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저자의 원고는 편집을 거쳐 책으로 만들어지고,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도 촬영 후 상당한 정도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 편집을 한다. 편집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으므로 편집은 곧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 그렇다면 편집이란 무엇일까.
저자 변정수는 "'편집이라 부를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편집자인게 아니라 '편집자라는 정체성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 편집이다"라고 말한다. 다소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이를 좀더 쉽게 풀어보면 편집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지닌 사람이 편집자가 아니라 편집자로 살고 있는 사람이 편집자라는 말이다.
편집이란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적용하는 것도, 정해진 매뉴얼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가 보다. 타인의 정신적 소산인 텍스트와 그 의미를 다루는 일인 만큼 지식과 기술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한 걸까. 편집자로 사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저자는 편집자가 갖추어야 하는 능력으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가를 판단하는 능력, '저자가 생산한 언어기호를 시각기호로' 가공하는 능력, '상충하는 이해'를 적절히 조정하는 능력. 이러한 판단, 가공, 조정 능력으로 구성되는 것이 편집자의 '에디터십'이라는 '추상적인 정신능력'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것이 '추상적인 능력'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 배워서 익히거나 매뉴얼에 익숙해진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지식과 기술을 익히면 자격증이 주어지는 이 시대에, 저자는 배워서 익힐 수 없는 능력을 어찌 가지라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굳이 편집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중요도를 판단하고, 자신의 의도를 적절히 표현하며,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은 우리 삶에서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당장 필요한 실무적인 내용을 익히기에도 바쁜데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저자의 의도가 무엇일까.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고,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그 기본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섣불리 빨간펜을 들고 교열이라는 이름으로 저자의 원고를 당당히 훼손하는 이들에게 주는 경고는 아닐까. 글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지나쳐 글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이들에게 제대로 읽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저자의 역설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또 제대로 읽는 건 어떤 것일까. 텍스트를 읽는 동안 '텍스트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것처럼 말이다. '삶에 대한 긴장'이 있는 사람은 '텍스트에 대한 긴장'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편집자의 정체성이란 삶에 대한 태도인 것이다. '삶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이 편집자의 삶이라면, 우리네 인생도 편집자를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저자 변정수는 "'편집이라 부를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편집자인게 아니라 '편집자라는 정체성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 편집이다"라고 말한다. 다소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이를 좀더 쉽게 풀어보면 편집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지닌 사람이 편집자가 아니라 편집자로 살고 있는 사람이 편집자라는 말이다.
편집이란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적용하는 것도, 정해진 매뉴얼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가 보다. 타인의 정신적 소산인 텍스트와 그 의미를 다루는 일인 만큼 지식과 기술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한 걸까. 편집자로 사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 <편집에 정답은 없다> 표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문제는 이것이 '추상적인 능력'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 배워서 익히거나 매뉴얼에 익숙해진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지식과 기술을 익히면 자격증이 주어지는 이 시대에, 저자는 배워서 익힐 수 없는 능력을 어찌 가지라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굳이 편집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중요도를 판단하고, 자신의 의도를 적절히 표현하며,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은 우리 삶에서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당장 필요한 실무적인 내용을 익히기에도 바쁜데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저자의 의도가 무엇일까.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고,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그 기본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섣불리 빨간펜을 들고 교열이라는 이름으로 저자의 원고를 당당히 훼손하는 이들에게 주는 경고는 아닐까. 글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지나쳐 글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이들에게 제대로 읽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저자의 역설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또 제대로 읽는 건 어떤 것일까. 텍스트를 읽는 동안 '텍스트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것처럼 말이다. '삶에 대한 긴장'이 있는 사람은 '텍스트에 대한 긴장'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편집자의 정체성이란 삶에 대한 태도인 것이다. '삶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이 편집자의 삶이라면, 우리네 인생도 편집자를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