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입양? 안 낳은 걸 낳은 걸로 어찌 둔갑시키나"
[10만인리포트-입양을 인터뷰하다⑦]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전 회장 인터뷰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이 글은 김지영 시민기자가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아이 탄생의 비밀이 감춰질 수 있는 걸까? 나를 포함한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필요할까? 아이가 자라면서 숱하게 물어 올 그 태생의 문제를, 맑은 아이 눈을 쳐다보며 태연하게 둘러댈 수 있을까? 그것은 나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과연 옳은 일일까?
결정을 하는데 많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공개입양을 하기로 정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살기로 했다면 일단은 그렇게 살아보는 것이다. 경험조차 못한 어떤 두려움들을 앞서 예상하고 주저하는 미련한 바보는 되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 이미 태어나 있던 소린이는 그렇게 내 딸이 되었다.
비밀입양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 공개입양의 설 자리 좁다
▲ 한연희 한국입양홍보회 전 회장 ⓒ 김지영
비밀입양이 당연시 되었던 우리나라에서 공개입양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처음은 1999년 10월의 일이다. 한국의 고아원에서 8년을 살다 미국으로 입양되어 성장한 후 미우주항공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스티브 모리슨(59, 한국명 최석천)과 경기도 과천에서 두 아이를 공개입양해 키워 오던 한연희(57)씨의 만남이 있었다.
이어 대한사회복지회에서 명단을 제공한 공개입양부모들을 중심으로 2000년 1월 15일 첫 모임이 열렸다. 우리나라 공개입양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한국입양홍보회'의 출발이었다.
2000년 1월 첫모임을 가졌던 때, 당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입양의 빛과 그림자' 가 방송되어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방송을 통해 한국입양홍보회의 존재가 알려졌다. 그동안 공개입양을 원했지만 어떤 방향과 어떤 내용으로 아이의 상처를 치유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입양부모들이 한국입양홍보회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필자도 가입하여 회원으로 있는 이 단체는 그동안 매년 입양가족들의 전국대회와 입양아들의 캠프를 열어왔다. 그리고 각 지역단위로 소속되어 있는 입양가족들이 수시로 만나고 있으며 국내입양문화의 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공개입양에 대한 인터뷰를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 공개입양 문화의 산 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한연희씨를 인터뷰이로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우리나라 공개입양 문화의 서막을 열었던 한연희씨는 10여 년 한국입양홍보회 회장을 지냈었다. 지금은 경기도 이천에서 여주쪽으로 한참 버스를 달려야 하는 적막한 시골 마을로 귀촌해 고요한 삶을 살고 있다.
2000년 당시, 낳은 아들 하나에 입양아 둘 포함 총 세 명의 아이가 있었던 그다. 그 뒤로 10여 년에 걸쳐 입양을 한 일곱 명의 아이들과 위탁해서 함께 지내고 있는 일곱 살짜리 어린 소녀가 하나 있었다. 장성해 출가한 자식을 빼고도 그녀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아이들의 숫자는 아직 10명이나 되었다.
지난 2014년 11월 28일, 필자가 버스를 타고 방문했을 때 집은 적막하기 그지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집 안은 여전히 복닥거리고 있었다. 질문은 단문이었지만 대답은 장문의 설명으로 이어졌다. 질문만 하면 쏟아지던 입양에 대한 정보는 십 수 년 동안 현장에서 경험한 다양한 체험 사례들이었고, 그만큼의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낳지 않은 걸 낳은 걸로 둔갑시킬 수 있나"
1990년에 처음 입양을 시작했던 한연희씨의 공개입양 동기는 간결하고 단호했다.
"제가 처음 입양을 했을 때 입양사실을 비밀로 한다는 게 황당하게 느껴졌어요. 어떻게 낳지 않은 걸 낳은 걸로 둔갑시킬 수 있을까, 하고요. 당시에 입양기관에서는 전부 비밀입양을 권장하는 거예요.
비밀로 해야 된다, 그게 저는 황당하게 들렸어요. 한 개인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느냐, 라는 의문이죠. 그리고 제가 입양하려고 하는 애는 한 눈에도 외모가 너무 다르고 어떻게 해도 그거를 감출 수가 없는데 그걸 바꾼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죠."
그로부터 2년 뒤 한국입양홍보회를 만들면서 한씨의 공개입양에 대한 생각은 한 걸음 더 진전을 하게 된다. 공개입양 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직접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외국자료를 많이 읽어봤어요. 그랬더니 거기에 공개입양의 장점이라든지 왜 공개입양을 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다 나와 있더라고요. 그 중에 제가 매료됐던 거는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부모가 다 잘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이들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그게 집착일 수도 있고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데 비밀입양은 그게 드러나질 않잖아요.
최소한 공개입양을 해야 학자들이나 누가 밀착을 해서 어떤 오류가 있으면 수정하거나 반복이 안 되도록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아이들을 키워보니까 어려운 순간도 있지만 상당히 많이 바뀌더라는 거죠.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없을 만큼의 변화와 성장과정을 보면서 이거는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졌어요."
외국자료 뿐 아니라 한국입양홍보회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외국의 입양부모들에 대해 한씨의 소회를 들어보자.
"외국에서 온 입양부모들을 여럿 만났어요. 만나면서 정서라든가 모든 면에서 상당히 흡사했어요. 그러니까 아이의 과거에 대해서 얘기 하려면 울컥울컥 하는 거 그런 것도 굉장히 많이 닮고 사회에서 이 아이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똑같았어요. 그래서 아이 얘기 할 때 함께 눈물 흘리고 끌어안고 울고 그랬어요. 얼굴만 다르고 말이 다를 뿐이지 금방 친밀감을 느끼는 거 있잖아요."
여기서 한 가지 외국과 다른 공개입양의 개념에 대해 미리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공개입양은 단어는 같지만 의미는 달라요. 미국이나 서구에서는 친생부모와 접촉이 있느냐 없느냐로 의미를 두는 거죠. 접촉이 있으면 공개고 없으면 비밀인 셈이죠. 우리나라는 입양부모와 입양아에게 사실을 알리면 공개인 거지만 외국은 그거는 기정사실로 하고 가는 거죠."
외국의 비밀입양은 우리나라의 비밀입양과 많이 다르다
▲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전 회장 ⓒ 김지영
다음은 그와 나누었던 일문일답의 요지이다.
- 그럼 외국에도 비밀입양이 있나요?
"비밀입양 있어요. 역시 우리하고는 개념이 다르긴 하지만 프랑스 같은 경우도 미혼모들이 자기 신분이 드러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익명출산을 보장해요. 법 테두리 안에서 미혼모의 신분을 묻지 않는 거죠. 미혼모가 원치 않으면 그게 익명입양에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비밀은 출생자체를 뒤엎는 건데 외국에서는 그건 거의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죠."
- 입양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공개 입양한 부모들을 만나면 왜 굳이 그렇게까지 반복적으로 아이한테 입양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상처를 주느냐고 말을 하거든요?
"출생과 관련된 정보를 사실상 왜곡하는 건데 이건 당사자에게 가장 큰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입양당사자가 성인이 돼서 비밀입양이 노출될 경우 한결같은 첫 번째 반응이 '왜 나를 속였냐'에요. 문헌을 보면 80대에 알아도 똑같은 분노가 있다는 거예요. 입양된 사실을 80대 나이에 알아도 그렇다는 거죠.
노년에는 자기 인생을 반추하면서 정리하고 이제 잘 가야 할 일만 남았는데, 여태까지 산 인생이 가짜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마무리를 못하는 거예요. 언제 말해야 될지를 우리가 정확하게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전제가 입양 되었다고 말할 때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마라는 거예요. 아무 것도 건질게 없다는 거죠.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거로는."
- 십 수 년 활동 하시는 동안 알게 된 비밀입양 사례들이 있을 건데요?
"비밀입양을 한 아버지가 찾아 온 적이 있어요. 아이 때는 잘 컸는데 문제는 커지면서 외형이 부모랑 완전히 달라진 거예요. 사람들이 볼 때마다 너는 누구랑 닮은 거야? 주워온 거 아냐? 그러니까 가족사진 찍는 걸 싫어하고 가족끼리 있는 걸 너무 싫어하는 거예요. 사는 데는 아무 지장 없어요. 직업이 의사거든요. 아이가 지금 모르고 있는데도 우리를 피하는데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래가지고 어떻게도 못하고 꼼짝도 못하는 경우를 봤어요.
또 한 사례는, 이 아버지가 남매를 입양했어요. 근데 아들한테는 여동생을 입양할 때 아빠가 밖에서 낳았다고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사고가 난 거예요. 그래서 수혈을 하려고 갔다가 혈액형이 다른 걸 알게 되었어요. 결국 아버지는 그 사고로 돌아가시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됐죠. 딸은 가출을 해버리고, 아들은 자기가 유린당한 거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어요. 가장 큰 문제가 그거죠. 얘기 했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나를 그렇게도 못 믿었냐는…."
다른 이런 예도 있었다. 한창 사춘기인 중학교 3학년 때 엄마와 싸우다가 입양사실을 듣게 되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에 가서 왜 살아계실 때 말해주지 않았냐고 통곡을 하며 울었다. 그리고는 친구들한테 내가 사실은 입양된 아이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그랬다. "너 진짜 몰랐어?"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연희씨가 들려 준 비밀입양이 드러난 사례들은 그 뒤로도 한참동안 이어졌다. 비밀입양이 끝까지 숨겨지는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드러나서 나타나는 후과를 보면 끝까지 입양사실을 감추는 동안 당사자들이 겪어야 했을 마음의 고통과 혼란은 어쩌면 공개입양보다 훨씬 더 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락없는 호수 위의 백조다. 잔잔한 물위에 떠 있기 위해 물밑으로 쉬지 않고 버둥대야 하는 발처럼 마음이 그럴 수 있음이다.
- 지금까지 공개입양 활동도 많이 하시고 또 직접 아이들도 많이 입양해서 키워 보셨는데요. 성공적으로 공개입양을 잘 해 온 사례의 경우 통상 몇 세부터 입양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해야 하나요?
"어차피 학령 전기는 이야기를 해도 온전하게 인식을 못해요. 엄마가 이야기하면 그런가보다 좋은 건가 보다 그렇게 알아듣는 거죠. 그래도 이야기를 해야죠. 입양이라는 말을 불쑥 들이미는 것보다는 이해를 완전하게 못해도 어렸을 때부터 귀에 박히면 자연스럽잖아요. 그러다가 7·8세쯤 되면 아이들이 생모에 대해서 구체적인 질문들을 합니다.
오히려 사춘기 쯤 되면 그 때는 생모가 나타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실질적으로 자기를 데려가거나, 낳아 준 부모가 부자여서 내가 다른 처지가 되는 환상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15세 정도가 되면 그 때야 입양이 영구적인 가족관계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요. 이 과정을 다 거쳐야지만 아이들이 안정권에 들어가는 거예요."
- 초등학교 1·2학년 때가 아이들이 호기심을 증폭하는 시기라는 거죠?
"두 가지가 나타나는데 하나는 만나고 싶다든지 찾아달라든지 그런 적극적인 애가 있고 다른 경우는 아예 얘기를 꺼내지 못하도록 입양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우는 얘가 실제로는 내가 생모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든가 좋은 말을 하면 이 엄마가 슬퍼하거나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염려가 더 많은 거죠.
그런데 그런 이야기 꺼내기를 어려워하는 부모님들은 '우리 애가 원하지 않으니까 난 하지 않을 거야'라고 바로 협상을 해버리는 거죠. 그러면 애는 나중에 몰래 입양기관에 가서 뿌리 찾기를 시도하고 그러는 거예요. 생모에 대한 욕구는 발현이 되든 안 되든 아주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공개입양 그러면 뭐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게 아니고 또래집단이나 소속된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하고 잘 어울려서 생활을 하고 있느냐. 여기에 기준을 두는 거죠. 얼마나 건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입양된 걸 잘 소화해서 더 이상 그게 자신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지 등을 의미하는 거죠."
부모한테 다 못 하는 말... 완충작용할 지지집단 필요하다
- 그 정도의 정체성을 가지는데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을 건데요. 물론 부모와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지만 또 다른 중요한 조건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입양아동은 뭔가 완충작용을 할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부모한테 100% 말한다는 건 거짓말이거든요. 부모한테 다 말 못해요. 아무리 관계가 좋아도. 왜냐하면 속상할까봐, 마음 상할까봐.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죠. 그래서 완충작용을 할 만한 대상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저는 또래집단이라든가 입양아동 그룹이라든가 이런 걸 지어주면 그게 가장 작용을 많이 하더라고요.
외국도 그런 걸 많이 해요. 제가 한국입양홍보회에서 활동할 때 계속 프로그램을 했잖아요. 하면서 느끼는 거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보면 어떤 알맹이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냥 지들끼리 상호작용을 막 하는 거예요. 애들이 서로 관계할 수 있도록 장만 만들어주면 되는 거죠. 오히려 안 건드리는 게 더 잘 크더라는 거죠."
- 공개입양아 인터뷰를 했는데, 걔도 입양모임을 가서 만나는 친구들은 처음 봐도 금방 친해지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친구들하고는 또 다른 어떤 마음의 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긴장을 안 하는 거죠. 같은 처지니까. 관련 책에서도 그런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고 얘기를 해요.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관계를 맺어줘야지 커서 진짜 필요할 때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왜냐면 사춘기가 되면 프로그램 보고 가는 애는 없어요. 나하고 친밀한 사람이 가야 온다는 거죠. 어렸을 때부터 계속 관계를 맺어야 가능한 거지 갑자기 들어가려면 낯선 거죠. 그래서 이 모임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게 지지집단이거든요."
- 공개입양 가족들은 어떤 형식이든 공개입양 가족들끼리의 모임을 가져서 그 안에서 아이들끼리 교감하게 하고 본인들도 서로 교감하는 그런 장이 필요하겠네요?
"그게 아주 필수에요. 그런데 입양 부모님들이 어릴 때는 왔다갔다 자주 하는데 초등학교 들어가고 고학년이 되면 아예 발길을 끊는 경우가 많아요. 애하고 문제가 없으니까 이제 됐다고 생각하는 거죠. 근데 사실은 그 때가 더 중요하거든요. 아이들끼리 상호작용을 본격적으로 할 나이거든요."
- 초등학교 1~2학년 때 생모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을 하다 그게 사춘기 때는 오히려 안정이 된다고 하셨잖아요?
"안정이 되는데도 그런 궁금증들 있잖아요. 생모를 만나도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들이 있거든요. 현재는 어떻게 지낼까? 아픈 건 아닐까? 죽은 건 아닐까? 이런 궁금증이 생기거든요. 근데 그거를 누구랑 이야기 하겠어요. 입양부모가 해줄 수 없는 범위죠. 그거를 또래들끼리 해결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연애를 하게 됐는데 상대방한테 입양사실을 얘기해 줘야 좋을지 주춤하거든요. 그런 미묘한 문제들을 또래 집단하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나누면 훨씬 더 친밀감 있고 안정적인 공유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모가 뒤로 빠지잖아요. 이제 다른 사람들하고 통합이 되는 거죠."
- 요즘도 비밀입양은 여전히 공개입양과 비등하게 존재하거든요. 왜 비밀입양이 계속해서 선호 된다고 생각하세요?
"일단은 설명하기 너무 복잡하잖아요. 입양을 하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의 반대, 갈등 같은 거죠. 우리나라의 특성도 있고. 그런 게 일단은 나도 해야 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두려운데 주변 사람들 설득하는 거 자체가 너무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비밀로 하면 문제가 간단하게 보이는 거죠. 설명 안 해도 되고.
(아이가) 사랑스러우면 사랑스러울수록 비밀입양에 대한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해요. 공개입양을 했다가도 철회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정말 사랑스럽고 소중한데 이 아이의 출생 비밀이 우리 자녀로서의 어떤 결함으로 작용할까봐. 그래서 돌아서는 분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나중에 후회하는 분들도 또 많죠."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물었다.
- 지난 8년을 공개입양가족으로 살아오면서 답답한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럴 때마다 이 나라 입양문화가 좀 더 긍정적인 쪽으로 언제쯤 변화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절망감이 있었거든요.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국이나 서구사회도 과거에는 우리나라처럼 혈연중심 사고에 익숙한 사회였죠. 입양에 대해서 열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미국에서서 1970년대 초반에 굉장히 다양한 가정형태가 발생을 하면서 수용이 된 거에요. 거기도 원래 전통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다양한 가정형태가 생기면서 생각이 달라진 거죠. 근데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 상태라고 봐요. 다른 종류의 가정형태가 엄청나게 많아지면서 급격하게 바뀔 거라고 보는 거죠."
나는 막연한 절망감을 말했는데, 그는 자신의 경험과 수없이 많은 자료를 공부하면서 얻은 구체적인 희망을 말했다.
"지금 다문화 가정 비율이 점점 늘고 있어요. 언젠가 다문화 국가로 인정을 해야 되는 상황인거죠. 근데 우리 아들이 서른 한 살짜리가 있어요. 그 다음에 스물네 살, 스물세 살, 쭈르륵 있잖아요. 얘들이 1990년, 2000년, 2010년대를 살면서 성인이 된 거잖아요.
이 아이들의 고백은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이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 차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해요. 서른 한 살짜리는 자기가 오히려 대우를 받았으면 받았지 불이익을 받은 적이 없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요. 우리들 세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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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글을 읽고 공개입양에 대한 의미가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셨다면 이전 연재기사 "가짜엄마랑 산다는 놀림...소녀는 이렇게 말했다"(http://goo.gl/pgqJBa)를 다시 일독해 보시길 권합니다. 열일곱 소녀 하은이의 입양을 통한 성장 과정이 훨씬 더 수월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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