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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힘...그러나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107] 沒

등록|2015.02.07 15:11 수정|2015.02.07 15:11

가라앉을 몰(沒)은 소용돌이처럼 보이는 회(回) 아래 허우적대는 손(又)이 있어 물에 빠져 가라앉는 의미를 나타낸다. ⓒ 漢典


서한(西漢) 시대 명궁으로 유명한 이광(李廣)이 어느 날 사냥을 가는데 바로 앞 풀숲에 큰 호랑이가 숨어 있는 걸 발견하고, 급히 활을 꺼내 온 힘을 다해 호랑이를 명중시켰다. 사람들을 시켜 호랑이를 찾았으나 호랑이는 없고 호랑이 모양의 바위에 화살이 박혀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화살촉은 물론 화살 뒤쪽의 깃털마저 바위 속에 완전히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이를 몰석음우(沒石飮羽) 혹은 중석몰촉(中石沒鏃)으로 표현한다. 이광 자신도 놀라 몇 걸음 떨어져 다시 바위에 활을 쏴봤으나 화살만 부러질 뿐 다시는 바위에 꽂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신기해서 대학자인 양웅(揚雄)을 찾아가 그 연유를 물으니 "호랑이의 위협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그 절박함이 자신도 모르게 바위를 꿰뚫는 놀라운 집중력을 불러온 것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금석도 열 수 있는 법이지(精誠所至, 金石爲開)"라고 했다고 한다.

무언가에 몰입하여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수호지(水湖志)> 108 영웅호걸 중에 가장 충성스럽고 용맹한 장수인 화영(花榮)은 활을 잘 쏘아 호가 바로 '소이광(小李廣)'이었다.

가라앉을 몰(沒, méi, mò)은 물 수(水)에 창이나 몽둥이를 나타내는 수(殳)가 결합된 형태다. 전체에서 보듯 소용돌이처럼 보이는 회(回) 아래 허우적대는 손(又)이 있는데 물에 빠져 가라앉는 의미를 나타낸다. '가라앉다'는 뜻에서 빠져들다, 죽다, 빼앗다 등의 의미로 확대되었으며, 부정적인 의미 때문인지 중국어에서는 부정사로 널리 쓰인다.

'없다'는 의미를 나타날 때 문어에서는 무(無)를 쓰지만, 구어에서는 주로 몰(沒)을 사용한다. 중국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에 "방법이 없다(沒辦法)"가 있는데, 우리말에도 몰상식, 몰지각의 경우 '없다'는 의미로 쓰임을 알 수 있다.  

이광의 고사에서 보듯 무언가에 집중하여 온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때로는 놀라운 힘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너무 한 가지에 몰입하는 것이 오히려 전체적인 조화를 놓치고 소통을 가로막는 부작용을 불러오기도 한다.

<공자가언(孔子家言)>에 "배는 물이 없으면 나아갈 수 없지만, 배 안에 물이 새어 들어오면 곧 가라앉고 만다(舟非水不行, 水入舟則沒)"고 했다. 영어로만 수업하는 영어 몰입교육이 교육현장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치가 아닐까. 영어가 세계화에 꼭 필요한 도구임은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기능일 뿐이다. 영어교육이 교육의 본질이라는 배 안까지 새어들면 결국 배는 가라앉고 말 것이다.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고 가라앉게도 하는 것처럼 몰입은 깊은 성찰의 등불이 될 수도 있고 소통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 한 가지에 몰입하여 깊은 사유의 세계를 구축하면서도 그 세계에만 함몰되지 않고 소통의 숨통을 확보하는 것, 쉽지 않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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