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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를 위한 '변명'

부자에겐 있지만, 빈민에겐 없는 것

등록|2015.02.07 16:08 수정|2015.02.07 16:08
최근 갑작스레 복지와 증세 문제가 불이 붙기 시작했다. 원내대표 경선이 끝나고 유승민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서로 이야기 하는 바는 달랐다. 김무성 의원은 '복지과잉'을 언급했고, 유승민 의원은 '중부담, 중복지'를 주장했다. 물론 유승민 의원은 오늘 "제 생각 고집 않겠다"며 한 발 빼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증세와 복지 문제는 최근 정치권에 의해 크게 부각되긴 했지만, 꾸준히 이야기되어 온 주제이다. 이런 증세와 복지 문제가 나올 때마다 '자유주의'라는 아름다운 가면을 쓴 '신자유주의자'들은 항상 '복지과잉'과 '성장' 등의 그럴 듯한 말들을 섞으며 자신들 주장의 정당성을 형성시켰다.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정치 사상적인 부분에서까지 자신들의 정당성을 점점 더 굳혀나갔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근거를 내세워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정당화시키는 걸까? 하나하나 검증해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빈민에겐 없지만, 부자는 있는 자유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고 칭하는 이들이 부자증세를 통한 복지를 반대하며 항상 '재산권'을 이야기 한다. 풀어서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번 돈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것만 가지고 이야기하지면 '의무'를 들먹이며 내용을 모두 정리할 수 있으나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부자증세'이다. 그리고 이들은 '재산권'을 들먹이며, 그것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력이고 국가에 의한 합법적 '갈취'라고 말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센델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자유주의자'를 '평등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자', '복지 정책을 비판하는 자유방임주의자인 자유지상주의자' 이 두 가지로 나눈다. 이 책에서 '평등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이 목적을 추고할 수 있으려면 정부는 진정한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물질적 조건을 확보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고 되어있다.

위와 같은 마이클 센델 교수의 분법에 따르면 자유주의자를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자유주의'라는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 칭하며, 자유주의를 무조건 한 방향으로만 추구하려고 하고 있다.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일컫는 이들은 부자의 재산권은 중요히 생각하면서 정작 더욱 중요한 권리인 서민들의 생존권과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죽어가는 서민들이 있음에도 '재산권'이 먼저이고 '실업', '병이 있어도 돈이 없는 것', '재산, 소득 없이 늙어가는 것' 등의 '사회적 위험'에 빠져있는 이들이 있음에도 그들에게는 오직 '부유층의 재산권'만이 존재한다. 돈으로 사람을 죽여가는 '사회적 살인'을 '자유주의'라는 아름다운 장막 아래서 저지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재기업들이나 재벌들은 대부분 정부를 뒷배로 두고 클 수 있었다. 정부는 해외나 한국은행에서 빌려 만든 투자재원을 대기업들에게 나누어주었고, '8.3 긴급조치'를 통해 사채동결을 하면서 기업과 사채권자의 채권채무관계를 즉각 무효화하였으며, 한국은행에서 돈을 빌려 유통시키면서 물가인상을 발생시켜 국민을 착취하고 금융기관과 대기업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기도 했다. 대기업은 이렇게 군사독재정권 시절 커왔으며, 이제 그렇게 커온 것을 기반으로 사실상 한국경제의 중심에 서있다. 또, 민주화 이후에는 '돈'을 통해 정치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 국가는 재벌이 회사를 잘못 운영해 망할 위기에 쳐해도 국민경제를 위해 회사를 살려주어야 하는 왔다. 만약 재벌그룹들이 망하게 되면 수많은 협력업체와 자금을 대출한 금융기관이 무너지고 그 회사에서 일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한순간에 거리로 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재벌 입장에서는 위험한 투자를 해서 돈을 벌면 자기 것이 되고 방만한 경영을 해서 문제가 생기면 국가와 국민에게 짐을 떠 넘길 수 있다. (중략) 재벌 대기업은 보험료 한 푼 내지 않으면서도 국가를 파산에 대비한 최후의 보험자로 써먹는 것이다. -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돌베개) 157p

위와 같이 대기업들이 국가를 '최후의 보험자'로 써먹는다고 본다면 '부자증세'는 국가에 내는 일종의 '보험료'라고 볼 수 있게 된다. 정당성 하나를 더 얻게 되는 것이다. 이 관점대로라면 '자유'라는 측면에서도 걸리지 않으며, 국가가 '강탈'을 한 것도 아닌 것이 된다.

나태한 빈민들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노력'을 강조하며 부자들은 어릴 때는 공부를 열심히하고, 빈민들은 나태하고 게으르기에 가난한데 이들에게 복지를 해주게 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논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좀 예전 일이라고 생각될 지 모르겠지만 멀지 않은 과거, 1988년 7월 문송면(당시 15)이라는 청소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집이 간나해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혼자 서울로 올라와 영등포구 양평동 공장에 취직해 온도계에 수은을 넣는 일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수은에 중독이 되어 몸이 마비되고, 얼마 뒤 사망한 것이다. '문송면' 군은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그리고 빈민이었다. 하지만 과연 문 군은 나태했는가?

▲ 1988년 7월 18일, 문송면 군의 장례식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 ⓒ 경향신문 jpg


저들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사회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가정환경이 어떻든 교육이나 기회가 평등이 적용되는 사회가 되어야 하고 부모의 '뒷배'를 통해 잘 되는 이들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이러한 기준이 성립될 수 있을까? 아직도 많은 대기업에서 세습이 이뤄지는 사회,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는 사회에서 '나태한 빈민들'이라는 말이 성립될까? '그들'의 논리는 스포츠카와 사람이 경주를 하는데 사람이 졌다고 '나태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복지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일어난다는 것은 현실적인 측면보다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 크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복지국가라고 부르는 국가를 보면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기 보다는 사람들이 여유가 있다보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기개발을 하는 등의 생산적인 일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것을 보면,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복지는 도덕적 해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생산적인 일을 하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복지과잉?

처음에서 언급했듯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복지과잉'을 언급하며,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지고, 나태가 만연하면 부정부패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김무성 대표에게 "지금 우리 복지가 국민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만큼 높은 수준인가", " 그리고 복지 과잉으로 나태해진 국민은 도대체 누굴 지칭하는가"라고 묻고 싶다며 "한국의 복지 현실에 비춰보면 김 대표의 주장은 황당할 뿐"이라고 김 대표의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 대한민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은 10.4%로 OECD 28개 국가 중 꼴지인 28위에 머물러 있으며 OECD 평균인 21.6%보다 2배 이상 낮았다. ⓒ YTN 갈무리


<한겨레>가 김무성 대표에게 던지고 싶어했던 질문 중 "지금 우리 복지가 국민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만큼 높은 수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OECD 자료 통계를 보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2014년 OECD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조사국 28개 중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10.4%로 28위, 그러니까 꼴지이다. 그러니까 벌써부터 '복지과잉'이라는 말을 하며 '도덕적 해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이다.

<한겨레>는 위에서 언급한 사설에서 "이런 상황('복지결핍'인 상황)에서 여당 대표가 복지 과잉론을 거론하는 것은 복지 축소를 위한 여론 호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어 "이런 소중한 기회를 제대로 살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생각은 하지 않고 얼토당토않은 복지 과잉론 따위로 분란을 일으키는 행태가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리스는 복지 때문에 위기가 왔는가

다른나라들에서는 나오지 않는 지적들이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복지에 대한 토론을 할 때나 복지에 대해 논할 때 복지축소를 지지하는 쪽에서 '그리스 위기'를 들먹이며 자신들의 이론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일보는 2010년 5월 7일 기사에서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좌파가 장기 집권하면서 비대해진 공공 부문(GDP의 40%)과 35년만 일하면 임금의 95%를 받을 수 있는 퇴직 연금에 중독된 사람들은 순순히 기득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KBS 박종훈 기자는 "확인해 본 결과 일반 국민들이 35년만 일하면 임금의 95%를 받는다는 내용은 여러 외신이나 그리스 정부 홈페이지에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며 "단지 전체 연금지출이 총임금의 95.1%라는 통계는 찾았지만 이는 매우 다른 내용이어서 이를 조선일보가 착각하고 옮겼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박 기자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와 미국의 폭스 뉴스 등 주요 언론들은 그리스에서 1992년 이전에 공무원이 된 사람의 경우 35년만 일하면 평생 임금의 80%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며 "폭스 뉴스는 지난 5월 7일 통과된 그리스 연금 개혁안으로 최고 연봉의 80% 수준이었던 연금이 60%로 줄어들게 됐다는 기사를 실었다"고 밝혔다.

박 기자에 따르면 그리스의 경제위기의 원인을 방만한 공공지출이라고 한 외신언론은 이코노미스트 뿐인데 여기서 지적하는 부분도 '공무원에 대한 과도한 연금' 등 전반적인 공공지출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국가 투명성 부분이 최하위권인 것을 지적했고, CNN은 그리스 위기의 원인이 "국민들의 조세 회피와 부유층의 부정 부패", "부유층과 권력층의 부정부패가 워낙 만연해 있어서 세금을 제대로 내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박 기자에 따르면 그리스가 국가 부도위기까지 내몰린 이유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유로화' 때문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이어 박 기자는 "단일통화 유로는 유럽에 많은 장점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경제 위기가 왔을 때는 유로존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며 "그리스가 단일 통화인 유로화를 쓰지 않고 고유의 통화를 가지고 있었다면 자국의 통화를 평가절하해 비교적 큰 고통 없이 경기 부양을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주요 외신과 한국은행은 그리스 위기의 원인으로 유로화의 근본적인 한계나 그리스의 부정 부패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지만 "유독 우리 일부 신문사들은 그리스의 복지 정책 하나만 물고 늘어진다"면서 "그리스 위기의 원인을 복지정책 하나로 단순화 시킬 경우 우리가 그리스 위기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것들을 놓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그리스가 한 실수를 우리가 반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리스 위기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치밀한 연구가 필요한데 복지정책 하나만 줄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그릇된 분석을 하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의 위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복지를 하면 성장이 저해되고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

복지 축소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흔히 "세금이 줄어들면 복지는 할 수 없지만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는 기업과 국가 전체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고 우리 사회를 성장시킬 것"이며 "세금을 올리면 복지는 할 수 있지만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이 높아지기에 이는 기업과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우리 사회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말한다.

안철수 의원은 <안철수의 생각>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북유럽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의기 이후 가장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복지의 안전망이 오히려 위기에서 경제를 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 - 안철수,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99p

▲ 안철수 의원은 2012년 대선 5달 전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 99쪽에서 "북유럽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의기 이후 가장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복지의 안전망이 오히려 위기에서 경제를 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라고 하였다. ⓒ 김겨레


'부자증세'를 해서 복지를 하는 것이 국가.기업 경쟁력 약화에 악효과를 준다고 주장하는 쪽은 국가 경쟁력과 복지 이 둘 사이의 누적적 강화, '양의 되물림' 현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경쟁력은 국민 개개인이 각자가 지닌 잠재적 능력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최대한 발휘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모든 국민들이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공감을 이루고 협동함으로써 공동체의 환경 적응력과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국가의 총체적 능력을 의미한다.

(중략)

경쟁에서 한번 실패한 어른들이 자기의 지적 자본 또는 인적 자본을 폐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일리다. 복지 정책은 이런 것을 하기 위한 수단이다. 좋은 복지 정책은 경제적 번영을 추동한다. 경제적 번영은 더 좋은 복지정책으로 가는 길을 연다. 이것이 둘 사이에 작동하는 '양의 되먹임' 현상이다. -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개) 97p ~ 99p

또 우리나라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내수로 먹고 살 수 없어서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복지를 하기 보다는 기업들에게 이득을 줘야한다고도 하지만 사실 내수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것은 아니며, 만약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와서 수출로 먹고 살기 어려워졌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내수를 돌릴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런 것 때문에 수출 뿐 아니라 내수도 세계 위기 상황에서 최대한 버틸 수 있도록 갖춰놓아야 한다고 본다.

'민주국가'에서 한 단게 발전해 '복지국가'로 차근차근

지금까지 '자유주의'의 아름다운 가면을 쓴 '그들'의 복지축소 주장에 대한 근거를 하나하나 검증을 해보았다. 지금 당장 복지국가로 가라고 하지는 않겠다. 아니, 현재 한국의 상황으로서는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잘 닦아놓고,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준비를 탄탄히 해놓길 바라는 바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블로그(http://blog.naver.com/kimkyokkr)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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