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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660억 혈세 챙겼는데... 알고 보니 미국 기업?

[주장] '전쟁예비물자' 담당 '한국업체' 둘러싸고 국방부-주한미군 줄다리기

등록|2015.01.21 13:31 수정|2015.01.21 13:31

▲ 경기도 의정부시 캠프 스탠리에서 경례를 하는 미군 장병 ⓒ 연합뉴스


방위비분담금(미군주둔비지원금)은 집행되지 않는 돈이 매년 평균 2천억〜3천억 원에 이르고, 집행된 돈도 그 사용처가 투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때문에 쓸데없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우리의 재정주권(국회의 예산심의권, 국가재정법)을 침해해 왔다(관련 기사 : 1조원 챙긴 주한미군... 글로벌 '호갱'된 한국).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개선에 관한 교환각서'가 9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2014〜2018년)과 함께 체결되어 2014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미국(주한미군)은 제도개선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2015년 방위비분담 예산 편성과 관련해서 보면, 방위비분담금 항목별(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배정액을 2014년 8월 31일까지 한국에 제출했어야 하나 인건비를 제외하고 군사건설비나 군수지원비는 제출하지 않았다.

또 2015년도에 시행할 최종 군사건설사업 목록 초안을 2014년 8월 31일까지 제출하기로 한 합의도 지키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15년도 군사건설사업예산 3373억 원은 사업계획도 없는 채 주먹구구식으로 편성됐다. 그 결과 또다시 대규모 미집행액이 발생될 것으로 우려된다.

'무늬만 한국업체' 차단하기로 제도개선 합의했지만...

▲ <표>군수지원분야 제도개선 합의(외교부 및 국방부 홈페이지) ⓒ 박기학


제도개선에 관한 미국의 합의 불이행은 비단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2014년, 우리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군수지원 분야에서도 제도개선에 합의했다. 그 합의 내용은 이렇다. "대한민국 국방부와 주한미군사령부는 한국업체에 대한 한국정부의 우려와 관련 법령을 최대한 고려하여 '한국 계약업체'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에 합의하고 이에 따라 군수비용 분담 시행합의서를 수정한다"(제도개선에 관한 교환각서 제3조1항)는 것이다.

위 합의에 대해서 우리 정부는 전쟁예비물자(WRM) 정비(2015년도 예산은 105억 원)를 '무늬만 한국업체'가 아닌 '실질적인 한국업체'가 맡을 수 있게 한국업체의 자격조건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예비물자(WRM)란
전쟁예비물자란 전시에 미 공군작전부대를 수용하고 숙영시키기 위해 평시에 청주, 김해, 광주, 수원, 대구, 오산 및 군산 미 공군기지내에 저장하고 있는 물자들이다. 여기에는 항공기연료탱크, 폭탄 탑재장치, 청소도구, 숟가락 등이 들어있다. 전쟁예비물자의 정비에 소요되는 경비를 방위비분담금에서 지불한다.
지난 2007년부터 7년간, 주한미군은 WRM 정비를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PAE의 한국지사인 'PAE 코리아'에 맡겨왔다. 이에 입찰에 참여한 국내(중소)기업들은 PAE 코리아가 무늬만 한국업체(내국법인)일 뿐, '군수비용분담 시행합의서'에서 규정한 '한국업체'라고 볼 수 없다며 국방부에 계속 이의를 제기해 왔다.

한미 군수분야 방위비용 분담 시행합의서(2009〜2013년) 제3조4항은 "모든 군수분야 방위비분담금 사업이 한국 또는 그 영해에서 실행되어야 하며 한국정부 자금으로 획득될 모든 장비 및 보급품은 한국에서 제조되어야 하고 모든 군수분야 방위비분담 용역은 한국 계약업체, 한국철도공사 또는 한국군에 의하여 시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3조4항은 방위비분담금이 우리 국민의 혈세인 만큼 이 돈이 한국 경제로 환류되어야 한다는 취지와 원칙 속에서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시행합의서 상의 '한국업체'란 한국인이 전적으로 소유한 한국기업으로, 그 이익이 한국으로 귀속되는 기업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런 원칙 속에서 WRM정비가 처음 시작된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순수 한국기업이 정비를 맡아왔다.

PAE는 2006년 미국 최대 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에 인수됐고, 바로 다음해인 2007년 1월부터 PAE 한국지사인 PAE 코리아가 한국업체를 제치고 WRM정비를 수주했다(록히드마틴은 2011년 PAE를 미국 사모펀드인 린드세이 골드버그에 매각했다). "국방부는 군수분야 방위비분담 사업의 종류와 범위 내에서 주한미군사령부 측 요구사항에 대한 입찰공고 권한, 협상 권한, 계약서 초안 작성 권한을 주한미군사령부에 위임한다"는 시행합의서 3조 2항을 근거로 들어서다. 언론 보도와 국방부에 따르면, PAE 코리아는 이러한 방식으로 2007~2014년 8년간 약 660억 원을 벌어들였다. 

PAE 코리아는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있고 한국에 등록된 법인이다. 법인세도 한국에 납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지분은 미국 본사(PAE)가 51%를, 한국 쪽이 49%를 보유하고 있다. PAE 코리아는 미국인과 한국인이 공동으로 대표를 맡고 있고, 그 이익금을 미국 본사로 송금한다. 때문에 PAE 코리아는 법인세법상 내국법인의 지위를 갖는다 하더라도 외국자본이 지배하는 법인이고 그 이익금을 미국본사로 송금하기 때문에 군수비용분담시행합의서 상의 '한국업체'로 볼 수 없다.

이에 우리 국방부는 '한국업체'의 정의를 명확히 하기 위해 군수비용분담 시행합의서의 한국업체 규정의 개정을 2014년 6월부터 주한미군에 요구해 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국방부의 무려 6차례의 회신 요구에도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미국은 10월이 돼서야 협상에 나와 "(PAE 코리아가) 한국 정부가 발급한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 세금을 납부하고 있으므로 한국업체"라는 주장을 고집했다. 이에 대해 우리 국방부는 임원진 구성과 주식 지분율을 한국업체의 자격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주한미군은 지난해 11월 24일 일방적으로 입찰을 진행해 PAE 코리아를 낙찰자로 재선정했다.

미국기업 한국지사가 한국업체라는 미국의 '억지'

▲ 사진은 경북 왜관에 위치한 주한미군 캠프 캐럴 기지 모습. ⓒ 연합뉴스


군수비용분담 시행합의서에서 한국이 주한미군에게 입찰공고 권한, 협상권한, 계약서 초안작성 권한을 위임한 것(제3조2항)은 어디까지나 주한미군의 편리를 위해서인 것이고 제3조 4항의 범위 내에서다.

주한미군이 한국에게 위임받은 권한을 이용해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된 군수지원금을 한국 영역을 벗어나 미국기업이나 미국인에게 돌아가게 한다면 이는 권한의 남용이고 악용이다. 더구나 주한미군이 협상 중에 PAE 한국지사를 재선정한 것은 제도개선 합의를 위반한 횡포이고, 우리 국민과 정부를 얕잡아 보는 오만한 행태다.

PAE 코리아가 한국업체라는 주한미군의 주장도 '무늬만 한국업체'인 기업을 배제하고자 한 제도개선 합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억지 논리다. 주한미군은 PAE 코리아가 법인세법 상에서 말하는 이른바 '내국법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법인세법과 군수비용분담 시행합의서는 그 적용대상이나 목적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법인세법 상의 규정을 가지고 PAE 코리아의 선정을 합리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 연방법(§ 800.212 Foreign entity) 상 외국법인의 정의로 보아도, PAE 코리아는 미국기업이다. 이 법은 "지점, 합자회사, 그룹 또는 계열, 협회, 부동산회사, 신탁회사, 주식회사 또는 주식회사 부서, 조직 등의 실체에서 미국 국적인이 궁극적으로 주식을 과반수 이상 소유하는 경우 그 실체는 외국기업이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미국인이 주식을 과반수 이상 소유하면 그 기업체는 외국기업이 아닌 미국기업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주한미군이 PAE 코리아를 WRM 정비사업자로 낙찰한 것은 부당하다. 주한미군은 PAE 코리아 선정을 스스로 철회하고 우리 국방부와의 협상에 다시 나서야 한다.

또한 시행합의서를 보면 "대한민국 국방부는... 한국자금이 사용된 계약의 최종승인 권한을 보유한다"(제3조 양당사자의 상호책임 2항)고 되어 있다. 이 최종승인 권한에 따라 우리 국방부는 주한미군의 PAE 코리아 선정을 즉시 불승인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미 간 합의를 무시하는 미국의 오만한 행태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이것이 주권국가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이고 우리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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