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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택배 받기, 이 정도일 줄이야...

[영어울렁증 그녀, 미국에서 살다] 열흘 전에 출발... 여전한 기다림

등록|2015.02.20 15:31 수정|2015.02.20 15:31
문을 여니 택배가 와 있습니다. 미국은 택배를 조용히 집 앞에 두고 갑니다. 얇은 사이즈일 경우에는 문과 문 사이에 두고 가고 큰 사이즈일 경우에는 현관 앞에 두고 갑니다. 택배 왔다고 이름 부르며 문을 두드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택배 올 때가 되면 현관문을 수시로 열어보게 됩니다.

▲ 문과 문 사이에 두고 간 택배 ⓒ 김다영


지난주에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인 줄 알았는데 수취인이 남편입니다. 그러면 책은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인가 싶어서 송장번호로 조회를 해봅니다. 그런데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서점에서 입력한 송장번호가 틀렸거나 아니면 우체국이 이동경로를 입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배송했다는 안내 메일이 온 지 열흘이 되었으니 분명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말입니다(일반 택배의 배송 기간은 4일~14일). 서점에 이메일을 보내 확인 요청을 할까 하다가 한 번 더 우편함을 확인해 보기로 합니다.

주문한 책은 우체국택배를 통해 이동 중입니다. 우체국택배는 우편함에 두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의 등기처럼 수취인의 서명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부피가 작을 경우에는 일반 우편물처럼 우편함에 넣어두고 부피가 클 경우에는 우편함 아래에 있는 사물함에 넣고 문을 잠근 뒤 그 열쇠를 우편함에 넣어두고 갑니다. 그러니까 우편함을 열면 택배가 보관되어 있는 사물함의 열쇠가 있는 것입니다. 반면 페덱스(FedEx), 유피에스(UPS) 등의 택배 회사는 물건을 집 앞에 두고 가기 때문에 배송관련 문제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 부피가 큰 우편물은 우편함 제일 아래 칸에 넣고 열쇠로 잠근 뒤 그 열쇠를 수취인의 우편함에 넣는다. ⓒ 김다영


조금 어처구니없는 일도 종종 발생합니다. 어떤 주택에선 택배기사가 물건을 휴지통에 넣고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택배기사 입장에선 잘 안 보이는 곳을 택한 것일 텐데... 결국 문제 없이 멀쩡히 배송이 되었음에도 주인은 물건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택배기사는 많고 많은 곳 중 눈이 쌓인 곳에 물건을 두고 가, 내용물이 모두 젖어버린 적도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온란인에 현관까지 걸어가는 게 귀찮았는지 커다란 TV박스를 담 너머로 떨어뜨리는 택배기사의 모습, 배달할 물건들을 차량 화물칸에서 바닥으로 던지는 택배기사의 모습 등을 촬영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한동안 시끌 시끌 했습니다. 이외에도 택배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온라인 쇼핑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백화점, 마트, 서점 등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없는 게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국토가 넓은 탓에 배송기간이 깁니다. 1주일은 기본이고 무료배송도 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35~50달러(한화 약 4~5만 원) 이상을 구매해야 무료배송 혜택이 주어집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기본 배송료는 6달러(한화 약 6천원)입니다.

한국에서는 생필품도 온라인으로 구매할 정도로 온라인 쇼핑을 자주 했습니다. 오늘 주문하면 다음 날 받는 경우가 많았고 배송료 부담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에 오랜 시간 길들어져 있던 탓에, 미국에 와서는 뭐 하나 사려면 이것저것 따져보느라 주문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계산을 해본 후에는 온라인 구매를 포기한 경우가 많습니다. 평균 일주일인 배송 기간도 그렇지만 물건 값에 배송료까지 더하면 가까운 매장에 가서 사는 게 싼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OO백화점, OO마트, OO피자처럼 생활권 내에 하나씩 있는 가맹점이라면 '스토어 픽업(store pick up)'을 주로 이용합니다. '스토어 픽업'은 온라인에서 물건을 주문한 뒤 해당 매장에서 확정 메일이 오면 구매자가 매장에 가서 주문한 물건을 가져오는 시스템입니다. 온라인에서 주는 혜택도 받고, 가까운 매장에 가서 받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배송을 기다리지 않아서 좋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온라인 서점을 통해 이 같은 시스템을 몇 번 이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의 이용에 그치고 말았던 가장 큰 이유는 굳이 급하게 가져오지 않아도 하루 정도만 기다리면, 집으로 배달을 해주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도 내부적으로는 배송기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국토가 넓어 배송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보니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드론(Drone)'과 같은 로봇 관련 기술에 긴 시간 투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이 치열한 전쟁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가까이에서 접하는 택배기사들의 여유가 한 몫 했습니다.

아파트라고 해봤자 2층이 고작인 미국입니다. 그리고 주차공간도 넉넉해 기사들이 배달차량 주차를 걱정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분주한 모습으로 배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처럼 늦은 시간까지 배달을 하지도 않습니다. 택배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다른 손은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 걸어서 배달하는 모습은 낯설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낯설었던 것들이 이제는 익숙해졌나 봅니다. 책을 주문했다는 사실조차 며칠째 잊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책이 왔는지 우편함을 확인하러 나갔다 와야겠습니다. 우편함 속에 열쇠가 들어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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