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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 볼 수 있는 '수궁가', 이렇게 봤습니다

[리뷰] AYAF2014 다원부문, 작곡가 조진옥 '멀티미디어 음악극 수궁가'

등록|2015.02.04 21:02 수정|2015.02.04 21:02

▲ 조진옥의 멀티미디어 음악극 <수궁가>. 영상과 24채널 라우드스피커 오케스트라, 판소리 대금 북의 음악이 판소리 수궁가를 쉽고 재미있게 감상하도록 한다. ⓒ 박현근


1월엔 공연계도 풍년이다. 봄, 가을의 클래식 공연들과 다르게 현대음악, 실험음악 등 희소성 높은 레퍼토리 공연들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ARKO), 서울문화재단 등의 지원으로 연말과 1~2월 겨울 동안 많이 열린다.

ARKO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인 'AYAF'의 지난 1년 사업의 결과에 대한 공연과 발표가 지난 12월 20일부터 2월 1일까지 진행됐다. 그 중에서도 참여예술가 20인 중 전자음악 기반의 두 작곡가인 조진옥과 남상봉의 공연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월 24일 경기도 일산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 실험무대에서 열린 조진옥의 '멀티미디어 음악극' <수궁가>는 24채널 라우드스피커 오케스트라로 우리의 옛 판소리 수궁가를 영상과 결합한 한 시간짜리 음악극으로 선보였다. 어려운 옛날 말로 쓰여진 판소리 대목을 오늘날의 우리말로 풀고, 각 대목에 맞는 영상으로 좀 더 친숙하고 재미있게 판소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5시 본 공연에 앞서 3시에는 Scott A. Wyatt, 김동선, 조진옥, 고병량, 송향숙 5명 작곡가가 24채널 라우드스피커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한 곡을 발표하고 해설하는 렉처콘서트가 열렸다. 5.1채널 서라운드 스피커 시스템까지는 익숙하지만 24개의 스피커가 원형으로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에 관객들의 반응은 신기함 반, 호기심 반이었다.

각 작곡가들의 작품 특색마다 음향이 스피커를 따라 순차적으로 한 방향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곳곳에서 소리가 발생하기도 하는 등 소리의 음형 자체가 소리가 나는 위치와 이동방향, 깊이감으로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에 관객들은 큰 호응을 보였다.

▲ 24채널 라우드스피커 오케스트라는 조진옥이 이번 <수궁가>에서 국내 첫 선보였다. 소리의 미세한 공간분포와 방향성이 기존 5.1채널 시스템보다 잘 표현된다. ⓒ 박현근


5시 드디어 멀티미디어 음악극 <수궁가>가 시작됐다. 사실, 판소리 수궁가를 완창으로 들은 사람이라면 그들은 국악 전공자 중에서도 판소리 전공이거나, 국악 애호가이거나, 아니면 옛날에 태어난 어르신들 정도일 것이다. 그 정도로 연주 횟수가 적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유산을 전통의 형태로 만나는 것이 힘들고, 또한 원형 그대로 만난다 하더라도 스마트폰, 컴퓨터, TV 등 다양한 전자기기와 멀티미디어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그 옛 방식의 예술문화를 소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어떤 어린이가 이날 공연의 수궁가를 보았다면 "아, 토끼랑 거북이 그림에 나오네? 수궁가 재밌다!!"라고 했을 것이다. 3시간 반의 완창본 수궁가를 한 시간으로 줄이고, 용왕, 바닷 속, 토끼, 거북이가 수묵담채화로 은은하게 그려진다. 또한 공연 내내 영상(영상디자인 최성민)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판소리와 음악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부분 위주로만 등장함으로써 영상과 판소리, 대금, 북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돕고 있었다.

GRM의 'Acousmonium', 영국 버밍엄 대학의 'BEAST'등 해외 유명 음향기관에서는 다채널 스피커시스템의 연구가 활발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연구하고 나아가 대중을 위한 공연에까지 직접 연결한 적은 이번 조진옥의 시도가 처음이다. 이번 공연의 사운드 시스템의 컨트롤을 위해서는 서울대학교 예술과학센터 책임연구원 고병량이 개발한 프로그램 'AcousBlender'가 사용되었다.

정은혜의 소리와 김인수의 북, 이아람의 대금은 찰떡같은 노래와 연주로 몰입감을 주었다. 24채널 라우드스피커 오케스트라는 공연장이 마치 바닷 속에 잠긴 것 같이 느끼게 했다. 거북이가 토끼를 잡으러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가는 대목에서는 바닷물살이 공연장 스피커 뒤쪽에서 앞쪽으로 첨벙거리며 거대한 소리의 물결이 서서히 이동하는데, 정말로 관객이 거북이 등을 타고 바다 깊은 곳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한,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 토끼의 모습을 노래한 "토끼화상" 대목을 맨 마지막에 다시 배치해 극의 전체균형을 잘 맞추었다.

▲ 작곡가이자 전자음악가 조진옥은 "제가 작곡가로서 돋보이기 보다는, 소리의 보편적 이해 위해 저의 음향기술이 도움이 되도록 '양념'을 친 거죠"라며 작품의도를 설명했다. ⓒ 조진옥


작곡가이자 전자음악가인 조진옥은 "오늘날 특히 '시각적' 자극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 어린이들도 '듣는 것'에 대한 재미를 찾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판소리의 보편적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면서 "제가 작곡가로서 돋보이는 것보다는 저의 음향적 기술이 판소리 수궁가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한마디로 '양념'을 친 거죠"라며 작품 의도를 밝혔다.

1990년대 초, 한 TV광고에서 생전의 박동진 명창이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고 하던 대목이 생각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것'은 현대와 결합해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 왔다.

'우리 것'의 원형과 '현대적인 것'을 어떤 형태로 어느 정도의 비율로 결합해서 무엇을 만들 것인지가 중요한 가운데, 작곡가 조진옥의 멀티미디어 음악극 <수궁가>에 그가 친 '양념'은 우리의 수궁가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딱 '알맞게' 뿌렸다. 요리의 전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마지막에 간 맞추는 사람 아니던가. 조진옥이 다음에는 어디에 어떤 양념을 뿌릴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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