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와 정치인은 표면적으론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어휘가 주는 느낌은 내겐 다르다. 정치가가 정치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인은 정치를 업으로 삼지는 않지만 정치적인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내겐 다가온다. 그리고 정치인은 정치가가 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 및 국회의원이라면 일단 정치가 쪽에 가깝다. 그리고 비정부기구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는 정치인이라 볼 수 있겠다. 물론 이렇게 간단하게 어디서 활동 하느냐에 따라 정치가와 정치인을 구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럼 어떻게 정치가와 정치인을 구분해야 할 것인가?
개인적인 생각으론 똑같은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정치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놓여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정치가는 부정적 의미가, 정치인엔 긍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치를 업으로 삼는 정치가는 그럼 어떤 면에서 부정적인지 살펴보자. 정치가의 입에선 늘 '국민'을 앞세운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적을 둔 모두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될 수 있는 사람만이 국민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는 보수적일 수도 진보적일 수도 있다.
자신의 표가 많이 나오는 곳이 보수라면 보수편에 서는 것이고, 진보쪽이 유리하면 진보쪽에 서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을 대변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지기반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정치가는 절대 국민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절치부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생기는 부정적인 면은 바로 편 가르기이다. 니편 내편이 확실해야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세우고 활동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내편이 확실하다면 니편보다 수적 우위에 있다면 내편 쪽만 귀 기울인다. 비슷하다면 내편이 수긍할 수 있을 만큼 반대편 요구도 수용하며 마치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긍정적 모습을 강조하는 꼼수를 부린다.
내편이 수적으로 열세라면 반대쪽에 들어갈 기회를 노리거나, 적극적으로 위기를 부각시키며 내편을 결집시키고 상대편은 정치에 무관심하도록 만든다. 무관심하게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치를 개판으로 만들어 상대방이 정치에 혐오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정치가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오래도록 유지하려고 한다.
자신을 정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자신만의 국민을 대변하면서 말이다. 여기에는 여도 야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것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정치기반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이 싸움에 '국민'을 최전선에 내세우면서 자신들은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는 비겁함이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싸움의 최전선에 있는 정치가들 편에 서 있는 국민들도 역시 뒤에 숨어 있는 정치가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지지하는 정치가가 바로 자신의 밥그릇을 챙겨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암묵적으로 정치가와 그 편에 서 있는 국민간에는 묘종의 협약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정치인은 정치가와 대립하는 사람이다. 언제라도 부패할 수 있고, 선거만 끝나면 국민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보편적 국민을 위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뒤에서 치밀하게 움직이는 어두운 모습을 나타내는 정치가를 감시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많은 비정부기구가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정치인도 언제나 정치가로 변질 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정치인들도 역시 '국민'을 위해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대체로 '서민', 좀 더 확장하면 중산층 이하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이분법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좀 더 나아가면 정치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 결국 정치인은 정치가가 될 가능성을 지닌 정치가로 불릴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정치인의 생각으로 움직이며 정치계에 견제를 하며 타락하지 않고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해야하는 역할은 누가 해야 할까 생각해봐야 한다.
그건 바로 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다. 공무원들이 정치인이 되어서 정치가를 견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립이란 것이 어느 편에도 서지 말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정치가들이 내린 지시에 대해서 그냥 군말 없이 따르라는 폭력과 억압적 의미의 중립이다.
정말 중립적이려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정책을 내 놓았을 때 공무원이 저지할 수 있어야 하며, 검찰과 경찰은 정치가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눈치 보지 않고 처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이완구 의원이 국무총리 인준을 통과 하면서 이완구 개인이 정치가란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여와 야도 정치가가 모인 집단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각종 해소되지 못한 흠집에도 불구하고 자진 사퇴하지 않는 뻔뻔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정치가다.
국무총리가 되기에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고 여론이 안 좋아도 총리인준을 내세워 청와대와 딜을 하여 국정운영의 중심이 되려는 여당, 표결로 들어가면 인준이 될 것을 알기에 최대한 이완구 의원을 압박하며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는 야당.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혐오를 느끼고 무관심하다. 그럴수록 더욱 개개인이 정치적이어야 하며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정치가가 그토록 내세우면서도 실상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을 정말 두렵게 느끼게 해야 한다. 행동 하나 말 하나까지 신경 쓰면서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정치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전 국민이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최대한 직접민주주의 적인 모습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완구 의원이 떳떳하게 국무총리직을 맡고, 그것을 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들이 인준을 통과시킨 것의 바탕엔 정치적이지 못한 많은 국민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개판이라면 그 개판을 만든 건 정치가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고 앞으로 정치적인 국민, 정치인이 되었으면 한다.
대통령 및 국회의원이라면 일단 정치가 쪽에 가깝다. 그리고 비정부기구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는 정치인이라 볼 수 있겠다. 물론 이렇게 간단하게 어디서 활동 하느냐에 따라 정치가와 정치인을 구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럼 어떻게 정치가와 정치인을 구분해야 할 것인가?
개인적인 생각으론 똑같은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정치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놓여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정치가는 부정적 의미가, 정치인엔 긍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치를 업으로 삼는 정치가는 그럼 어떤 면에서 부정적인지 살펴보자. 정치가의 입에선 늘 '국민'을 앞세운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적을 둔 모두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될 수 있는 사람만이 국민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는 보수적일 수도 진보적일 수도 있다.
자신의 표가 많이 나오는 곳이 보수라면 보수편에 서는 것이고, 진보쪽이 유리하면 진보쪽에 서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을 대변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지기반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정치가는 절대 국민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절치부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생기는 부정적인 면은 바로 편 가르기이다. 니편 내편이 확실해야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세우고 활동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내편이 확실하다면 니편보다 수적 우위에 있다면 내편 쪽만 귀 기울인다. 비슷하다면 내편이 수긍할 수 있을 만큼 반대편 요구도 수용하며 마치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긍정적 모습을 강조하는 꼼수를 부린다.
내편이 수적으로 열세라면 반대쪽에 들어갈 기회를 노리거나, 적극적으로 위기를 부각시키며 내편을 결집시키고 상대편은 정치에 무관심하도록 만든다. 무관심하게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치를 개판으로 만들어 상대방이 정치에 혐오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정치가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오래도록 유지하려고 한다.
자신을 정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자신만의 국민을 대변하면서 말이다. 여기에는 여도 야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것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정치기반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이 싸움에 '국민'을 최전선에 내세우면서 자신들은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는 비겁함이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싸움의 최전선에 있는 정치가들 편에 서 있는 국민들도 역시 뒤에 숨어 있는 정치가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지지하는 정치가가 바로 자신의 밥그릇을 챙겨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암묵적으로 정치가와 그 편에 서 있는 국민간에는 묘종의 협약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정치인은 정치가와 대립하는 사람이다. 언제라도 부패할 수 있고, 선거만 끝나면 국민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보편적 국민을 위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뒤에서 치밀하게 움직이는 어두운 모습을 나타내는 정치가를 감시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많은 비정부기구가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정치인도 언제나 정치가로 변질 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정치인들도 역시 '국민'을 위해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대체로 '서민', 좀 더 확장하면 중산층 이하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이분법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좀 더 나아가면 정치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 결국 정치인은 정치가가 될 가능성을 지닌 정치가로 불릴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정치인의 생각으로 움직이며 정치계에 견제를 하며 타락하지 않고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해야하는 역할은 누가 해야 할까 생각해봐야 한다.
그건 바로 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다. 공무원들이 정치인이 되어서 정치가를 견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립이란 것이 어느 편에도 서지 말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정치가들이 내린 지시에 대해서 그냥 군말 없이 따르라는 폭력과 억압적 의미의 중립이다.
정말 중립적이려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정책을 내 놓았을 때 공무원이 저지할 수 있어야 하며, 검찰과 경찰은 정치가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눈치 보지 않고 처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이완구 의원이 국무총리 인준을 통과 하면서 이완구 개인이 정치가란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여와 야도 정치가가 모인 집단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각종 해소되지 못한 흠집에도 불구하고 자진 사퇴하지 않는 뻔뻔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정치가다.
국무총리가 되기에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고 여론이 안 좋아도 총리인준을 내세워 청와대와 딜을 하여 국정운영의 중심이 되려는 여당, 표결로 들어가면 인준이 될 것을 알기에 최대한 이완구 의원을 압박하며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는 야당.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혐오를 느끼고 무관심하다. 그럴수록 더욱 개개인이 정치적이어야 하며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정치가가 그토록 내세우면서도 실상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을 정말 두렵게 느끼게 해야 한다. 행동 하나 말 하나까지 신경 쓰면서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정치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전 국민이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최대한 직접민주주의 적인 모습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완구 의원이 떳떳하게 국무총리직을 맡고, 그것을 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들이 인준을 통과시킨 것의 바탕엔 정치적이지 못한 많은 국민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개판이라면 그 개판을 만든 건 정치가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고 앞으로 정치적인 국민, 정치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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