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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없이 보낸 2박3일이 무슨 대수라고...

[꿈꾸는 망고의 공동육아 이야기②]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나들이와 들살이

등록|2015.02.21 13:27 수정|2015.02.21 15:19

▲ 독수리 아이들의 졸업여행. 풍등을 띄우며 소원을 빌고 있다. ⓒ 김형배


꿈꾸는 어린이집 일곱 살들인 독수리방 아이들 6명은 교사인 진주, 불꽃과 함께 2박 3일동안 경기도 가평 일대의 졸업여행을 마치고 지난 14일 터전(어린이집)으로 귀환했다. 피곤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들의 표정만 보자면 MT가는 대학생 마냥 쌩쌩해 보였다.

어린이집 졸업 전에 2박3일 동안 졸업여행 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신선하다 못해 당황스러웠다. '아마(아빠엄마의 줄임말)'들이 운영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특성상 아마들과 함께 가겠거니 했는데 예상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빗나갔다. 교사랑만 간단다. 그것도 왠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우선 교사가 대단해 보였다. 우리집 딸아이랑 서울 시내에 나들이 갔다오는 것만 해도 탈진할 것 같은데 그 혈기왕성한 일곱 살 아이들을 데리고 2박 3일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녀온다니. 교사들이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조교이거나 살신성인의 자세로 헌신하는 성자가 아니고서야 가능하겠는가.

일반 학교에서 학급 아이들과 함께 가는 당일 소풍도 힘들어하는 교사들을 많이 봤다. 그렇다 보니 1박2일, 2박3일의 체험활동일 경우에는 아이들을 관리까지 해주는 청소년 수련시설과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학생들이 관리하기 더 힘들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 중학생들이 일곱 살이었을 때를 상상해 본다면 어린이집 교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독수리들의 졸업여행.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갈아타고 가평으로 향하고 있다. ⓒ 김형배


하지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부모 없이 떠나는 2박3일 여행이 조금 더 수월할 수 있는 이유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나들이가 일상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공동육아에서 나들이는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자연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자연으로부터의 호기심을 채워 주자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나들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움의 대상으로 만나게 된다. 또 어른들이 지나쳐 버린 사물과 환경에서 놀이를 배워간다. 그리고 나들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간다. 아이들은 나들이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인식을 통합해나갈 수 있다.

나들이는 몇 가지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우선 일상 나들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매일 오전에 2시간 동안 터전 밖으로 나들이를 간다. 기상 상태가 좋지 않을 때를 제외하고는 변함이 없다. 일곱 살 형님들은 네 살 동생들의 손을 잡고, 다섯 살 아이들과 여섯 살 아이들이 짝을 지어 나들이를 간다.

터전 중심으로 걸어서 20여 분 거리에 대여섯 곳의 나들이 장소가 있다. 나들이 장소는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 그때 그때 정한다. 나들이 덕에 아이들은 확실히 튼튼해진다. 우리 아이는 꿈꾸는 어린이집에 가기 전만 해도 5분 이상 걷는 것을 힘들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등산 코스도 거뜬히 해낸다.

꿈꾸는 어린이집에서는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긴 나들이를 간다. 도시락이 담긴 가방을 메고 1시간 정도 걸리는 솔밭공원까지 걸어가서 한참을 뛰어 놀고 다시 걸어오기도 한다. 또는 한나절 동안 북한산 둘레길을 걸어다니며 자연을 만끽하고 돌아온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배우고 자연이 품운 소중한 생명들을 마주하며 성장해 간다. 체력의 상승은 그야말로 덤이다.

▲ 북한산 둘레길 산행. 아이들의 표정이나 복장이 어른들을 많이 닮았다. ⓒ 김형배


또 월마다 서울 북부, 의정부에 있는 다른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또래들과 연합나들이를 한다. 서로의 터전을 방문하기도 하고 배움이 있는 곳을 함께 찾아 나서기도 한다. 아이들은 더 넓은 사회와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배움은 더 커질 것이다.

또 하나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터전살이와 들살이를 진행한다. 터전살이는 교사들이 터전에서 아이들과 1박을 하며 밤까지 재미나게 노는 프로그램이다. 들살이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먼 곳으로 이동해 숙박을 하며 놀다 오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떠나 생활하면서 더욱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하룻밤 또는 이틀밤을 보내고 터전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맞이할 때는 마치 휴가나온 아들을 맞이하는 심정이 들기도 한다. 만으로 4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대견해보일 수가 없다.

아이들이 터전살이를 하거나 들살이를 하는 시간은 아마에게도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맞벌이 부부다 보니 지금까지 아이들 때문에 아내와 단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어머님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나마 여유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 과거에 우리 아이를 맡아 보시다 디스크를 다쳐 수술대에 오르도록 만든 불효자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우리 부부는 예전 연애하던 것 마냥 저녁식사를 오붓하게 즐겼다. 그리고 손 꼭 잡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늦은 밤 팔짱을 끼고 길을 걸으니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누군가 그랬다. 아이들 들살이 갈 때마다 동생들이 생겨난다고. 충분히 그럴 만했다.

▲ 가을 들살이. 논 옆 길가에서 아이들은 자연을 도구 삼아 배움을 만든다. ⓒ 김형배


4년간 나들이와 들살이를 일상적으로 해온 아이들한테 부모 없이 2박 3일동안 여행을 하고 다녀오는 것이 무슨 별일이겠는가. 수년간의 나들이와 들살이를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알아가고 실천하며 성장했을 것이다. 세상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생각을 넓혀왔을 것이다. 이렇게 공동육아 아이들은 세상 앞에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결국 공동육아 교사가 없으면 꿈같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자신을 소진시켜가는 공동육아 선생님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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