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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62세, 먼 길을 떠나면서

[네팔히말라야 트레킹1]

등록|2015.02.17 08:35 수정|2015.02.17 08:36

검화당 일출매일 서재에서 통하는 발코니로 나가 감사와 축복으로 맞는 하루의 아침 ⓒ 정부흥


히말라야로 가는 사연 

매일 아침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발코니로 나가 백팔배를 올리는 일이다. 첫 번째 내레이션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를 생각하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이다. 어느 날  문득  '어디서 와서'와 '어디로 가는가?'사이에 '어떻게 살다가'가 빠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와서'와 '가는가?'는 생각해봐야 알지 못하는 세계다.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고, 이 현실을 잘 관조하다 보면 그림자를 보고 그 본체를 짐작 할 수 있듯이 '와서'와 '가는 가'의 세계도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화두가 되었고 참선, 단전호흡, 명상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결국 사는 것의 주체는 '나'이고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의 문제는 나를 알아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지리산 마루금에 우뚝 솟은 만복대, 고리봉, 종석대 뒤에 숨은 노고단을 정면으로 대하고 있어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노고단에 올라서면 그 주변의 풍관은 볼 수 있을지언정 노고단을 잘 볼 수는 없다. 삶의 질곡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려면 삶의 현장에서 한 발짝 비껴서야 할 것 같았고 이를 위해선 여행이 좋을 것 같았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려고 히말라야로 간다'라는 명제를 만들었고 이를 위해 몇 차례 시도를 했지만 공교롭게도 매번 장애물에 걸려 포기해야했다. 2008년에는 고산등반 장비를 갖추고 항공권, 여행자보험증서까지 준비했지만, 네팔 국내 사정으로 카트만두 공항이 봉쇄되는 바람에 중단했다. 그 뒤에는 조류독감 때문에 준비단계에서 포기해야했다.

내 나이는 64세이고 집사람은 62세이다. 딸과 아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다. 나름 잘 살고 있는 듯하다. 우리도 넉넉하진 않지만 절약하여 살면 생계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연금이 지급된다. 지리산을 잘 볼 수 있는 곳에 통나무집을 지었고, 300여 평의 텃밭에 먹거리 농사를 지어 대부분 자급자족한다. 적당량의 농사는 보람도 있고 즐겁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

요즈음 나와 집사람은 '우리의 인생 중 가장 좋은 시절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한다.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본연의 나를 만나고 싶다는 열병이 도져, 6월에 네팔로 향하는 항공권을 구입하고 지금까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준비해왔다.

2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당뇨병과 합병증이었던 뇌졸중 후유증이 문제였지만, 귀촌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건강이 많이 호전되었고 여행계획을 세우고 나서 준비하는 동안 철저한 관리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출발 일주일 전에 혈액검사 결과를 알려온 의사 선생님의 "혈액검사로 할 수 있는 모든 종목을 다 포함시켜 검사했으며 모두 정상입니다. 축하합니다. 잘 다녀오십시오"라는 전화 통보는 주변의 걱정스런 시선을 일소시킬 수 있었다.

히말라야로 떠나기 이틀 전인 그제(2014년 10월 14일) 저녁.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토쏭고개를 넘던 168명의 트레커들이 폭설 때문에 24명이 사망하고, 60명이 구조되어 병원으로 실려 갔고 나머지는 행방불명 상태라는 비보를 들었다. 토쏭고개는 우리가 넘어야할 길이고, 고개이고, 재이다. 참으로 실망스럽다. 집사람 얼굴색이 변했고 말을 잃었다.

어제 아침 출발 짐을 꾸리면서 집사람이 "토쏭고개 입구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면 어떻겠느냐?"고 슬며시 내 눈치를 살핀다. 포카라를 출발하여 매일 10km 이상 걸어 5~6일 정도 걸어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항력이라면 되돌아설 수밖에 없지만 두려워 물러설 수는 없다. '어떻게 살다가'와 상관되는 문제다. 소신껏 사는 것이 문제이지 죽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또 등산의 경험에 의하면, '비를 맞으며 출발하면 비를 맞지 않고 돌아오지만 맑은 날 떠나면 비를 맞으며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날 수만 있다면 그 또한 축복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트레킹 일정을 계획대로 추진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나는 떠날 준비가 되었으니 길을 떠나온 것이다. 이제 곧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네팔히말랴야 자연의 위대한 창조물인 히말랴아 산군, 비행기 창문 옆으로 보이다. 8,000m의 높이를 실감한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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