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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함에서 나온 문제집 1톤, 이렇게 썼습니다

폐지 팔아 연탄 200장 산 대구 함지고 1학년 10반 학생들, 동네 독거노인에 전달

등록|2015.02.15 14:54 수정|2015.02.15 14:55

▲ 폐지를 모으고 있는 학생들 ⓒ 김지형


입춘이 지났지만 여전히 쌀쌀하기만 한 요즘, 따뜻한 마음으로 지역 어르신들께 온정을 전한 학생들의 이야기가 화제다. 주인공은 바로 대구 북구 구암동에 위치한 함지고등학교 1학년 10반 학생들이다.

이 학생들은 이달 초 1학년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사물함을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각종 연습장, 문제집, 학습지 등을 교실 뒤에 쌓았다. 예년 같으면 뿔뿔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을 테지만 한데 모아놓으니 양이 꽤 됐다. 이것을 본 한 학생이 고물상에 팔아서 학급비로 쓰자는 제안을 했다. 담임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더 열심히 폐지를 모았다.

▲ 다른 반 교실까지 찾아가 폐지를 모으는 1학년 10반 학생들 ⓒ 김지형


그러던 중 "폐지를 팔아 번 돈을 좋은 데 쓰는 게 어떻겠느냐"는 선생님 제안에 아이들이 맞장구를 치면서 일이 커졌다. 곧바로 다른 반까지 찾아가 폐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10반 실장은 쉬는 시간에 각 교실을 돌면서 이같은 제안을 하고 뒤쪽에 폐지를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렇게 모인 각 교실의 폐지를 10반 아이들이 힘을 모아 다시 한 곳에 모았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몸을 움직였고 그 사이 실장은 고물상을 수소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물상에서 와서 트럭에 폐지를 수거해갔다. 모아진 폐지는 모두 1172kg이었다. 1톤이 넘는 양이다. 그렇게 마련된 돈이 9만4천원이었다.

▲ 학생들이 모은 폐지는 트럭 두대 분량 1톤이 넘는 무게였다. ⓒ 김지형


학생들은 곧바로 또 움직였다. 구청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동네 어르신들을 소개받은 것이다. 의논 끝에 연탄을 사서 전달해 드리기로 결정됐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선생님이 6000원을 보태 총 10만 원의 기금이 모였고 한 장에 500원 하는 연탄 200장이 마련됐다. 이렇게 마련된 연탄은 지난 12일 오전 도남동에 사는 두 명의 독거노인 집으로 각각 100장씩 전달됐다.

▲ 함지고 1학년 10반 실장, 이은진 학생 ⓒ 김지형


1학년 10반 실장인 이은진 학생은 "처음엔 작게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일이 커졌다, 1학년 전체가 과연 잘 협조할까 싶어 걱정도 했는데 친구들이 모두 마음을 모으고 다른 반 아이들도 잘 도와줘서 이렇게 좋은 결과를 만들게 됐다, 너무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 폐지를 판 돈으로 마련한 연탄, 10만원으로 2백장의 연탄을 구입했다. ⓒ 김지형


이날 연탄을 전해 받은 한 할머니는 "하루에 6~7장의 연탄이 필요한데 백장이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학생들이 너무 고맙다"라며 반가워하셨다. 겨울을 나는 데 대략 700장 정도의 연탄이 쓰이는데 백장이면 보름 정도 쓸 수 있는 양이다.

10반 담임을 맡고 있는 이은희 선생님은 "담임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이 정말 너무 참하다, 실장도 솔선수범하고 아이들도 서로 잘 지낸다, 평소 그런 모습이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힘이 된 것 같다, 한 해 마무리를 어느 해보다 뜻깊게 한 것 같아 너무나 뿌듯하다"라고 전했다.

▲ 연탄을 나르고 있는 함지고 1학년 10반 학생들 ⓒ 김지형


특이하게도 함지고 1학년 10반은 과학 중점 반으로 지정돼 졸업할 때까지 25명이 현재 구성원 그대로 2, 3학년을 같이 보내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아이들끼리 단합도 잘 된다고 한다. 또 그래서인지 이번 연탄봉사는 올해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학생들 누구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앞으로 매년 이렇게 폐지를 모아 봉사를 하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입시 전쟁에 내몰려 주위를 살필 여유조차 없는 요즘의 고등학생들을 보며 늘 안타까웠는데 이날만큼은 어린 학생들이 유난히 듬직하고 커보였다. 그만큼 남은 겨울도 더 따뜻할 것 같다.

▲ 연탄 봉사를 마치고 시커멓게 된 손을 즐겁게 펼쳐 보이는 학생들 ⓒ 김지형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대구 강북지역 언론인 강북신문(www.kbinews.com)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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