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만갑' 폐지 서명운동이라도 하고 싶다"

[젊은 실향민 '탈북자'를 만나다 ①]

등록|2015.02.19 12:27 수정|2015.02.19 12:28
한국 내 탈북자가 27000명이나 된다. 그러나 이들의 생활여건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어느덧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한국 내 북한 사람들. 이들 탈북자의 생활과 고민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들은 정부의 감시 아래 있어 자신의 속내를 완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탈북자들의 실명과 구체적인 인적사항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기자 말

봄을 재촉하는 부슬비가 내리는 2월 어느 날. 설을 앞두고 실향민이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인천으로 향했다. 여기 실향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산가족과는 좀 다르다. 30~50대 비교적 젊은 실향민이다. 정부에서는 이들에게 새터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이날 모인 이들 가운데 자신을 새터민이라 부른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탈북자라 불렀다. 정부도 결국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포기했다고 한다.

감자탕집에 모인 탈북자는 열댓 명. 어린 아이들도 넷이나 있다. 대부분 인천 등지에 사는 이들이다. 평소에 자주 만나 친분이 있어보였다. 모이자마자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그중 최씨란 사람이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여기 두 명 빼고는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탈북자들은 처음 만나도 금방 친해집니다. 한가족 같아요."

이들의 억양은 재중동포(조선족)와 비슷했다.

"평소에는 서울말 쓰려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금방 알아챈다. 감정이 격해지면 북한말투가 더 심해진다. 보통 사람들이 조선족이냐고 물어본다."

탈북자들은 북한을 뭐라 부르는지 궁금했는데 그냥 <북한>이라 부른다. 한국인이 다 됐다 싶었다.

소주가 돌았다. 그런데 남자들만 술을 먹고 여자들은 안 먹는다. 열 명이 넘는 여자들 가운데 단 두 명만 술을 먹는다.

"북한에선 여자들이 술 잘 안 먹어요. 한국 와서 술만 배웠어요. 호호호."

이들의 주된 화젯거리는 단연 이만갑(이제 만나러 갑니다)이었다. 종편방송인 채널A에서 진행하며 탈북여성들이 나와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의 성토가 이어진다.

"난 이만갑만 나오면 텔레비전 꺼버려. 그런 프로그램을 어떻게 아직까지 할 수가 있어? 정부는 왜 중단을 안 시키는 거야?"

"우리 탈북자들은 이만갑 다 싫어합니다. 거기 출연한 사람들은 양심도 없어요.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면 되지 왜 거짓말을 해?"

"거기서 하는 말은 20%만 사실이고 80%는 거짓말입니다."

"뭐가 20%야? 1% 빼고 나머지 99%는 거짓말이야."

"작가가 시켜서 그런다잖아. 걔들도 하고 싶어서 하겠어?"

"아니 아무리 작가가 시켜도 그렇지. 그럼 작가가 X 먹으라면 먹을 거야? 양심이 없는 거야. 돈 주니까 막 하는 거지."

"한 번 출연에 50을 준다는데 그 정도면 짭짤하지."

실제 이만갑 출연료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50만 원으로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돈만 주면 뭐든 하는 거야? 에휴."

"이만갑 출연한 애들은 탈북자 사회에서 얼굴도 못 내밀어요."

"난 이만갑 없애라고 서명운동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그거 몇 명 정도 서명해야 없어지는 거예요?"

이만갑에서 나오는 얘기에 그렇게 거짓이 많은 걸까?

"예전에 이만갑에서 칫솔이 없어서 온 가족이 칫솔 하나로 양치질을 한다고 했어요. 우리 탈북자들은 그 소리 듣고 다 거짓말이라고 했어요. 북한에 부족한 게 많지만 제일 흔한 게 치약 칫솔이거든요. 칫솔 하나로 온 가족이 돌려쓴다? 무슨 헛소리에요?"

"애를 낳았는데 먹일 게 없어서 소 여물에서 옥수수 알을 건져서 먹였다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갓난아기가 옥수수를 먹을 수 있어요?"

"거기 십대 초반에 탈북한 애들도 나오던데 걔네들이 뭘 알겠어요? 그런데 북한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말해요. 북한은 자기가 살던 지역 외에는 잘 몰라요. 함경북도 무슨 군에 살았다하면 그 군에 대해서만 아는 거예요."

그날 모인 이들은 대부분 함경북도 출신이다. 어쩌다 탈북을 했을까?

"중국에 왔다갔다 하면서 밀수를 좀 했는데 돈도 꽤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한국 돈을 좀 만지게 됐어요. 그게 적발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북한에서 나왔지."

기자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지지 않았는지 다른 이들은 왜 탈북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꺼린다.

(계속)
덧붙이는 글 NK투데이에도 실립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