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는 남은 자를 위한 자리, 맞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② 마지막으로 잡은 할아버지의 손, 차가웠다
▲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장례는 돌아가신 분보다 남은 자들을 위한 절차라는 것을 깨달았다. ⓒ 연응찬
어머니가 가져오신 영정사진을 올려놓으니 비로소 할아버지의 장례라는 게 실감이 났다.
속속 친척들이 도착했고 상조회에서는 장례절차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이른 새벽, 장례지도사가 병원에서 영안실까지 할아버지 모시는 것을 도와주고 아침 9시에는 장례식장에 미리 도착해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목요일 새벽에 돌아가셨으니 금요일에 입관을 하고 다음날 화장터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할아버지는 화장한 후 할머니 산소에 같이 모시기로 했다.
첫날인데도 낮부터 조문객들이 제법 많이 오셨다. 아버지 옆에 서서 조문객들에게 인사하고 멍하니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있지만 정작 돌아가셨다는 게 와 닿지 않았다.
이미 돌아가실 것에 대해 알고 있어서였을까? 몸과 마음의 괴리를 느끼며 그런 스스로를 낯설어 했다. 몸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멈춰 있었다. 저녁부터 본격적으로 조문객들이 오기 시작했고 9시 반쯤 되어서야 발길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할아버지의 죽음은 낯설었다.
▲ 할아버지를 조문하는 조문객들시골묘에서 조문하는 조문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응찬
다음 날, 입관일이었다. 장례지도사의 인도에 따라 가족들이 영안실로 들어갔다. 그곳에 수의를 입고 천으로 얼굴을 가린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다. 천 위로 할아버지의 뒤로 넘긴 흰머리가 보였다. 고모할머니(할아버지의 여동생)는 서럽게 울기 시작하셨다.
장례지도사가 마지막 가시기 전, 가족들에게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보라고 했다. 차가웠다. 얼마 전 병원에서 잡은 따뜻했던 할아버지의 손이 지금은 차갑고 서늘하게만 느껴졌다. 곧이어 얼굴을 가리던 하얀 천을 걷어내자 입술을 굳게 다문 할아버지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프셨을 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 보이셨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났다. 참으려 했지만 흐느낌을 멈출 수 없었다.
가족들은 순서대로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아버지이자, 장인이자, 오빠이기도 한 할아버지에게 모두 그간의 정과 소회를 풀었다. 살아계실 때 들으셨으면 무척 기뻐하셨을 말들을 그땐 왜 그리도 하지 못했던 걸까. 미안함에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장례는 떠난 사람보다 남은 자들을 위한 시간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모든 절차는 할아버지를 관 속에 모시고서야 끝이 났다. 가족들은 감정을 추스르고 입관예배에 참석했다. 장례를 치르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상중에 누군가 와주고 함께 있어주는 것 자체가 큰 위로가 된다는 점이다. 조부상인데도 조문 와준 회사 동기와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은 장례가 끝난 이후에도 마음에 남았다. 입관예배는 어머니 교회 분들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와주신 분들이 너무 고마웠고 큰 위로가 됐다.
또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친척들이 하나가 되었다. 보통 돌아가신 분의 유산 때문에 친척들 간에 싸움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우리는 그러기는커녕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며 더 단합했다. 평소 친척 간에 하지 못한 대화들도 이 기회를 빌려 나눌 수 있었다. 큰 일을 치르며 서로 하나가 되고 뭉칠 수 있었다.
▲ 돌아가시고 다시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25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와 이제야 다시 만나신 할아버지 ⓒ 연응찬
화장터로 가는 길에 나는 영정 사진과 위패를 모시고 할아버지보다 앞서 걸었다. 용암같은 불길 속으로 할아버지는 영원한 쉼을 위해 들어가셨다. 몇 시간 후 하얀 유골로 산화한 할아버지는 작은 도자기 함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유골함을 담은 나무상자는 할아버지의 살아계실 적 온기처럼 따뜻하기만 했다. 시골에 있는 할머니 묘로 이동하여 그곳에 다시 영정사진과 위패를 놓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자리를 준비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지내시길 25년, 이제 하늘에서 다시 만나시리라.
▲ 할아버지께 선물한 도금반지색이 다 바래도록 끼고 계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순금으로 할 걸. ⓒ 연응찬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에 웬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장교 임관식 때 할아버지에게 선물한 임관반지였다. 도금칠을 해 세월에 누렇게 색이 바랬는데도 늘 끼고 다니시다 병원 가시기 전에 두고 가셨다고 했다. 그 반지를 볼 때마다 '순금으로 맞춰 드릴 걸' 하고 후회하곤 했다. 그 반지가 지금 눈에 다시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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