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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다" 할머니들의 밀당 현장

설날 앞두고 쌀엿 만들고 있는 '슬로시티' 담양 창평마을

등록|2015.02.02 17:18 수정|2015.02.02 17:18

▲ 할머니들의 밀당. 옥산댁과 무월댁이 갱엿 뭉텅이를 서로 붙잡고 밀고 당기며 식이고 있다. ⓒ 이돈삼


'밀당'이다. 그렇다고 그저 밀고 당기기만 하는 게 아니다. 요령이 숨어 있다. 밀 때도, 당길 때도 살짝 안으로 말아줘야 한다. 안으로 공기를 넣어 담아주는 것이다. 그래야 구멍이 만들어진다. 언뜻 보기에 일도 아닌 것 같다. 재미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안으로 공기를 담아주지 못한다. 속에 구멍도 생기지 않는다. 끈적거리는 갱엿을 당기는 것만도 힘에 부친다. 아무나 쉽게 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나 못해라. 보기엔 쉬워보여도. 그렇게 쉬울 것 같으면 내가 했지라. 이 분들이 계신께 하제. 안 그러면 못해라. 안 계시믄 엿 만들기도 끝인 것 같소."

조진순(61)씨의 말이다. 조씨는 '슬로시티' 담양 창평의 오강리에서 쌀엿을 만들고 있다. 지난달 28일이다. 쌀엿 만들기가 설날은 앞두고 대목을 맞았다.

▲ 할머니들의 밀당으로 갱엿이 쌀엿으로 변신하고 있다. 단내를 듬뿍 머금었다. ⓒ 이돈삼


▲ 옥산댁과 무월댁이 엿을 식이고 있다. 그 가운데서 주인장 조진순 씨가 갱엿 뭉텅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 이돈삼


조씨의 집에서 '밀당'을 하는 어르신은 옥산댁 기복덕(81) 할머니와 무월댁 송경순(75) 할머니다. 갱엿 한 뭉텅이를 들고 서로 밀고 당기는 일을 '식인다', '새긴다'고 한다. 공기를 담아 늘이면서 엿 속에 구멍을 만드는 과정이다. 엿은 구멍이 생명이다. 속에 구멍이 없으면 맛이 덜 하다. 먹은 뒤에 찌꺼기도 입안에 남는다.

"살림을 시작함서 했제. 우리야 만듦서 시작했고. 다른 사람덜이 '우리 것도 해주쇼' 한께 해주고. 시방인께 안 하제. 옛날에는 너나없이 다 했어. 엿을."

옥산댁 기씨 할머니의 말이다. 시집와서 시작했으니, 엿 만들기 경력이 60년도 넘었다는 얘기다.

▲ 단내를 머금은 쌀엿. 갱엿 뭉텅이를 붙잡은 두 할머니가 서로 밀고 당기고 있다. ⓒ 이돈삼


▲ 무월댁과 옥산댁. 창평쌀엿을 식이는 명콤비다. ⓒ 이돈삼


"되제. 이 집에서 장사함서 식여달라고 한께 하제. 우리 집에서는 안해. 돈도 벌고 좋긴 헌디. 되야. 힘들어."

무월댁 송씨 할머니의 말이다.

옥산댁과 무월댁은 호흡이 잘 맞는다. 오랜 기간 엿 식이는 일을 같이 해왔다. 이른바 명콤비다. 굳이 말이 필요 없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는 사이가 됐다. 같이 하는 일도 수월하다. 엿을 식이는 작업이 쉬워 보이는 이유였다.

▲ 식인 엿 늘이기. 식이기 작업이 끝난 엿을 제월댁이 쭈욱-쭈욱- 적당한 굵기로 늘이고 있다. ⓒ 이돈삼


▲ 엿 자르기. 다 늘린 엿을 제월댁이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있다. ⓒ 이돈삼


이렇게 식인 엿을 적당한 두께로 길게 늘이는 일은 다른 두 할머니의 몫이다. 그냥 잡아서 쭈욱-쭈욱 늘이는 것 같은데, 굵기가 일정하다. 거의 달인 수준이다. 이 엿을 먹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절단하는 일은 제월댁 이정순(70) 할머니의 일이다. 아무렇게나 툭-툭- 치는 것 같은데, 크기가 고르다.

다 만들어진 엿을 봉지에 담아 포장하는 건 오경아(53)씨가 한다. 오씨는 수원에서 살다가 3년 전 이곳으로 내려온 '수원댁'이다. 창평은 남편의 고향이다.

"신기해요. 엿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그런데 힘들어요. 보기와 다르더라구요. 처음에는 저도 쌀엿 만드는 법을 배울 생각이었는데. 포기했어요. 그냥 이렇게 엿 만드는 일을 도와주는 걸로 만족하려구요."

오씨의 말이다. 힘든 것 빼면 쌀엿 만드는 일이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다고.

▲ 쌀엿의 재료가 되는 엿기름. 이것을 식혜로 만들고 갱엿으로 달여야 한다. ⓒ 이돈삼


▲ 장작불을 지핀 가마솥. 솥에서 식혜가 갱엿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 이돈삼


이 과정을 총괄하는 건 주인장 조 씨의 몫이다. 그렇다고 뒷짐 지고 하는 총괄감독이 아니다. 엿을 식일 수 있도록 사전 준비도 그이가 해야 한다.

재료를 챙기고, 식혜를 만들고, 이 식혜를 갱엿으로 만드는 일을 다 한다. 식혜를 갱엿으로 만드는 일은 밤새 가마솥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다. 갱엿을 적당한 뭉치로 덜어놓는 것도 주인장이 한다.

뿐만 아니다. 엿을 식일 땐 아랫목에 넣어둔 갱엿 뭉텅이를 하나씩 빼서 엿을 식일 어르신들한테 대줘야 한다. 일손이 빠지는 곳에 손도 대신 넣어줘야 한다. 감독 겸 보조까지 만능인 셈이다.

▲ 다 만들어진 쌀엿. 할머니들이 잘 식인 덕분에 엿구멍이 적절히 만들어졌다. ⓒ 이돈삼


▲ 창평쌀엿을 만드는 사람들. 왼쪽부터 수원댁과 무월댁, 옥산댁, 그리고 주인장(조진순)과 제월댁이다. ⓒ 이돈삼


이렇게 조씨의 집에서 이날 하루 만들어진 쌀엿이 120근. 1근을 600g으로 계산할 때 70㎏이 넘었다. 여기에는 40㎏들이 쌀 3포대가 들어갔다. 이 집에서만 이번 겨울에 쌀과 조청을 만드는데 쌀 200포대를 쓸 예정이다.

판매는 어렵지 않다. 설 대목을 맞아 직거래로 대부분 나간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전화를 통해서다. 값은 쌀엿 ㎏당 2만 원이다. 한 철 장사로 쏠쏠한 소득을 가져다주는 쌀엿이다. '슬로시티'의 품격까지 높여주는 창평쌀엿이다.

▲ 주인장 조진순 씨가 다 만들어진 엿을 보자기에 담고 있다. 택배로 보낼 물건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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