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남녀관계? 터무니없다"
법정에 나온 정윤회 "<산케이> 글은 정도가 지나쳐... 심각한 명예훼손"
▲ 법정에서 만나는 산케이 전 지국장과 정윤회씨1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세월호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 행적 의혹을 보도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왼쪽 사진)에 대한 재판이 열리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오른쪽 사진)가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권우성
"피고인의 기사에는 '증권가의 소문에 따르면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라고 나오는데, 증인은 박 대통령과 남녀관계입니까?"
좀처럼 여유를 잃지 않던 정윤회씨가 살짝 동요했다. 기막히다는 심정이 그의 답변에서 배어나왔다.
"터무니 없습니다."
19일 정씨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2차 공판(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이동근)에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자신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난해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것처럼 묘사한 가토 전 지국장의 칼럼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로 심각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가토 전 지국장의 처벌을 원한다고도 밝혔다.
정씨는 전반적으로 차분하면서도 자신 있는 말투로 증언을 이어갔다. 본인의 진술과 통화내역 등을 종합해 재구성한 2014년 4월 16일 그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이날 정씨는 오전 10시 반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자택에서 차를 몰고 11시~11시반경 평창동에 사는 역술인 이아무개씨 집에 도착했고, 이씨와 그의 지인 원아무개씨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는 오후 2시 20분쯤 이씨 집 근처에 세워둔 자동차 안에서 후배와 통화를 했고 일단 집으로 돌아간 다음 오후 6시에 신사동의 한 중식당에서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2014년 4월 16일, 그는 어디에 있었나
정씨는 거듭 자신을 둘러싼 의혹은 너무 황당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15일 검찰 조사를 받으며 직접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준비해갔고, 검찰에게 위치 추적도 요청하는 등 자신은 떳떳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2005년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 일을 사실상 그만 뒀고, 2007년 공식 사임한 뒤 2012년 대선 직후 박 대통령이 먼저 전화한 일을 빼면 전혀 연락이 오고가거나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가토 전 지국장이 자신이 하지도 않은, 터무니없는 일을 얘기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가토 전 지국장 쪽은 좀처럼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안중민(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정씨가 검찰 조사 때는 '4월 16일 오전 집에 있었다'고 했다가 휴대전화 위치 추적 결과를 듣고는 '이씨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진술을 번복한 대목을 주로 파고들었다.
그는 "증인은 이씨와 한 달에 한두 번 점심을 먹는 사이라면서 그날 점심 식사는 기억 못하고 저녁 모임만 기억한다"며 "평창동에 간 사실을 숨기려고 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또 정씨가 4월 15일~17일 가족들로부터 연락받은 기록이 전혀 없는데, 다른 휴대전화번호를 같이 쓰지 않냐고 질문했다. 정씨는 4월 16일 오후 2시 20분 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후배와 통화했다고 하는데, 역술인 이씨가 '정씨는 우리 집에서 통화하고 나갔다'고 말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기억이 불분명했던 부분이 있고, 평소 가족들과 꼭 필요한 일 말고는 연락은 자주 하지 않는 편이며 다른 전화번호는 쓰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는 "진술 번복이 아니라 검찰에서 분명 '나는 집에 있던 걸로 아는데, 통화내역으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달라'고 한 것"이라며 "조사 받은 내용은 4개월 전 일인데, 변호사님은 4개월 전 점심을 기억하시냐"고 되물었다.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에는... "모른다, 사실과 다르다"
변호인들은 정씨가 박 대통령과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났는지는 물론,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임을 증명하기 위해 전 부인 최순실씨와 최씨 아버지인 최태민 목사 관련 질문도 던졌다.
그런데 1997년 장모의 제안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돕기 시작, 10년 가까이 보좌했으면서 정씨는 처가와 박 대통령의 관계를 잘 모른다고 했다. ▲ 박 대통령과 최 목사가 긴밀한 사이이며 ▲ 박 대통령이 2006년 피습 당했을 때 최순실씨가 극진히 간호했다는 풍문을 두고는 "(장인은) 나이가 많으신 분인데 (박 대통령과 남녀관계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당시 병실엔 누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며 원론 수준으로 답했다. 한편 자신이 부인과 이혼하며 '비밀 유지'를 조건으로 내세웠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오후 3시 34분부터 오후 6시 19분까지 차근차근 증언을 이어가던 정씨는 끝으로 "국적이나 직업을 떠나서 실수나 오해할 수는 있지만 (가토 전 지국장 글은) 정도가 지나치다"며 "인간의 양심에 비춰 사실이 아니면 인정하고 반성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똑같은 소재를 다룬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의 글은 '이런 의혹이 있는데 해결해야 한다' 수준이지만 가토 전 지국장 글은 너무 단정적이라고도 했다.
검찰은 정씨 진술 자체가 믿을 만한데다 다른 사람들도 그 신빙성을 뒷받침한다며 4월 16일 그와 함께 식사를 했다는 이씨와 원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놨다. 재판부는 이들을 다음 공판 때 부르기로 했다. 가토 전 지국장의 3차 공판은 2월 23일 오후 2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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