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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소중히 여기게" 이나모리의 기적, 왜?

[서평] <이나모리 가즈오 1,155일간의 투쟁>

등록|2015.02.02 14:17 수정|2015.02.02 14:17
강남역 10번 출구보다 신논현역이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던 때였다. 일을 하다 짬이 나면 나는 신논현역을 향해 걸었다. 신논현역 앞에는 커다란 서점이 있었다.

하루에 삼십 분 정도는 짬을 낼 수 있었고, 나는 그 시간을 책 읽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그렇게 서점으로 향하길 며칠. 이 책 조금, 저 책 조금 읽는 것은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때, '이왕이면 한 권의 책을 완독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릿 속에서 툭 튀어나왔고, '그거 괜찮겠다!'하며 우연히 고른 책이 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처음 듣는 이름의 어느 일본인 경영자의 자서전이었다.

'읽다가 재미 없으면 그만 둬야지'하며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마침내 다 읽었다. 외우기 어려운 그의 이름을 머릿 속에 어렵사리 각인시켰다. 왠지 잊기 싫은 이름이었다. 나는 한 명의 성공한 경영자를 만난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명의 사상가나 철학자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성공해야지!'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분명 기업가의 자서전을 읽고 있음에도 '착하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희한한 일이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희한한 사람이었다.

성공보다, 인생을 가르치는 기업가

▲ 이나모리 가즈오 1155일간의 투쟁 ⓒ 한빛비즈

그 뒤로도 그의 어록을 담은 책과 그의 경영 철학을 담은 책을 두세 권 더 읽었다. 그는 보통의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점에서 무서운 사람이었다. 선한 마음과 독한 실행력을 함께 아우르고 있는 범접할 수 없는 1인자.

서점을 들락거리던 그때쯤, 어렴풋이 JAL항공에 관해 들었던 것 같다. 일본 제1항공사가 파산 신청을 했고, 기사 회생을 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내 귀에도 들렸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일본 기업들이 하나둘 그 지위를 잃었거나, 잃고 있던 시기였다. 나는 항공사마저 그렇게 되는구나, 하며 일본의 어두운 앞 날을 혼자 그려보기도 했다.

그 중심에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있었을 줄이야. 다 쓰러져가는 항공사를 항공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전자 회사와 통신 회사의 회장이 다시 살려냈을 줄이야. 그는 어떻게 항공사에 발을 들여놓게 됐던 걸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이나모리 가즈오 1,155일간의 투쟁>을 읽기 시작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교세라의 창립자이자 명예 회장이며, 일본 2위 통신 업체인 KDDI의 창립자이기도 한 이나모리 가즈오는 2010년 JAL항공사에 발을 들여놓는다. 당시 JAL 항공사는 파산 후 회사갱생법(우리나라의 기업회생절차) 적용을 신청한 상태였고, 부채 총액은 무려 약 20조 5000억 원에 달해 있었다. 일반 기업으로는 최대의 파산이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원래 JAL항공사를 싫어했다. 해외로 나갈 일이 있을 땐 경쟁사인 ANA항공을 일부러 타고 다닐 정도였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보기에 JAL항공사 직원들은 회사와 쏙 닮아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서비스 정신을 잃고 기계적으로 일하는 것이 너무 티가 났다.

그래서인지 파산을 했음에도 JAL항공은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지 못했다. 국책 기업으로 시작한 JAL항공은 경영위기가 닥칠  때마다 본인들이 해결할 생각은 않고 국가에 손을 벌려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국가의 비호 아래 덩치만 키운 방만하고 느슨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JAL항공사에 따라 붙었다. 그 이미지가 바로 JAL항공사 모습 그대로였다.

회사 갱생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이나모리 가즈오를 삼고초려를 해서 모셔온 JAL항공사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든 것을 개혁해야 했다. 놀라운 점은, 이 커다란 기업을 개조하기 위해 투입된 인원이 이나모리 가즈오를 제외한 단 세 명이었다는 것이다. 네 명이 이 모든 일을 해냈다. 어떻게? JAL 3만 2천 명 사원의 의식을 개혁함으로써. 물론 처음부터 일이 잘 풀렸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이면서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임원들이었다. JAL 임원들은 관료보다 더 관료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회사의 이익엔 무관심한 채 사내 정치와 정부와의 교섭에만 열을 올렸고, 이를 본인들의 '업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병든 대기업'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본인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연줄에 의해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만이 경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들과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기본부터 시작한 이유였다.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처음 몇 개월간 이나모리 가즈오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자회사 사장 100명을 차례로 한 시간씩 면담하고, 임원진들을 대상으로 리더 교육을 실시했다. 최고 교육을 받은 자존심 강한 임원진들은 처음에는 강렬하게 반대했다. 우리에게 무슨 리더 교육인가, 싶었던 게다. 하지만 회장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앉아 있는 임원진을 향해 이나모리 가즈오가 내뱉는 말들은 이런 류였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게."
"거짓말을 하지 말게."
"다른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되네."

거대 기업 임원들에게 유치원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였다. 입이 쩍 벌어진 임원진들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임원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정작 이를 마음속 깊이 새기고 실천하는 사람은 너무나 적다는 사실을.

선한 마음을 바탕으로 개인의 이익이 아닌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바로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 철학이었다. 그는 경영을 하고 싶으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일'을 지키면 된다고 말했다.

"거짓말을 하지 마라. 정직하라. 욕심 부리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 남에게 친절히 대해라. 어릴 적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배운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지켜야 할 규칙, 그런 '당연한 것'을 규범으로 삼아 경영을 하면 됩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나쁜 마음 중 몇 개를 끄집어내 그것으로 날카로운 창을 만들고 이 창으로 경쟁에서 이겨야 비로소 남을 관리하고 경영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될 수 있다고 노래하는 사회에서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 철학은 너무나 생소하게 들린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그의 책을 읽으며 '옛날에나 통했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시대에는 더는 그의 철학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철학이 JAL 항공에서 통했다!

임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상대의 마음을 보고,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하게 회사를 꾸려가고 싶은 마음이 불끈 생긴 것이다. 임원들이 변한 모습을 보고 사원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사원들이 먼저 이나모리 가즈오의 철학을 듣고 싶어 했다. 사원을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사원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회사는 자연스레 변한다.

의식 개혁과 함께 이나모리 가즈오는 자신의 '아메바 경영'을 JAL 항공에 수혈했다. 조직을 아주 작은 단위로 나눠 모든 '사원 전원이 경영자'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것이 아메바 경영의 핵심이다. 아메바 경영을 통해 사원들은 서서히 주인 의식을 갖춰갔다. 이렇게 JAL 항공은 다시 본궤도에 올랐고, 과거의 최고 영업 이익을 경신하며 주식 시장에도 재상장됐다.

2013년, 이나모리 가즈오는 약속했던 3년을 채우고 회장직에서 내려왔다. 그는 3년 간 무보수로 일했다. 잘못하면 그간 쌓아놓은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었던, 80세를 눈 앞에 둔 노령의 '경영의 신'은 오로지 3만 2000천 명의 사원을 지키고 다른 항공사의 독점을 막으며 일본 경제를 위해 이 일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자본주의를 찬양했다. 탐욕에 물든 지금의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었다. 높은 뜻을 품은 경영자가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집단을 이끌어 사회에 공헌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자본주의를 찬양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자본주의를 지금 다시 실현해 보여줬다.

내게 이나모리 가즈오는 여전히 희한한 사람이었다. 이 책을 읽을 때도 나는 '이 사람처럼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 성공해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또 '착하게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삶을 살아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행하며 사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간 내 마음 씀씀이는 어땠던가를 돌아보면서. 나는 분명 한 회사의 갱생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남은 건 '마음'이었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
덧붙이는 글 <이나모리 가즈오 1,155일간의 투쟁> (오니시 야스유키/한빛비즈/2013년 11월 28일/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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