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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랑하기까지, 뮤지컬 <원스>

[박소연의 문화공감] 무대로 연주하는 <원스>

등록|2015.02.09 11:30 수정|2015.02.09 11:31
그들은 음악으로 서로를 구원한다. 남자는 기약 없는 음반계약을 꿈꾸며 낮에는 청소기 수리공으로, 밤에는 거리의 음악가로 살아간다. 고향에는 남편이, 집에는 돌봐야 할 노모와 아이가 있는 여자에게 애초부터 사랑을 나눌 여유 따위는 존재할 수 없었다. 다만 음악만이 그들 사이에 놓여 있었을 뿐이다. 그들에게 음악은 지난한 삶에 대한 위안이자 쉬이 놔버릴 수 없는 머나먼 꿈이었다. 그리고 사랑이었다.

▲ 가이(윤도현 분)와 걸(전미도 분)은 원작보다 한층 더 밝고 적극적이며 명랑해졌다.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불렀던 ‘Falling Slowly’의 여운은 원작과는 사뭇 다르면서도 같았다. ⓒ 신시컴퍼니


음악 빼고는 풀어낼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무대 위로 가져 온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드라마틱한 서사나 극적 멜로는 둘째치더라도 이렇다 할 대사조차도 거의 없는, 음악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의 감성을 무대로 입체화하기엔 무리일 거란 생각에서였다.

딸의 저금통을 털어 건전지를 사가지고 오는 길에 부르던 '이프 유 원트 미(If you want me)'의 롱테이크 장면이나 "아이 러브 유(I love you)"도 아닌 "뮐루에 떼베(Miluju tebe)"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심경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원작 영화와는 다른 느낌의 감동을 선사하는 뮤지컬

우려와는 달리 극은 원작과는 다른 느낌의 감동을 선보였다. 세트는 대학가 어디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생맥주집이 전부지만, 전면에 액자처럼 걸려있는 크고 작은 거울을 통해 반사된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실제 거리공연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것이 공연 전 진행되는 프리 쇼의 여운 때문인지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며 자아내는 여흥 탓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음악 속 숨어있던 가이(Guy)와 걸(Girl)의 세밀한 감정선은 무리 없이 무대에 투영된다.

▲ 가이와 걸의 이야기를 큰 줄기로 악기점 주인이나 패스트푸드점 매니저, 은행원 등의 사연이 함께 녹아들면서 만들어지는 앙상블의 조화도 인상적이다. ⓒ 신시컴퍼니


캐릭터는 풍성해졌다. 가이와 걸은 원작보다 한층 더 밝고 적극적이며 명랑해졌다. 원작 팬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다. 체코 이민자인 걸이 처한 현실적 여건을 외국인 특유의 한국어 억양으로 시종일관 드러낸 부분이나,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윤도현의 연기가 자칫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원작의 가이드라인인 것처럼 둘의 정황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듯한 대목도 간혹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음악으로 그 모든 아쉬움은 상쇄된다.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불렀던 '폴링 슬로우리(Falling Slowly)'의 여운은 원작과는 사뭇 다르면서도 같았다. 둘의 이야기를 큰 줄기로 악기점 주인이나 패스트푸드점 매니저, 은행원 등의 사연이 함께 녹아들면서 만들어지는 앙상블의 조화도 인상적이다. 음악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만큼 듣는 즐거움이 시각적 화려함을 대신했다.

극의 결말 역시 반전은 없었다. 피아노를 살 형편이 되지 않는 여자와 불투명한 미래를 그만 놓아버리려 하는 남자가 함께 할 수 있는 거라곤 다만, "난 당신을 모르기에 더더욱 당신을 원한"다는 노래뿐이다.

그러니 부디 이들의 무대에서 죽음만이 갈라놓을 수 있는 사랑이야기나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기대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단지 이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일 준비가 됐다면, 그것으로 한 조각 조그만 위로를 건네받고 싶다면 이들을 찾아가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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