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30년을 한 세대로 기산할 때 3세대의 삶으로 내려온 셈이다. 한국전쟁 후 휴전체제는 지속되어 왔고 평화체제는 정착되지 못하였다. 한국은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루어냈지만, 북한은 경제적 고립과 빈곤 속에서 3대 세습체제의 전체주의 국가로 남아 있다. 남과 북은 대립하고 있고, 분단체제는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
전쟁 위험이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는 지난 수십년 동안 경제적 번영을 구가해왔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불안정의 평화'가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이지만, 전쟁의 위협 없이 발전을 지속하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들의 삶은 위태롭다. 우리는 이미 핵무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왜 이런 환경에 놓여져 있을까? 가장 근원적인 대답은 지정학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왔다. 우리의 능력은 이 환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구한말과 해방 이후의 경우처럼 우리는 열강들의 세력 주도권 경쟁에 대한 미숙한 대처로 늘 불행한 역사의 질곡으로 빠져들었다. 식민지화, 한국전쟁, 분단과 분단체제의 고착화 그리고 현재의 북핵 위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외부의 힘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여 왔다.
2015년 외부의 힘, 다시 말해 2015년 현재 한반도 주변정세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미중 관계이다. 미중 간의 패권경쟁은 이미 가시화되었는데,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국가들이지만, 우리는 이 국가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서로 다른 미국과 중국의 역사
이 두 국가의 패권적 경쟁과 협력을 잘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국가들에 대한 문명사적인 고찰을 요구한다. 1776년 식민지에서 독립한 미국은 유럽의 구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가를 표방하면서 등장하였다. 입법, 행정, 사법이 엄격히 분립된 민주주의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의 영토를 병합하면서 연방주의를 발전시켰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는 동안 유럽제국들이 식민지 각축전 속에서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발전의 동력을 상실했다. 반면 미국은 대공황을 딛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후 경제복구와 자유주의 국제경제체제 건설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유럽문명을 이식받고 새로운 정치 및 경제 체제를 창출하면서 현대 국제체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2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차원에서 경험이 집적되면서 미국이라는 현대 국가가 완성되었고, 나아가 2차 세계대전 후 국제체제의 자유주의 질서를 창출한 패권국가로 부상한 것이다.
현대 국가로서의 중국은 완성된 국가이기보다 진행형의 국가이다. 정치 및 경제 체제로서 현대 중국은 1949년 건국되었다. 19세기초까지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했던 청제국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의 침략에 굴복하였다. 중국 근대사에서 100년의 침탈과 분열의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중국 사람들은 이 기간을 백년의 치욕이라 부른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성공적으로 저항했던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대륙에서 국가를 건립하였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마오쩌둥의 근대화 방식이 실패하자, 이에 반대했던 덩샤오핑이 1979년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였다. 경제의 생산과 이를 조직화하는 제도적 방식을 새롭게 바꾼 이 정책이 30여 년 지속된 결과가 국제체제에서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의 비약적 성장
중국은 1980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약 9%의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2014년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2위, 무역규모 세계 2위, 외환보유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전통적인 중화 문명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
공산당 1당 지배의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시진핑이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했던 2012년 제18차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보다 공고화되고 있다. 중국이라는 국가가 갖는 체제적 특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미국적 사유가 만들어낸 경험 기준에 근거해서)이 우세하지만, 중국의 국가 실험은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오랜 문명을 갖고 있으며, 인구와 영토 규모가 거대한 중국의 급속한 경제적 성공과 대외적인 정치적 영향력 확대는 자연스럽게 기존의 패권국인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의문을 갖게 한다.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 제도 및 규범 등에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전망이 비관적으로 혹은 낙관적으로 제기되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러한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 온 바가 있다.
국제정치의 역사는 개별 국가들의 상대적인 힘의 분포 변화가 급격히 진행될 때 국제체제의 구조적인 변동이 발생함을 보여준다. 국제체제를 구성하는 개별 국가 간 상대적인 힘의 역학관계의 변화는 국가 간 불균등한 성장의 법칙에 기인한 것이다. 기존의 패권국가가 관리하는 질서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잠재적인 경쟁국은 자신의 힘이 증대될수록 이익과 영향력 및 위신 등과 관련하여 기존 질서에의 불만족이 커진다.
그에 따라 기존 질서에의 순응을 재고(再考)하며 그 질서를 변경하려는 의도를 갖게 된다. 힘의 역학관계 조정(balance of power)은 패권을 둘러싼 전쟁을 통해서 구조적인 변동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급속하게 부상하는 국가들은 패권국과 그 동맹국들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에도 위협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함의가 도출된다.
미중 간의 협력과 갈등
미중 간의 경쟁과 갈등이 국제정치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국가들의 전철을 밟을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과 관념(현실주의)을 갖고 있다면 일종의 자기예언적 실현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2015년의 현재는 훗날 미중 패권 경쟁의 역사에서 어느 지점에 해당될까? 국제정치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극에 달해 전쟁으로 치닫는 지점은 분명히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GDP와 국방비 규모는 아직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중국은 미국과 같이 전세계에서 해외군사기지를 운용하고 있지도 그리고 운용했던 경험도 없다. 달러는 여전히 국제경제의 기축 통화이며, 다자간 국제기구의 제도와 규범은 미국의 영향력 하에 놓여 있다.
2015년의 시점은 중국이 증대하는 자국의 국력을 기반으로 지역내에서 점차 공세적인 행동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미국이 이를 의식적으로 견제하고 있는 그 어떤 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실의 미중관계가 과거 강대국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연루시키려는 협력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양국의 데탕트는 1972년 냉전체제에서 소련 견제를 위해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시작되었지만, 양국은 1979년에야 국교를 정상화하였다. 1990년대에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무역(최혜국대우 유지)과 연계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취소하였다. 미국은 점차 강대국 중국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2005년 국무부 졸릭 차관보는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조하면서 '이익상관자(stakeholder)'란 개념을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미중 간에는 전략경제대화가 2006년부터 정례화되었다. 양국의 오랜 의제인 무역불균형, 위안화 환율, 지적재산권 등 경제와 무역 등과 관련한 의사소통이 활성화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양국은 현재 양국 간의 투자를 보다 자유롭게 하는 협정 체결을 논의하고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위기를 계기로 미국 패권적 지위의 상대적인 퇴조와 함께 'G2' 또는 'Chimerica'(편집자 주 : China + America)라는 개념이 공공연히 논의되었다. 중국의 부상에 따라 국제질서에 미중관계가 차지하는 위상과 중요성 증대를 의미한다.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 정책
미국과 중국은 한편으로는 연루와 협력을 모색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를 견제하고 제어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10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라 불리우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을 간과했음을 인정하고 아시아 지역에서의 재균형(rebalancing)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의 부상을 의식한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에서는 한미일 3국 공조체제, 동남아에서는 아세안 국가들, 특히 현재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분쟁 중인 필리핀과 베트남과의 군사협력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2014년에는 한국에 사드(THAAD)가 논란이 되었다. 나아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East Asia Summit) 등 지역다자기구에의 적극적인 참여 및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 등 경제통합을 통해 대중국 견제를 강화해왔다. 미국은 올 6월 상반기까지 TPP 관련국들과 협정체결을 마무리하고자 할 것이다.
시진핑의 신형대국론
반면 중국은 국제정세의 안정이 중국의 부흥에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존의 판단대로 중국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인 축을 미중관계의 안정과 발전에 두고 있다. 2012년 시진핑(习近平) 국가주석은 미국과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가 있다. 이 개념은 중국이 추구하는 대국관계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미국의 재균형 전략에 맞서서 중국의 '핵심이익(核心利益)'을 보존하기 위해서 제기되었다고 보여진다.
핵심이익의 개념은 2011년 <화평발전백서(和平發展白書)>에서 상세히 언급되었다. 국가주권, 국가안보, 영토보전, 국가통일, 중국헌법을 통해 확립한 국가정치제도, 사회의 안정과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 보장 등 포괄적인 개념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이후 보다 적극적인 해외진출(走出去) 전략으로 경제적 이익이 점차 해외로 확대되고 있고, 해양, 우주, 사이버 공간 등에서의 안보를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주변 해역인 남중국해, 황해 등 해상에서의 이익을 핵심이익으로 간주하고, 중국군의 현대화에 '공해전투(空海戰鬪, Air-Sea Battle)'같은 개념을 포함시키는 등 해양강국의 면모를 갖추려는 노력을 경주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국력 증대에 따른 자신감의 상승을 반영하는 동시에 중국 외교정책의 방향이 보다 공세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2010년 남중국해와 댜오위다오/센가쿠열도(釣魚島/尖角列島) 영토분쟁에서 중국의 공세적인 행동과 2013년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ADIZ) 선포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2015년에도 미국과 중국 양국은 사안에 따라 협력과 경쟁을 반복할 것으로 예견된다.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자신의 국력을 투사하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우려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은 TPP를 통해서 자국의 경제권을 형성하고자 하며, 반면 중국은 RCEP(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을 활용하고자 한다.
서희는 한국외교의 상징인가?
국제정치경제 질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이 강대국 패권 전쟁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한국의 역할이 필요하다. 국립외교원 입구에는 '외교'를 상징하는 역사 인물로서 서희(徐熙, 942∼998) 흉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들은 학교의 교과서에서도 서희의 외교담판에 대하여 배운다.
외교의 우리 역사 인물로서 서희 한 분밖에 떠올릴 수 없고, 또 굳이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쩌면 우리의 역사 DNA에는 국제정세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외교적 능력이 다소 결여되어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는 조공체계의 중화질서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체제에서 하나의 강대국에 일방적인 편승정책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강대국들 사이에서 지혜롭게 대처해 본 경험과 학습의 축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015년의 해가 떴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지정학
전쟁 위험이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는 지난 수십년 동안 경제적 번영을 구가해왔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불안정의 평화'가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이지만, 전쟁의 위협 없이 발전을 지속하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들의 삶은 위태롭다. 우리는 이미 핵무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왜 이런 환경에 놓여져 있을까? 가장 근원적인 대답은 지정학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왔다. 우리의 능력은 이 환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구한말과 해방 이후의 경우처럼 우리는 열강들의 세력 주도권 경쟁에 대한 미숙한 대처로 늘 불행한 역사의 질곡으로 빠져들었다. 식민지화, 한국전쟁, 분단과 분단체제의 고착화 그리고 현재의 북핵 위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외부의 힘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여 왔다.
2015년 외부의 힘, 다시 말해 2015년 현재 한반도 주변정세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미중 관계이다. 미중 간의 패권경쟁은 이미 가시화되었는데,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국가들이지만, 우리는 이 국가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서로 다른 미국과 중국의 역사
이 두 국가의 패권적 경쟁과 협력을 잘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국가들에 대한 문명사적인 고찰을 요구한다. 1776년 식민지에서 독립한 미국은 유럽의 구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가를 표방하면서 등장하였다. 입법, 행정, 사법이 엄격히 분립된 민주주의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의 영토를 병합하면서 연방주의를 발전시켰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는 동안 유럽제국들이 식민지 각축전 속에서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발전의 동력을 상실했다. 반면 미국은 대공황을 딛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후 경제복구와 자유주의 국제경제체제 건설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유럽문명을 이식받고 새로운 정치 및 경제 체제를 창출하면서 현대 국제체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2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차원에서 경험이 집적되면서 미국이라는 현대 국가가 완성되었고, 나아가 2차 세계대전 후 국제체제의 자유주의 질서를 창출한 패권국가로 부상한 것이다.
현대 국가로서의 중국은 완성된 국가이기보다 진행형의 국가이다. 정치 및 경제 체제로서 현대 중국은 1949년 건국되었다. 19세기초까지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했던 청제국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의 침략에 굴복하였다. 중국 근대사에서 100년의 침탈과 분열의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중국 사람들은 이 기간을 백년의 치욕이라 부른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성공적으로 저항했던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대륙에서 국가를 건립하였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마오쩌둥의 근대화 방식이 실패하자, 이에 반대했던 덩샤오핑이 1979년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였다. 경제의 생산과 이를 조직화하는 제도적 방식을 새롭게 바꾼 이 정책이 30여 년 지속된 결과가 국제체제에서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의 비약적 성장
중국은 1980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약 9%의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2014년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2위, 무역규모 세계 2위, 외환보유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전통적인 중화 문명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
공산당 1당 지배의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시진핑이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했던 2012년 제18차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보다 공고화되고 있다. 중국이라는 국가가 갖는 체제적 특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미국적 사유가 만들어낸 경험 기준에 근거해서)이 우세하지만, 중국의 국가 실험은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오랜 문명을 갖고 있으며, 인구와 영토 규모가 거대한 중국의 급속한 경제적 성공과 대외적인 정치적 영향력 확대는 자연스럽게 기존의 패권국인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의문을 갖게 한다.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 제도 및 규범 등에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전망이 비관적으로 혹은 낙관적으로 제기되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러한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 온 바가 있다.
국제정치의 역사는 개별 국가들의 상대적인 힘의 분포 변화가 급격히 진행될 때 국제체제의 구조적인 변동이 발생함을 보여준다. 국제체제를 구성하는 개별 국가 간 상대적인 힘의 역학관계의 변화는 국가 간 불균등한 성장의 법칙에 기인한 것이다. 기존의 패권국가가 관리하는 질서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잠재적인 경쟁국은 자신의 힘이 증대될수록 이익과 영향력 및 위신 등과 관련하여 기존 질서에의 불만족이 커진다.
그에 따라 기존 질서에의 순응을 재고(再考)하며 그 질서를 변경하려는 의도를 갖게 된다. 힘의 역학관계 조정(balance of power)은 패권을 둘러싼 전쟁을 통해서 구조적인 변동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급속하게 부상하는 국가들은 패권국과 그 동맹국들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에도 위협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함의가 도출된다.
미중 간의 협력과 갈등
미중 간의 경쟁과 갈등이 국제정치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국가들의 전철을 밟을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과 관념(현실주의)을 갖고 있다면 일종의 자기예언적 실현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2015년의 현재는 훗날 미중 패권 경쟁의 역사에서 어느 지점에 해당될까? 국제정치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극에 달해 전쟁으로 치닫는 지점은 분명히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GDP와 국방비 규모는 아직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중국은 미국과 같이 전세계에서 해외군사기지를 운용하고 있지도 그리고 운용했던 경험도 없다. 달러는 여전히 국제경제의 기축 통화이며, 다자간 국제기구의 제도와 규범은 미국의 영향력 하에 놓여 있다.
2015년의 시점은 중국이 증대하는 자국의 국력을 기반으로 지역내에서 점차 공세적인 행동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미국이 이를 의식적으로 견제하고 있는 그 어떤 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실의 미중관계가 과거 강대국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연루시키려는 협력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양국의 데탕트는 1972년 냉전체제에서 소련 견제를 위해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시작되었지만, 양국은 1979년에야 국교를 정상화하였다. 1990년대에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무역(최혜국대우 유지)과 연계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취소하였다. 미국은 점차 강대국 중국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2005년 국무부 졸릭 차관보는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조하면서 '이익상관자(stakeholder)'란 개념을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미중 간에는 전략경제대화가 2006년부터 정례화되었다. 양국의 오랜 의제인 무역불균형, 위안화 환율, 지적재산권 등 경제와 무역 등과 관련한 의사소통이 활성화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양국은 현재 양국 간의 투자를 보다 자유롭게 하는 협정 체결을 논의하고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위기를 계기로 미국 패권적 지위의 상대적인 퇴조와 함께 'G2' 또는 'Chimerica'(편집자 주 : China + America)라는 개념이 공공연히 논의되었다. 중국의 부상에 따라 국제질서에 미중관계가 차지하는 위상과 중요성 증대를 의미한다.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 정책
미국과 중국은 한편으로는 연루와 협력을 모색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를 견제하고 제어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10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라 불리우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을 간과했음을 인정하고 아시아 지역에서의 재균형(rebalancing)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의 부상을 의식한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에서는 한미일 3국 공조체제, 동남아에서는 아세안 국가들, 특히 현재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분쟁 중인 필리핀과 베트남과의 군사협력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2014년에는 한국에 사드(THAAD)가 논란이 되었다. 나아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East Asia Summit) 등 지역다자기구에의 적극적인 참여 및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 등 경제통합을 통해 대중국 견제를 강화해왔다. 미국은 올 6월 상반기까지 TPP 관련국들과 협정체결을 마무리하고자 할 것이다.
시진핑의 신형대국론
반면 중국은 국제정세의 안정이 중국의 부흥에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존의 판단대로 중국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인 축을 미중관계의 안정과 발전에 두고 있다. 2012년 시진핑(习近平) 국가주석은 미국과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가 있다. 이 개념은 중국이 추구하는 대국관계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미국의 재균형 전략에 맞서서 중국의 '핵심이익(核心利益)'을 보존하기 위해서 제기되었다고 보여진다.
핵심이익의 개념은 2011년 <화평발전백서(和平發展白書)>에서 상세히 언급되었다. 국가주권, 국가안보, 영토보전, 국가통일, 중국헌법을 통해 확립한 국가정치제도, 사회의 안정과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 보장 등 포괄적인 개념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이후 보다 적극적인 해외진출(走出去) 전략으로 경제적 이익이 점차 해외로 확대되고 있고, 해양, 우주, 사이버 공간 등에서의 안보를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주변 해역인 남중국해, 황해 등 해상에서의 이익을 핵심이익으로 간주하고, 중국군의 현대화에 '공해전투(空海戰鬪, Air-Sea Battle)'같은 개념을 포함시키는 등 해양강국의 면모를 갖추려는 노력을 경주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국력 증대에 따른 자신감의 상승을 반영하는 동시에 중국 외교정책의 방향이 보다 공세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2010년 남중국해와 댜오위다오/센가쿠열도(釣魚島/尖角列島) 영토분쟁에서 중국의 공세적인 행동과 2013년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ADIZ) 선포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2015년에도 미국과 중국 양국은 사안에 따라 협력과 경쟁을 반복할 것으로 예견된다.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자신의 국력을 투사하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우려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은 TPP를 통해서 자국의 경제권을 형성하고자 하며, 반면 중국은 RCEP(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을 활용하고자 한다.
서희는 한국외교의 상징인가?
국제정치경제 질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이 강대국 패권 전쟁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한국의 역할이 필요하다. 국립외교원 입구에는 '외교'를 상징하는 역사 인물로서 서희(徐熙, 942∼998) 흉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들은 학교의 교과서에서도 서희의 외교담판에 대하여 배운다.
외교의 우리 역사 인물로서 서희 한 분밖에 떠올릴 수 없고, 또 굳이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쩌면 우리의 역사 DNA에는 국제정세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외교적 능력이 다소 결여되어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는 조공체계의 중화질서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체제에서 하나의 강대국에 일방적인 편승정책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강대국들 사이에서 지혜롭게 대처해 본 경험과 학습의 축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015년의 해가 떴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차창훈 부산대 교수는 중국전문가로서 현재 미국 조지타운대햑교 방문교수로 워싱턴DC에 체류중입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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