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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촛불재판, 대한민국 사법부가 들썩인 이유

[신영철 퇴임이 남긴 그림자②] 옛날 기사로 다시 보는 촛불재판 개입 논란

등록|2015.02.16 21:05 수정|2015.02.17 14:16
끝내 그는 6년 임기를 모두 채웠다. '촛불재판'에 개입해 사법부의 대원칙,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에도 끄떡없었다. 2월 17일 퇴임하는 신영철 대법관 이야기다. 그의 임기 만료는 스스로 독립을 지키지 못한 사법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 아닐까. <오마이뉴스>는 그 부끄러움을 기억하기 위해 2009년 숨 가쁘게 돌아간 당시 상황을 복기했다. [편집자말]

▲ 대법원 대심판정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1948년 제헌 이래 대한민국 헌법은 모두 9번 달라졌지만 절대 빠지지 않았던 문구가 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

지난 2009년, 사법부는 들썩였다.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수많은 판사가 움직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은 사람은 신영철 대법관이었다. 이후 그는 6년 임기를 꽉 채웠다. 다음은 5차 사법파동의 문턱에 이르렀던 소신 있는 법관들과 그들을 주저앉힌 법원 안팎의 기록이다.

[발단] 감춘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 ‘촛불재판 개입’ 의혹에 휩싸였던 신영철 대법관이 2월 17일 6년 임기를 모두 채우고 퇴임한다. 사진은 그가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된 직후인 2009년 3월 19일 오후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나타났을 때의 모습. ⓒ 유성호


"얼마 전에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가 돌연 사직한 사유를 알고 계시죠? 촛불집회 때 야간집회를 금지한 현행 집시법을 문제로 삼아서 위헌 신청을 한 이후에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았다는 소회를 밝혔어요."

2009년 2월 10일 오전 국회 인사청문회장, 이종걸 당시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신영철 대법관 후보자는 확고한 어투로 "전혀 불이익 받은 바 없습니다"라고 답했고 무사히 대법관이 됐다( ☞ 국회 영상회의록 바로가기). 하지만 그는 곧바로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첫 보도] "보수판사에게 촛불재판 몰아주다니" 법관들 집단 반발

[전개] 움직이기 시작하는 판사들... "사법권 독립"

▲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속 판사들이 2009년 5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단독판사회의에 '촛불재판 개입' 의혹으로 엄중 경고를 받은 신영철 대법관의 공직자 윤리위원회의 결론 타당성 여부를 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 유성호


불길은 순식간에 번졌다. 대법원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재판 개입 의혹은 사법부 전체의 신뢰와 직결되는 만큼 일선 판사들은 이번 일을 가벼이 넘어갈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 "촛불재판 비난 사법부 전체가 뒤집어써" 대법원 일축 불구 현직판사들 성토

그 사이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을 뒷받침하는 다른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 "위헌제청 촛불사건 현행법대로 처리... 이용훈 대법원장 생각도 나와 같아"

▲ 신영철 대법관의‘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조사해 온 대법원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이 2009년 3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법원 안팎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후배 법관까지 나왔다.

☞ 대법관 출신 이회창 "촛불재판 간섭, 있을 수 없는 일"
☞ "사법권 독립 위해 '전국 판사회의' 열자 대법원장은 사과"
☞ "사실상 촛불 재판압력 행사했다" 현직 판사, 신영철 대법관 '용퇴' 촉구

심상찮은 흐름을 감지한 보수언론과 여당이 움직였다.

☞ "좌파 판사... 인민재판식 사법부 파괴공작" '신영철 구하기' 나선 <조선>
☞ 홍준표 "신영철 대법관, 행정지휘권 행사한 것"

그럼에도 신 대법관 비판 여론은 잦아들지 않았다. 대법원이 부랴부랴 "신 대법관이 재판에 관여했을 소지가 있다"는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판사들은 일단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결정을 기다리기로 했다.

☞ "신영철 대법관 재판관여 소지 있다... 배당 몰아주기는 사법행정권 남용"
☞ [전문] 신영철 대법관 재판관여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

[절정] 덮거나 묻어가거나... 결국, 기름 부은 격

▲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2009년 4월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공직자 윤리위원회에서 최송화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을 비롯한 위원들이 참석하여 첫 공식 회의를 하고 있다. ⓒ 유성호


2009년 5월 8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신영철 대법관에게 경고·주의를 주라고 권고했다. 3일 뒤, 한동안 잠잠했던 내부 통신망에는 판사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은 '엄중 경고'로 사태를 덮으려 했고, 신 대법관은 여기에 묻어가려 했다.

☞ "윤리위 결정은 충격... 법관 독립 무시" "신 대법관, 결자해지 차원에서 결단해야"
☞ 신 대법관 징계위 회부 않고 '엄중 경고' 대법원, 판사들 분노한 가슴에 기름 붓나
☞ 신영철 "재판 간섭은 오해, 심려 끼쳐 죄송" 사퇴 뜻은 안 밝혀

▲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일선 판사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2009년 5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출근하고 있다. ⓒ 유성호


결국,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이 됐다.

☞ "신 대법관, 직무 계속 수행은 부적절" 서울중앙지법 판사들, 사실상 '사퇴' 촉구
☞ "대법관직 수행 부적절하다" 결의 확산

9월 24일에는 헌법재판소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다. 신 대법관 재판 개입의 부당성이 다시금 확인된 셈이었다. 결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법관의 탄핵소추안 발의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

☞ 안진걸 팀장 "신영철 핍박받은 박재영 판사에게 감사"
☞ 야당 의원 105명, 신영철 탄핵소추 발의

[결말] '구사일생' 신영철이 사법부에 남긴 상처

▲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와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가 2009년 11월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신영철 대법관 탄핵 소추안 처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남소연


예상대로였다. 다수결의 벽에 부딪힌 신 대법관 탄핵은 불발에 그쳤다. 263일 내내 시끌벅적했던 법원은 온데간데없었다. 남은 것은 끝까지 버틴 신영철 대법관과 상처 입은 사법부의 독립성뿐이었다.

☞ 한나라당 보이콧에 신영철 대법관 구사일생

▲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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