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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왜 독자가 아닌 이완구에게 '사과'했나

[시시비비] 이완구 녹취록 공개 파문, 그리고 <한국일보>의 헛발질

등록|2015.02.11 12:37 수정|2015.02.11 13:53
'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서중(성공회대 교수),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은규(우석대 교수), 김택수(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신태섭(동의대 교수),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완기(민언련 상임대표), 이용마(MBC 기자), 정연우(세명대 교수), 김은규(우석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말

10일 새벽 <한국일보> 1면에 실린 <이완구 총리후보 녹취록 공개파문 관련 본보 입장>이라는 사고(社告)를 보며, 나는 정말 몇 번이나 눈을 비볐고, 몇 번이나 탄식했는지 모른다.

전날(9일) <한국일보>의 입장을 촉구하는 언론시민단체들의 강한 비판이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한국일보>가 입장을 발표한 것은 반가웠다. 게다가 이완구 총리 후보의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날이었기에 이 사고의 의미는 각별했다. 하지만 사고의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한국일보>의 사고를 짚어가며 생각해보자.

이해가 안 되는 <한국일보>의 보도 '보류'

"점심 식사 당시 본보 기자를 포함해 일부 기자들은 이 후보자의 발언을 녹음했습니다. 본보는 이 후보자의 왜곡된 언론관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기사화 여부를 심각하게 검토했지만, 당시 그가 차남 병역면제 의혹에 대해 매우 흥분된 상태였고 비공식석상에서 나온 즉흥적 발언이었다고 판단해 보도를 보류했습니다."

최근 <한국일보>는 보수신문 속에서 비교적 정론을 펴는 신문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정말 <한국일보> 데스크가 이번 사안을 '단순히 흥분된 상태의 즉흥적 발언'이므로 덮고 가자고 판단했다면, 이는 매우 치명적인 실수라고 생각된다.

10일 <미디어스> 기사에 실린 한국일보 고재학 편집국장의 정황 설명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 고 편집국장은 "녹취록을 보면 이완구 후보자의 문제 발언은 맨 뒤에 스치듯 언급된다"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임에는 틀림없고 보시는 분들께서도 '왜 보도를 안 했을까' 느끼실 수 있겠으나, 앞뒤 과정과 상황, 배경, 맥락을 놓고 보면 이해해주실 거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고 편집국장은 "4명의 기자들이 나중에 녹취록을 놓고 '기사화 할 것이냐'라는 이야기를 나눴고, 정황상 무리라고 판단해 안 쓰기로 한 것"이라며 "국회 반장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라고 밝혔다.

안타깝게도 나는 앞뒤 과정과 상황, 맥락을 다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후보는 언론인이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내용을 보도한다면, 자기가 죽는 것도 모른 채 죽을 수 있다고 협박한 것이다.

게다가 10일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추가로 공개된 녹취록에서는 자신이 그동안 막아온 김영란 법을 통과시키겠다며 "당해봐. 이것들 웃기는 놈들 아니여 이거. 지들(언론인들도) 아마 검경에 불려 다니면 막 소리지를 거야. 하자 이거야. 해보자"고 겁박했다.

이는 총리 후보를 떠나서 국회의원으로서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몰상식한 행동이며, 특히 법을 만드는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이 법으로 언론인을 회유 또는 협박하려 들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정론지를 표방하는 <한국일보>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가다. 언론사 편집국장이 어떻게 이런 내용을 듣고 침묵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그런 이들을 어떻게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신들이 '중도가치를 지향하는 정론지'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게다가 <한국일보>는 독자에게 자신들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에 대한 사과가 아닌 엉뚱한 사과를 하고 있다. 

대화 녹취가 불법? 대화 참여자 녹취는 불법 아니다

이완구 청문회장에 쏠린 눈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언론 외압' 등 그간 제기됐던 의혹들에 대해 사과했다. 이 후보자가 청문회장에 쏠린 수많은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다. ⓒ 남소연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의 언론관에 대한 추궁을 준비하고 있던 김 의원실측에선 녹음 파일을 요구했으며, 본보 기자는 취재 윤리에 대해 별다른 고민 없이 파일을 제공했습니다. …경위가 무엇이든, 취재내용이 담긴 파일을 통째로 상대방 정당에게 제공한 점은 취재윤리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

당사자 동의 없이 발언내용을 녹음한 것 또한 부적절했습니다. … 본보는 이번 사태가 취재 윤리에 반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보고 관련자들에게 엄중 책임을 묻는 한편,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한국일보>는 기자 개인의 일탈행위로 보고 취재윤리 운운하며 해당 기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가 지적한 "당사자 동의 없이 발언 내용을 녹음한 것"은 불법 행위가 아니다. 통신비밀보호법상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자가 녹취를 한 행위는 불법이나, 대화에 참여한 자가 다른 자들에게 숨기고 녹취를 한 것은 불법이 아니다.

취재윤리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억지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실천요강 2조(취재준칙) 5항(도청 및 비밀촬영 금지)에 "기자는 개인의 전화도청이나 비밀 촬영 등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라고 규정되어 있지만, 이 조항을 언론의 집중 검증을 받고 있는 총리 후보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2조 1항(신분사칭, 위장 및 문서반출 금지)의 경우에도 단서조항으로 "다만 공익을 위해 부득이 필요한 경우와 다른 수단을 통해 취재할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정당화될 수 있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이번 사안은 공익을 위해서 반드시 밝혀져야 할 문제이며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되어야 하는 측면이 크다. 따라서 무리하게 2조 취재준칙 위반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한국일보>는 또한 녹취록을 김 의원에게 전달한 행위를 문제 삼았다. 신문윤리실천요강 14조(정보의 부당이용 금지)에는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본인, 친인척 또는 기타 지인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거나 다른 개인이나 기관에 넘겨서는 안 된다"고 적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주식 및 증권정보, 부동산 정보 등을 사적으로 부당하게 이용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조항이지, "취재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무조건 다른 개인이나 기관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도리어 기자윤리를 어긴 것은 이 보도를 보류시킨 당사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이완구 후보가 총리가 된다면, 우리 언론은?

"다만 애초 이 후보자의 발언을 보도하지 않은 것이 이 후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반대로 관련 내용을 야당에 전달한 것 역시 이 후보자를 의도적으로 흠집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한국일보>의 이런 표현은 이번 녹취와 녹취록 전달이 "별다른 고민 없는" 일개 기자의 "취재윤리에 반한" 행동이며, 그를 엄중히 문책하겠으니 "이 후보자를 흠집 내기 위한 것이 아님"을 믿어달라는, 누군가를 향한 깊은 사과문으로 느껴진다. 답답한 일이다. 혹여 이 사고가 여당의 항의에 대한 사과이거나, <조선일보> 사설과 종편에서 쏟아내는 '기자윤리 프레임'에 대한 변명이라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이번 사안은 한 총리 후보의 부적격보다 한국 위정자의 썩어 문드러진 언론관과 이에 굴종하는 언론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더 위중한 일이다. 만약 이완구 후보자가 총리가 된다면 우리 언론의 앞날은 참담하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유지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언론시민단체들은 총리 인준을 막아내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한편 <한국일보>에는 정론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는 '참언론인'이 많다. <한국일보>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한국일보> 내부의 양심적 언론인들에게 희망을 건다. 먼저 내부에서 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일보> 사측은 이번 사안의 본질을 직시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민언련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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