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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세이] 소설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등록|2015.02.14 16:40 수정|2015.02.15 09:04

▲ <청춘의 문장들> 표지 ⓒ 마음산책

조만간 보자고 해놓고 지키지 못한 약속이 몇 개인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 갑자기 그 중 하나에 다시 카톡을 보냈다.

'조만간 보자.'

그럼 오늘 보자는 답장이 왔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났다. 치킨과 맥주를 사이에 두고 우리 세 명은 오랜만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10년도 넘게 만난 사이다. 회사 선배와 후배로서. 바짝 긴장하고 있던 신입사원이던 나와는 달리 그들은 몇 년 차 직장인의 여유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었다. 같은 팀 선배사원이면 얼마나 어렵고도 어려운 존재인가. 그런데 전혀. 왜 이러나 싶게 이들은 내게 친절한 거였다. 그렇게 이들은 점차 내게 쉽고도 쉬운 존재가 되어갔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이들과 만나면 아주 좋은 점이 있다. 말을 안 해도 된다. 웃다가 배가 아프면 화장실만 다녀오면 된다. 물론, 적절한 포인트에 추임새는 넣어줘야 한다. 이거였을까? 어쩌면 추임새를 잘 넣는 내가 마음에 들어 이들은 나와 친구가 되어준 건지도 모른다.

에너지 넘치는 사람, 본인 에너지도 전해주고...

그 중 한 명은 내가 지금껏 봤던 사람 중에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침울해져 있을 때면 번개같이 나타나 본인의 에너지를 내게도 전해주곤 했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가 미친 사람처럼 '하하하하하' 웃으면 나도 미친 것처럼 '하하하하하' 웃게 되곤 했다. 이렇게 웃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물론, 가끔은 그의 이런 넘치는 에너지가 벅차기도 했지만.

그는 한 회사에서 여러 부서를 두루 거쳤다. 원래 엔지니어는 보통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한 곳에서 붙박이 가구처럼 일을 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 사람은 달랐다. 아니다 싶으면 정열적으로 달려들어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기어코 옮겨 갔다. 그 곳에서 다시 기반을 잡았다. 어딜 가나 친구가 있었다. 본인의 성향과 적성을 아주 잘 파악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장 잘 견딜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 수 있으면 그뿐이야."

먼저 한 친구를 보내고 나와 둘이 조촐한 맥주 집으로 옮긴 뒤 한 말이었다. 견딜 수 있는 일. 견딜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그런 거였구나 싶었다. 소설가 김연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청춘의 문장들>에서였다.

성실한 직장인이던 시절, 김연수는 출근길의 직장인들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있길래, 이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는가 싶었다는 거다. 사람들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왜 하필이면 글을 써야 하는가라고.

천문학자. 기타리스트. 택시운전사. 그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었다. 이 일들은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그의 적성에 맞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문학을 하려는가? 운명이어서? 김연수는 운명 때문에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운명을 따르는 건 노예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처럼 보였기에.

그렇다면 돈 때문에? 명예를 위해서? 불멸을 위해? 사회, 문학의 쇄신을 위해? 인류를 사랑해서? 질문은 계속됐지만, 해답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고 김연수는 말했다. 그러던 1999년, 퇴근 후 소설을 쓰던 어느 날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 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 파스칼의 회심(回心)과 같은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라는 문장에 해당하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단숨에 깨달으면서 파스칼의 지복과 비슷한 감정을 잠시 느꼈다는 말이다."

김연수는 행복했다고 했다. 너무나 행복해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 소설을 쓰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소설은 그를 증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일이라면 김연수 나 자신이 완전히 소진되고도 더 소진돼도 될 것 같았다. 이런 일이라면 힘들고 어렵고 지칠수록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문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학만이 그를 견디게 하기에. 김연수는 말했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여러 모로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마음을 얼굴에 표시내는 종류의 인간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번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견딜 수 있는 일을 찾느라 여기까지 왔다

왜 문학을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견딜 수 있어서라는 소설가의 말. 행복해서 글을 쓴다는 말보다, 견딜 수 있어서 글을 쓴다는 그의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운 말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친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견딜 수 있는 일을 찾느라 여기까지 왔다는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지한 걸 싫어하는 그가 다시 '하하하하하' 웃길래 함께 '하하하하하' 웃을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본인이 1차를 계산했으면서도 2차를 내가 계산하자 너무 미안해하던 그는 들고 온 와인 한 병을 내 손에 들려줬다. 나는 0.1초도 생각하지 않고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며 와인을 건네 들었다. "맛있는 거야? 비싼 거야?" 물으며. 친구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무슨 일이든 힘이 들고 어렵다. 세상에 쉬운 일은 정말 하나도 없다. 그 어려운 일들 중 우리는 유독 하나의 일에 푹 빠지게 되곤 한다. 그 일을 계속하고 싶고, 오래도록 하고 싶다. 그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해서, 나를 살아있게 해서, 나를 증명해 줘서 그 일을 끝까지 하고 싶다. 정말은 그 일만이 나를 견디게 해서 그 일을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완전히 소진해도 전혀 아깝지 않은 일이라서. 견딜 수 있는 일이라서. 우리는 그 일을 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청춘의 문장들>(김연수/마음산책/2004년 05월 01일/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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