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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깨니 하얀 이불이... 여보, 미안해

[공모-자존심 때문에] 나의 두 번째 '알코올 사건'

등록|2015.02.04 15:18 수정|2015.02.05 17:48
"아빠! 술 먹고 있어요?"
"아니, 밥만 먹고 있어~."

"아빠, 술 마시면 안 돼요~ 사고 나요."
"그럼, 아빠가 누군데. 걱정 마. 아빠 술 안 마셔. 일찍 들어갈게."

"네, 일찍 들어오세요."
"이따 보자."

첫째 아들과 통화를 마시고 난 소주 잔을 마저 털어 넣었다. 때는 2014년 4월 중순경. 거래처 접대 차 본사에서 오신 본부장님, 부사장님 그리고 거래처 팀장님을 비롯한 직원들과 한 잔 하고 있는 중이다.

아들에게 멋진 아빠가 되고 싶지만...

거래처와의 회식자리사회생활 중에 피할 수 없는 회식자리!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달갑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거래처와의 유대관계를 위해서는 아직 이만한 방법보다 나은 것을 찾기는 힘들다. ⓒ 김승한

내가 저녁을 먹고 늦게 들어가는 날이면 아들은 아빠가 걱정된다며 항상 전화를 한다. 그러면서 술을 먹는지 안 먹는지 확인을 한다.

아내 말에 의하면 아빠가 작년처럼 사고가 날까봐 걱정을 많이 하는 것이란다. 아빠와 아들 간에는 무언가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다. 마치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랄까?

나도 아들에게는 정말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 자상하고 능력 있고 못하는 게 없는 그런 아빠 말이다. 그러나 간절한 나의 이 소망은 알코올로 인한 두 번째 '사건'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거래처와의 술자리는 2차로 이어졌다. 맥주가 박스로 나오고 양주도 두 병이나 나왔다. 이른바 폭탄주 시간이다. 두 아들의 얼굴이 겹친다. 폭탄주가 두 바퀴 정도 돌자 분위기가 정말 화기애애해졌다. 나는 거래처 팀장님에게 양주 한 잔 드리며 인사를 했다. 그때 팀장님이 나에게 고향을 물어보신다.

"고향이 어디세요? 사투리를 쓰지 않으시던데?"
"네, 충청도 대전입니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팀장님의 얼굴이 환해진다. 동그란 얼굴이 금세 붉어지며 흡사 여름 소낙비가 지나간 후에 나온 해님 같았다. 팀장님은 나를 끌어안으셨다. 대뜸 반말로 바뀌었다.

"어, 동향 사람이네? 울산에서 대전 사람을 만나다니. 자, 한 잔 받아."

팀장님과 연거푸 폭탄주 러브샷! 알코올은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내려갔음이 확실했다. 몇분 후 알코올의 위력이 거꾸로 위장에서 식도로 올라온다. 식도를 거친 파도는 구강을 지나 코와 눈을 삼키고 나의 두뇌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리고 …. 여러 소리가 한데 어울려 시끄럽다. 내 몸이 좌우로 마구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이내 잠잠해졌다. 조용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눈을 떴다. 눈이 부시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개의 침대가 있다. 누워있는 사람도 있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순간 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레지던트 이블>! 하얀 이불을 제치고 앉았다. 밀라 요보비치가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났던 모처의 장소 같았다.

'여긴 어딘가, 또 나는 누군가?'

이불과 침대보에 글자가 보인다. '△△병원'.

'응급실이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시간을 보니 오전 1시가 넘어간다.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만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해서 여기에 누워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난 주섬주섬 옷을 입고 신발을 찾아 신었다. 간호사 프론트가 저기 보인다. 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다시 한 번 나의 머릿속을 뒤집어 보았다.

'아, 그렇지 회식이 있었지.'

쇠고기 갈빗살에 소주병까지 기억이 난다. 양주에 맥주까지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리고 다음 기억…은? 없다. 난 간호사 프론트까지 걸어가는 10여 초의 시간 동안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기분이 급우울해진다. 걱정이 된다. 왜 걱정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만 뭔가 크게 잘못을 한 것 같다. 주머니를 뒤져봤다. 내 신용카드와 카드 명세서가 나왔다. 이 병원에서 사용한 카드 내역이다.

'누가 내 카드를 사용한 걸까?'

간호사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한다.

"괜찮으세요?"
"예? 아, 네."

멍 때리는 대답을 하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저, 지금 가도 되나요?"
"예, 가시면 돼요."

"네, 수고하세요."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대답을 마치고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응급실에서 정문으로 나가는 복도가 참으로 멀게 느껴졌다. 병원을 나와 큰길가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기사에게 집주소를 불러주고 난 핸드폰을 샅샅이 뒤졌다.

통화내역과 문자 메시지. 점점 두려움의 공포가 나를 엄습해온다. 평소 잘 통화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전화를 걸었나 보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미확인 문자 메시지도 20건이 넘었다. 음성 메시지도 있다.

난 택시 안에서 퍼즐을 맞춰보았다. 내 핸드폰에서 발신된 전화번호와 수신된 전화번호. 거기에 그 전화번호들이 찍힌 시간. 그 기록을 바탕으로 문자 메시지를 얹어서 대충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마지막 부사장님이 내게 보낸 음성 메시지,

"김 차장, 어디야?"

한 시간 후에,

"집에 들어갔어? 아침에 전화 좀 해줘."

난 절망했다.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것이다. 택시가 30여 분을 달린다. 참 멀리도 왔다. 집이 가까워올수록 손이 떨리고 머리는 심각한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아내에게 뭐라고 말하지? 용서해 줄까?'

문을 살짝 열고 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옷을 벗었다. 그리고는 살금살금 걸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순간,

"아침에 얘기 좀 하자."

내 가슴에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산산조각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난 아내를 피해 왼쪽으로 몸을 돌리고 새우잠을 청했다. 졸리다. '에라 못난 놈! 그러고도 잠이 오냐?' 난 이 상황을 만들고도 잠이 오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사건의 진상은 이랬다

아침, 난 조용히 일어나 서재로 가서 마저 남아있는 퍼즐을 맞춰보았다. 내 핸드폰에 남아있는 모든 기록과 전날의 기억으로 대충 밑그림을 그린 후 어젯밤 내가 전화를 했다는 친한 후배와 통화를 했다.

"형! 아직 살아 있어요?"

아, 자식이 날 놀리는 건가! 난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후배로부터 어젯밤의 일을 최대한 겸손하고 예우를 갖춰 들었다.

난 어젯밤 2차 술자리에서 몰래 나왔다. 부사장님은 내게 대리기사 부르라고 돈까지 쥐어주셨다. 내 차가 서 있는 곳으로 가는 도중 난 그만 도로에 쓰러졌다. 술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지나가던 행인이 119를 부르고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내 핸드폰을 찾아서 가나다순으로 제일 먼저 저장되어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내 친구의 아내였다. 그렇게 해서 전화가 대전에 있는 친구들과 후배들을 돌고 돌아 우리 집 여사님에게까지 연락이 되었다. 경찰 아저씨 말씀,

"저, 김△△씨 부인되시죠?"
"예, 그런데요?"

"지금 남편이 길에 쓰러져 있어요. 술 냄새가 많이 나는데 병원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아요."
"……."

"지금 좀 병원으로 오셔야겠는데요"
"제가 지금 나가기가 힘든데 어떡하죠? 애들이 너무 어려서."

"보호자가 계셔야 병원에 가서 진찰 받고 귀가 시킬 수 있습니다."
"큰일이네요. 아기들 때문에…. "

"그럼 일단 병원에 가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때 아내에게 대전에 있는 내 친구의 아내가 전화를 했단다. 나와는 결혼 전부터 가족처럼 지내던 부부이다. 그녀는 전직 대학병원 간호사였다.

"언니, △△오빠 사고 쳤다며? 여기 대전에 오빠 친구들한테 경찰이 전화하고 난리 났어."
"어휴, 어쩌냐?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데 애들 데리고 나가기는 힘들고."

"언니, 그냥 놔둬. 병원에 있다가 깨면 알아서 기어들어올 거야."
"그럴까? 어디 다친 건 아니겠지?"

"다치긴 뭘 다쳐! 술 먹고 엎어진 거지. 병원에서 전화 올 거야 좀만 기다려봐."
"그래, 고마워."

내게는 작년에도 비슷한 알코올 사건이 있었다. 그 모든 정황을 친구들도, 친구의 아내들도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그냥 놔두라는 것이다.

조금 이따 병원에서는 진찰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연락이 왔고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또 술 때문에 사고를 친 내게 화가 치밀었단다. 어디 아픈 데도 없고 술만 깨면 집에 갈 수 있을 거라니 아내는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간호사의 말에 '죄송하다'며 그냥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내가 그 병원의 응급실에 깬 건 그로부터 약 한 시간 이후였다.

난 아내에게 죄인이다. 두 번이나 술로 마음 고생을 시키다니…. 어디 다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긴 하나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아들들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늦게 온다면 어김없이 전화를 한다. 술 먹지 말라고.

내가 요즘 먹고 있는 약들몇년 전 나이 사십이 넘기며 내 몸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대표적으로 직원들과 술자리를 할 때이다. 매일 먹는 약을 늘어놓고 보니 가족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 김승한


나이 사십을 넘기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느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몸이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 어른들 세대가 그렇듯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술을 좋아하셨다. 그렇지만 밖에서 아무리 술을 많이 드셔도 정신을 잃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서 간혹 보던 추한 술주정뱅이 아저씨의 모습이 아버지에겐 없었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의 그림자를 깨뜨렸다. 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내에게 아들들에게 내가 어릴 적 보았던 당당한 아버지와 남편의 모습을 찾겠노라고.

아내 말이 우리 아들,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선생님들에게 이렇게 다 퍼뜨리고 다닌단다.

"우리 아빠 술 먹고 사고 났었어요. 우리 아빠는 술 먹으면 안 돼요."

아, 무너진 내 자존심이여! 내 인격이여​! 아들아 그만 좀 해다오. 너희에게만은 멋지고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단다.

​'2015년 2월' 사업 계획 작성하느라 분주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이 밤에도 첫째 아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반가운 우리 아들 목소리다.

"아빠, 일찍 들어오세요. 술 먹지 말구요."
"응 그래. 걱정 마. 아빠 술 안 먹고 들어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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