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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자랑한 일자리 50만개의 진실

[노동시간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들 ⑥] 불안정한 노동시간

등록|2015.02.13 17:55 수정|2015.02.13 17:55
1980년대 민중가요 중에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자'라는 노랫말이 있다. 그 사랑의 대상은 '민주'였다. 이 노래의 제목은 '너를 부르마'이다. 너를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란다. 이 노랫말 속의 '너'는 사랑하는 이가 아니라 '민주'다. 민주화의 열망을 사랑으로 묘사한 서정적이면서도 뜨거운 노래로 기억하고 있다.

잊혀졌던 이 노래가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지난 1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TV로 시청하면서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경제'를 무려 42번이나 불렀다. 경제를 그토록 부르짖을 정도라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랑은 경제다. 80년대 민주에 대한 지독한 사랑앓이에 비한다면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사랑은 '썸 타는 사이'로 발전한 듯하다.

일자리 50만개 창출의 비법

▲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만 목 놓아 부르짖은 것만이 아니다. "12년 만에 50여만 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라며 가시적인 성과도 발표했다. 지난 2013년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한 이래 일자리는 꾸준히 늘어났다. 2014년 5월 기준으로 OECD 기준 우리나라 고용률은 65.6%로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경제와의 핑크빛 관계를 대놓고 자랑할 만한 수치다.

이쯤 되면 정부가 '고용률 70% 로드맵'에서 목표를 내건 2017년까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93만 개를 새로 창출해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은 허황된 것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목표는 일자리 창출과 함께 노동시간을 1800시간으로 단축하겠다는 계획도 제출했다.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뿐만 아니라 고용률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박근혜 정부의 50만개 일자리 창출의 비법은 '콩 한 알을 두 쪽으로 나누기'다. 풀타임 정규직 일자리를 반으로 쪼개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이렇게 늘어난 시간제 일자리는 박근혜 정부의 청사진에서는 '양질의' 혹은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로 제시되었다.

시간제와 정규직이라는 모순적인 표현이 함께 붙을 수 있는 논리는 첫째 고용이 안정되고 둘째 임금, 복리후생 등 근로조건이 정규직과 차별이 없는 일자리라는 정의에서 나온다. 여기에 덧붙여 시간제 일자리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는가 여부와 지속근무 가능, 그리고 공적연금과 고용보험 제공, 시간당 임금이 정규직의 70% 이상인 경우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반쪽짜리 콩 때문에 여전히 배고픈 '나쁜 일자리'의 증가로 나타났다. 이는 단지 시간제 일자리의 증가뿐만 아니라 '파트타임'이라는 노동시간 형태가 불안정한 일자리를 더욱 파편화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계약기간상의 구별은 이제 하루 노동시간 단위를 분할하면서 풀타임과 4시간, 5시간 등 여러 시간대의 파트타임으로 재분할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간을 쪼개면서 기묘하게 노동시간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꼼수가 늘어나고 있다. 

[사례 1] "선생님이 꿈인 송재임(22세)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 학기를 휴학하고 스테이크로 유명한 외식 프랜차이즈에 3개월 동안 일했다. 그녀는 시급 5500원을 받고 오전 11시부터 밤 9~10시까지 일했다. 외식업 특성상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은 손님이 몰리는 피크타임이라 오전파트타임과 오후파트타임만 일하는 알바생들과 함께 일했다.

'알바생'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휴학생은 그녀 혼자였다. 나머지는 모두 학교를 졸업한 언니, 오빠들이었다. 알바 경험이 많고 투잡을 뛰는 언니는 자기 직업을 '알바원'이라고 말했다. 교직원이나 상담원이 있으면 알바원도 있는 거라며. 오전근무는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했다. 본격적으로 저녁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1시간 정도 쉬거나 바쁘지 않으면 2~3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보통 하루에 2시간 정도는 쉴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점심과 저녁 사이의 쉬는 시간은 시급에서 제외되었다. 그날그날 손님들이 드나드는 정도에 따라 쉬는 시간이 정해졌기 때문에 매일의 일당이 달랐다. 그제야 재임은 왜 언니 오빠들이 풀타임이 아니라 파트타임으로 일하는지 알았다."

현대경제연구원 추계에 따르면, 2012년 시간제 일자리 182.6만 개 중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6만 개로 시간제 일자리 중에서 고작 3.3%만이 양질의 일자리에 불과하다. 시간제 일자리는 2008년부터 급격하기 늘기 시작하면서 연평균 10.4% 경이적인(?)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간제 일자리는 어떻게 늘어나게 되었을까? 2008년 이후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중이 33.8%에서 33.3%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제 일자리는 10.4%로 급등세를 지속했다.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면서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했다. 무능력한 정부와 약탈적인 자본의 합작으로 만들어낸 50만 개 일자리 창출의 성공담은 그나마 있던 불안정한 일자리를 쪼개고 왜곡시켜서 만들어낸 기형적인 일자리인 셈이다.

여성노동, '아내'가 아니라 '가장'의 노동이다

▲ 사진은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계산대 모습. ⓒ 연합뉴스


애초에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시간제 일자리는 20~40대의 기혼여성들로 임신과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노동인력을 적극적으로 시장에 다시 진입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실제 네덜란드나 독일 등 고용률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국가들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려고 했을 때 정부는 남성가장 1인이 가계수입을 부담하는 모델에서 남성 전일제 1+시간제 여성 0.5로의 변화를 통해 1.5 모델로의 이행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1.5 모델을 통한 박근혜 정부의 메시지는 이렇다.

'남성 1인이 부양을 책임질 수 있는 사회는 지나갔다. 이제는 여성도 적극적으로 가정의 수익에 보탬이 될 수 있는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바라는 여성은 전업주부가 아니라 일과 가정 모두를 손에 쥘 수 있는 능력자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직장에서는 대충 오전시간이나 때우고 가는 알바생이고, 집에서는 뼈 빠지게 고생하는 남편에 비해 반찬값이나 벌러 다니는 존재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기혼여성들은 육아와 가사노동에 더해 파트타임으로 나서지 않으면 염치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사례 2] "홈쇼핑 콜센터에서 오전 9시에서 오후 1시까지 일하는 김미영씨(39세)는 남편 등에 떠밀려서 일을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이 술에 취해 퇴근해서 한다는 말이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집에서 팽팽 노느냐'고 타박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아이가 어린데 어떻게 직장을 구하느냐고 따졌더니, 시간제 일자리라도 알아보라며 쏘아붙였다.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혼자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싶었다. 콜센터에서는 4시간 일하고 80만 원을 받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시어머니에게 하루 3시간씩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하며 드린 용돈을 합하면 75만 원이 된다. 그래도 미영씨는 콜센터에 계속 다닐 생각이다. 남편이나 시어미니에게 밥 축낸다는 소리는 듣기 싫기 때문이다."

'더' 나쁜 고용, 불안정한 장시간 노동의 귀환

시간제 일자리가 남성보다는 여성의 비중이 높고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정부의 의도대로 남편이 있는 기혼여성보다는 이혼이나 사별 여성의 비중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애초에 안정적인 가계수입의 보충을 위한 0.5는 남성이 부양자라는 전제로 설계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성가장의 빈곤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학력이 낮을수록 시간제 노동자의 비중이 높고, 청년 취업자 수에 비해 50~60대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더욱더 늘어났다. 시간제 노동자를 채용하는 사업체 규모도 30인 이하 사업장이 84.5%를 차지하고 있고, 산업별 비중 역시 자영업자가 많은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이 30%를 차지하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가 전반적인 고용의 질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강력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고용의 질이 악화되고 있는데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한 여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2012년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시간제 일자리에 근무하게 된 것이 자발적 사유인가 비자발적 사유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비자발적인 사유가 56%에 달하고 있다. 이는 OECD 국가의 평균치 13.1%를 훨씬 넘는 수준이다. 이미 도처에 시간제 일자리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시간제 일자리로 일해야 하고, 하나의 일자리로는 생활비가 충당이 안 되기 때문에 투잡, 쓰리잡을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는 고용의 질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장시간노동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불안정하고 파편적인 형태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질 좋은 시간제 일자리'를 현실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기업주라면 '질 좋은 시간제 일자리' 2개 대신 파견직이나 계약직 풀타임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이러한 상황을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모른다면 구제불능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알고 있으면서 '질 좋은' '반듯한'을 주문처럼 외운다면 결국 '사랑'할 생각은 없는데 썸만 타고 내빼겠다는 희대의 난봉꾼이 된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전주희 기자는 수유너머N,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준) 회원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 2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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