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난 석면피해 주민들의 위대한 승리
[2015 청소년 대학생 일본 환경 연수②] 일본 할머니가 전해주는 환경이야기
청소년·대학생일본환경연수단은 지난 1월 19일~24일 5박 6일 일정으로 오사카·효고현 등 일본 간사이 지역에서 환경연수를 진행했다. 오사카 주민 석면피해 국가 배상 소송 승소 사례, 커뮤니티 디자인 스튜디오L, 아마가사키시 주민 햇빛발전소, 탈핵 강좌, 지구온난화 대책과 COP20 강좌 등 일본 사회의 최근 주요 환경 이슈들을 접하고 왔다.
청소년일본환경연수단은 대전충남녹색연합과 한국가스공사충청지역본부가 주관하고 대전광역시, 서구청, (사)디모스가 후원한 제4회청소년·대학생환경대상의 수상팀과 스텝 20명으로 구성되었다.... 기자 말
석면에 대한 피해가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내구성이 좋고 열을 차단하는 성질이 있어 '불멸의 물건'이라고도 불리던 석면은 산업혁명 이후 건축자재, 전기제품 등 3000여 종류의 제품 제작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최근 석면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석면이 부서지면서 생성되는 분진은 공중에 퍼지게 되는데, 이때 석면의 결정은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그대로 흡수된다.
석면 가루는 폐에 달라붙어 폐선유증, 폐암악성증피종 등의 질병을 발생시킨다. 이에 일본,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도 2009년부터 석면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기관인 국제암연구소(IRAC)와 미국 산업안정 보건청(OSHA)은 사람의 호흡기에 영향을 주는 석면을 1급 발암 물질로 지정했다. 석면은 이제 불멸이 아닌 파멸의 물건이 되었다.
석면, 1급 발암 물질로 지정...
2015 청소년·대학생 일본환경연수단은 지난달 19일, 일본 센난 지역을 방문했다. 연수단은 센난 지역 석면 피해 소송 원고단을 만났다. 피해자들은 센난에 정식 등록되어 있었던 석면공장의 개수는 약 60개 정도였으나 실제로는 2006년까지도 약 200여 개의 석면사업장이 존재했다고 전한다.
일본 정부가 석면 시설 수를 파악하면서 20명 이하의 사업장과 가내 수공업은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면 피해자들의 규모는 아직까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1960년대는 일본의 고도성장기 직전이었다. 당시 일본정부는 석면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석면방직을 센난 지역의 특화 산업으로 강요했다.
노동자 중에는 2차 대전 전후로 한국에서 건너온 재일교포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일본 국민도 존재했다. 일이 힘들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10대부터 석면공장에서 일한 사람, 자녀들을 맡길 곳이 없어 공장에 데려온 노동자도 있었다. 석면 피해는 이렇게 어린아이들에게도 번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석면공장 노동자들은 호흡기 질환에 시달렸다. 하지만 석면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던 노동자들은 그 질병의 원인을 자각하지 못했다. 일본은 1971년, 환경청을 설치하여 석면을 특정 화학물질로 규정하였고 그 때부터 석면 분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언론과 논문을 통해 발표되기 시작했다.
센난 석면 피해자들은 2005년 일어난 '쿠보타 쇼크' 사건을 바탕으로 석면 피해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석면소송을 제기했다.
* 쿠보타쇼크란? 일본 석면공장 노동자 카주코 후루가와가 남편이 석면으로 사망하자 '석면 유가족협회'를 창립하는 등 석면 피해를 널리 알려 쿠보타 회사로부터 석면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아낸 사건.
2010년 5월, 오사카 지방법원에서 정부는 석면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원고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2011년 8월 있었던 오사카 고등법원 재판에서는 원고 측이 패소하게 되었다. 정부와 피해자들 사이의 긴 싸움은 일본 대법원에서 결정됐다.
2014년 10월, 일본 대법원은 일본 정부의 위법을 인정해 원고 측에 배상을 명령했고 석면 피해자들은 마침내 정부를 상대로 승리했다. 석면 피해로 인한 두려움 속에서 승소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지난 1월 18일 일본 정부의 후센 노동성 장관은 센난을 방문하여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도 센난의 석면관련 피해를 인정한 것이다.
한국, 일본에서 건너온 석면공장 많다
우리나라도 경제개발 시기에 일본에서 건너온 석면공장이 많다. 특히 충남 지역의 경우 과거 보령, 홍성, 예산, 태안 등에 석면 공장이 있었지만 정부는 마땅한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충남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석면광산 피해 대책지원단을 만들어 힘겨운 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전시에는 석면피해 구제법이 있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이나 구제는 미비한 상태이다.
센난 석면 피해는 석면에 대한 시민의 무지와 정부의 묵인으로 최악의 상태까지 도달했었다. 그럼에도 이뤄낸 센난의 승리는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민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한국엔 일본에서 건너온 석면공장이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 방안이 도출되지 않은 상태이다. 어떠한 지원으로도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앞으로의 아픔들이 보상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사과와 지원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며, 시민들도 우리 이웃의 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도 센난 주민들의 노력과 희생을 교훈 삼아 제 2의 센난을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기사 작성 : 김민석(대전고1), 이창진(서일고2), 임나경(서일여고1)
청소년일본환경연수단은 대전충남녹색연합과 한국가스공사충청지역본부가 주관하고 대전광역시, 서구청, (사)디모스가 후원한 제4회청소년·대학생환경대상의 수상팀과 스텝 20명으로 구성되었다.... 기자 말
석면에 대한 피해가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내구성이 좋고 열을 차단하는 성질이 있어 '불멸의 물건'이라고도 불리던 석면은 산업혁명 이후 건축자재, 전기제품 등 3000여 종류의 제품 제작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최근 석면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석면이 부서지면서 생성되는 분진은 공중에 퍼지게 되는데, 이때 석면의 결정은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그대로 흡수된다.
석면 가루는 폐에 달라붙어 폐선유증, 폐암악성증피종 등의 질병을 발생시킨다. 이에 일본,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도 2009년부터 석면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기관인 국제암연구소(IRAC)와 미국 산업안정 보건청(OSHA)은 사람의 호흡기에 영향을 주는 석면을 1급 발암 물질로 지정했다. 석면은 이제 불멸이 아닌 파멸의 물건이 되었다.
석면, 1급 발암 물질로 지정...
▲ 센난지역 석면의 잔해오사카 센난. 폐쇄된 석면공장 창틀 사이로 석면 포대 자루가 방치 되어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2015 청소년·대학생 일본환경연수단은 지난달 19일, 일본 센난 지역을 방문했다. 연수단은 센난 지역 석면 피해 소송 원고단을 만났다. 피해자들은 센난에 정식 등록되어 있었던 석면공장의 개수는 약 60개 정도였으나 실제로는 2006년까지도 약 200여 개의 석면사업장이 존재했다고 전한다.
일본 정부가 석면 시설 수를 파악하면서 20명 이하의 사업장과 가내 수공업은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면 피해자들의 규모는 아직까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1960년대는 일본의 고도성장기 직전이었다. 당시 일본정부는 석면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석면방직을 센난 지역의 특화 산업으로 강요했다.
노동자 중에는 2차 대전 전후로 한국에서 건너온 재일교포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일본 국민도 존재했다. 일이 힘들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10대부터 석면공장에서 일한 사람, 자녀들을 맡길 곳이 없어 공장에 데려온 노동자도 있었다. 석면 피해는 이렇게 어린아이들에게도 번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석면공장 노동자들은 호흡기 질환에 시달렸다. 하지만 석면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던 노동자들은 그 질병의 원인을 자각하지 못했다. 일본은 1971년, 환경청을 설치하여 석면을 특정 화학물질로 규정하였고 그 때부터 석면 분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언론과 논문을 통해 발표되기 시작했다.
센난 석면 피해자들은 2005년 일어난 '쿠보타 쇼크' 사건을 바탕으로 석면 피해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석면소송을 제기했다.
* 쿠보타쇼크란? 일본 석면공장 노동자 카주코 후루가와가 남편이 석면으로 사망하자 '석면 유가족협회'를 창립하는 등 석면 피해를 널리 알려 쿠보타 회사로부터 석면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아낸 사건.
▲ 센난석면을이기는모임연수단이 만난 센난지역석면피해소송 원고단. 왼쪽부터 이시카와, 오카다(원고 공동대표), 다케무라, 아까마스, 마츠모토 씨. ⓒ 대전충남녹색연합
2010년 5월, 오사카 지방법원에서 정부는 석면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원고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2011년 8월 있었던 오사카 고등법원 재판에서는 원고 측이 패소하게 되었다. 정부와 피해자들 사이의 긴 싸움은 일본 대법원에서 결정됐다.
2014년 10월, 일본 대법원은 일본 정부의 위법을 인정해 원고 측에 배상을 명령했고 석면 피해자들은 마침내 정부를 상대로 승리했다. 석면 피해로 인한 두려움 속에서 승소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지난 1월 18일 일본 정부의 후센 노동성 장관은 센난을 방문하여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도 센난의 석면관련 피해를 인정한 것이다.
한국, 일본에서 건너온 석면공장 많다
▲ 센난 방문 후 참가자 후속활동19일 저녁, 센난을 방문한 후 참가자들은 센난지역 석면피해와 원고단의 승소, 한국 석면문제의 해결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우리나라도 경제개발 시기에 일본에서 건너온 석면공장이 많다. 특히 충남 지역의 경우 과거 보령, 홍성, 예산, 태안 등에 석면 공장이 있었지만 정부는 마땅한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충남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석면광산 피해 대책지원단을 만들어 힘겨운 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전시에는 석면피해 구제법이 있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이나 구제는 미비한 상태이다.
센난 석면 피해는 석면에 대한 시민의 무지와 정부의 묵인으로 최악의 상태까지 도달했었다. 그럼에도 이뤄낸 센난의 승리는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민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한국엔 일본에서 건너온 석면공장이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 방안이 도출되지 않은 상태이다. 어떠한 지원으로도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앞으로의 아픔들이 보상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사과와 지원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며, 시민들도 우리 이웃의 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도 센난 주민들의 노력과 희생을 교훈 삼아 제 2의 센난을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기사 작성 : 김민석(대전고1), 이창진(서일고2), 임나경(서일여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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