팔고 담배를 팔고 심지어 모텔 출입까지 시키고…. 아이들이 술집을 못 가잖아요. 어디서 술을 마셨냐고 물어보면 모텔에 가서 마셨다는 아이들이 많아요. 어른들이 돈 버는 거에만 관심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제가 입사했을 때는 미혼모가 더 많았는데, 그때는 주로 생산직 근로자들, 촌에서 올라와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았죠. 10대 미혼모라도 학교 다니는 10대가 아니라 일하는 10대들이죠. 지금은 10대 미혼모들이 거의 학생들이죠. 과거에는 고등학교 갓 졸업한 나이가 많았다면 지금은 재학생이 점차 늘어나고 있죠."
- 아직도 우리 사회가 미혼모에 대한 편견들이 많죠? 양육모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걱정을 많이 해요. 엄마가 너무 어리니까. 열여덟 살 된 어린 엄마가 아이를 안고 나가면 사람들이 다 쳐다본대요. 오지랖이 넓으신 어르신들은 대놓고 몇 살이냐고 물어본대요. 그럼 스물다섯이라고 한대요. 뒷말이 귀찮은 거죠. 애가 애를 키운다느니 이런 말들이 듣기 싫은 거죠. 사람들이 좋은 관심을 가져주면 그렇게 안 할 텐데, 비난이잖아요.
나이 많은 엄마가 키워도 제대로 못 키우는 엄마들도 많은데, (어린 미혼모가) 애를 잘못 안았다든지 하면 '애를 저러고 데리고 다닌다'고 한마디씩 하니까 칠팔 개월 키우다가 못 견디고 다시 입양을 보낸 엄마도 있어요. 그 엄마가 얼마 전에 와서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정말 밖에 나가기가 싫었대요. 사람들이 자꾸 말을 하니까. 사회적 편견 때문에 발생하는 안타까운 경우에요."
"부모님한테 혼날까봐"... 음지에서 불법 입양
- 양육모의 비율이 전국적으로 40퍼센트 정도라고 하셨잖아요? 과거에 비해서는 어때요?
"10년 사이에 두 배 늘어났죠. 앞으로도 양육모 비율이 높아질 거예요. 정부에서도 원가정 보호 쪽으로 정책을 펼치니까. 또 이런 희망샘 같은 공동생활가정들이 생기면서 3년 동안 자립을 준비할 수 있잖아요. 일하면서 저축을 하고 우리도 10만 원씩 저축해준 돈이 있으니까, 충분하진 않아도 방은 구해서 나갈 수 있는 상황들이 되죠."
- 취업은 어느 쪽으로 많이 하나요?
"저희는 가급적 주말에 쉴 수 있는 직장을 추천하지요. 바리스타 하는 친구도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는 구청 안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취업이 된 거예요. 거기는 퇴근이 빠르니까. 주말에는 쉬고. 구청에서 일부러 그런(도움이 필요한 미혼모 같은) 사람을 채용하는 거죠.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그런 취업을 알선해주는 것도 좋죠."
- 입양을 보내는 미혼모들을 보실 때 어떤 마음이 드세요?
"마음이 안 좋죠. 사실 여자가 임신·출산을 하면 가장 축복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축복을 해주기는커녕 야단을 치잖아요. 가족들은 비난하고. 입양 보낼 때도 아무리 (엄마) 나이가 어려도 자기가 열 달 동안 품고 있다가 배 아파서 낳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없잖아요. 입양을 보내도 그런 상처가 남고, 양육을 하더라도 계속 자격지심도 있을 테고 또 경제적으로 아이한테 충분한 뒷바라지를 못해주는 것 때문에 고민도 많을 거고. 그런 것들이 떠오르니까 항상 안타깝죠."
- 2012년 8월 입양특례법으로 신고제가 허가제로 바뀌면서 여기에 들어오는 인원의 변동이 있나요?
"입양 대상 아동이 줄기는 했어요. 입소는 꾸준하지만 양육하는 친구들 비중이 많아진 건, 입양 보내려는 미혼모들이 입소를 많이 안 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죠. 입양특례법 영향 때문에 전국적으로 그런 현상이 있어요."
- 시설에 안 들어오는 미혼모들은 어떻게 지낼까요?
"2014년에도 배가 아파서 막 길에서 그렇게(쓰러져) 있는 어린 친구를 119가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보니까 출산한 엄마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한테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아기가 없는 거죠. 병원에서 불법으로 입양을 보낸 거예요. 자기 말로는 아는 목사님이 소개를 해줬다는데 진짠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분만도 그 아기를 데려간 사람 이름으로 했다는 거예요. 미혼모가 도망을 가서 더 확인이 안 되고 있어요.
이렇게 음지에서 입양이 이뤄지고 있죠. 최근에도 (불법 입양을 하려고) 인터넷으로 서로 다 연락을 해놓은 거예요. 근데 엄마가 제왕절개를 하게 됐어요.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면서 (불법 입양 시도가) 다 알려지면서 정식으로 절차를 다시 밟은 경우도 있어요."
- 그것이 불법인지 몰랐다고 하던가요?
"부모님한테 알려지면 혼날까봐(그랬대요). 그쪽(입양하려는 쪽)에서 혈액형이 맞으면 병원에서 바로 데려간다고 했대요. 미혼모가 열일곱인가 열여덟인가 그랬는데. 정식기관을 통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그렇게 하는 거죠."
"미혼모들 당당해지고 있다... 차츰차츰 세상 바뀔 것"
▲ 양육미혼모시설에서 백일잔치 ⓒ 대한사회복지회사랑샘
- 20년 이상 입양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1990년에 입사해서, 스웨덴으로 입양 간 미취학 아이들 둘을 데리고 오신 양부모를 안내했어요. 택시를 탔는데 그때가 여름이니까 반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오신 거예요. 기사분이 왜 이리 못사는 집에 입양을 보냈냐고 해요. 별로 돈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아니라고, 이 사람들 집에 풀장도 있고 우리보다 훨씬 잘 산다고 그랬지요.
그러면서 우리도 한 10년 있으면 잘살게 될 거고,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다른 나라 아이를 입양할 수도 있을 거라 그랬어요. 근데 생각보다는 인식이 빨리 안 바뀌더라고요. 외국은 입양대상 아동이 적고 입양하려는 가정이 많아요. 우리나라는 근데 지금도 입양 가야 되는 아이들이 많고 입양하려고 하는 가정이 적은 거예요."
- 미혼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어때요?
"2003년에 처음 사랑샘을 시작했을 때, 미혼모들한테 뭐 이리 잘해주냐고, 이렇게 잘해주면 미혼모가 더 많아지는 거 아니냐고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사랑샘이라고 하지 말래요. 사랑 그만 하라고 하래요. 그래도 지금은 좀 긍정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라고 생각은 하세요. 미혼모들은 달라졌어요. 당당해진 느낌을 받아요. 미혼모가 된 게 그 아이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잖아요. 사회적 책임도 있는데 굳이 기죽어서 생활하게 하는 건 아닌 거 같고요."
- 미혼모들을 보면서 가장 마음이 아플 때가 언제였나요?
"여자라서 무시당하는 거죠. 미혼부보다 미혼모들이 더 비난을 받는다든지, 남자는 괜찮고 여자는 안 되고, 이런 인식들이 아직은 있는 것 같아요. 1990년대에는 10년이 지나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요, 참 보수적인 것 같아요. 아니 보수적이 아니라 이중잣대죠."
- 정책 문제로 들어가면 어때요?
"정부정책이 양육지원으로 변하게 된 것도 사실은 미혼모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거든요. 지원의 출발이 미혼모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보니까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거죠. 실제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구청 앞에 미혼모 지원에 대한 플래카드를 걸었어요. 어떤 할아버지가 오셔서 '어디 이런 애들한테 돈을 주느냐, 그럴 돈 있으면 우리를 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항의하고 민원을 넣고 그래서, 결국 플래카드를 걷은 예도 있어요."
- 지금처럼 비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혼모 지원 일을 계속 하시는 까닭은요?
"그래도 차츰차츰 바뀔 거니까요. 지금은 아기지만 이 아기가 자라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세상이 될 거니까요. 그리고 일단은 미혼모들이 당당해지고 있으니까요. 처음에 직장에 말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던 미혼모들이 지금은 자기가 먼저 이야기를 해요. 직장에 가서 또 일을 잘하니까. 이렇게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바뀌려면 미혼모들도 노력을 해야죠."
문제는 미혼모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포용력
몇 년 동안 제주 깊은 시골에서 펜션을 운영한 적이 있다. 사람들을 많이 상대하다보니 쉽게 말해 '촉'이 생겼다. 보통 가족 단위 손님이었다. 그들끼리 어울려 노는 모습, 화법, 행동 등을 보면 퇴실 후 방 상태가 예상되곤 했다. 다 맞는 건 아니었지만 대개는 예상대로였다.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는데, 자식은 딱 부모라는 것이다. 물론 전부 그럴 것이라는 편견은 배제해야 한다. 하지만 대개 부모가 어수선하면 아이들도 그랬고, 부모가 따지길 좋아하면 아이들도 그랬다. 정갈하고 단정한 부모의 아이들은 또한 그랬고, 조용하고 얌전한 부모의 아이들은 함께 조용하고 얌전했다. 대체로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따라하게 돼 있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미혼모들을 만나고 미혼모 전문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때, 펜션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자꾸 복기됐다. 굳이 문제라고 한다면, 미혼모를 둘러싼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들이 기댈 데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사회여야 했다. 그러나 미혼모들이 왜 미혼모가 됐는지에 대한 성찰은 간데없고, 가족들은 그들을 비난하고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세상은 차가운 멸시와 냉대를 보낼 뿐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주지 않았다.
문제는 미혼모가 아니라 그 사랑과 흔적을 함께 껴안아줄 우리 사회의 포용력에 있다. 결국 미혼모에 대한 모든 것도 인간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과 사랑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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