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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에 봄 '춘(春)'이 없는 이유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113] 春

등록|2015.02.24 16:29 수정|2015.02.24 16:29

햇살(日)에 땅거죽(一)을 뚫고 어렵게(屯) 고개를 내민 어린 싹(?)이 숲(林)을 이뤄가는 때를 봄으로 본 것이다. ⓒ 漢典


중국 최대 명절 춘절(春節) 기간 대부분 도시는 마치 <손자병법> 36계 중 하나인 공성계(空城計)를 펼치는 성처럼 텅 빈다.

<삼국연의(三国演義)>에서 제갈공명이 사마의의 대군을 맞아 공성계를 펼치며 성 위에 올라 태연히 거문고를 연주해 적을 물리치는데(彈琴走敵), 춘절 기간 내내 주야를 불문하고 거문고 대신 폭죽 소리가 빈 성 가득 울려 퍼진다. 24절기의 시작 입춘(立春)에 붙여둔 대문의 붉은 대련들만 주인이 돌아오길 우두커니 기다린다.

고향에서 돌아온 주인은 또 한 번 요란한 폭죽소리로 악귀를 쫒고 오랫동안 닫아둔 대문을 열어젖힐 것이다. 대자연의 봄과 상관없이 춘절이 지나면 중국인들의 본격적인 삶의 봄날은 시작된다. 저마다의 일터에서 씨를 뿌리고, 또 일 년 농사를 쉼 없이 일구어 나갈 것이다. 오직 단 한번 쉬는 다음 춘절이 다가올 때까지 말이다.  

봄 춘(春,chūn)은 갑골문에서 소전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보듯 수풀 림(林), 날 일(日), 풀 초(艹), 어려울 준(屯, 진칠 둔)이 각각 다른 조합으로 결합된 형태로 발전해왔다. 따뜻해진 햇살(日)에 땅거죽(一)을 뚫고 어렵게(屯) 고개를 내민 어린 싹(艹)이 점점 숲(林)을 이뤄가는 때를 봄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봄 춘(春)자에 <주역>의 제1괘인 하늘(乾)과 제2괘인 땅(坤)이 있고, 이는 또 제3괘 준(屯, ䷂)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준(屯)은 곧 하늘과 땅의 채움인 만물이 생명으로 비롯해 나옴(物之始生也)이니 곧 봄이요, 청춘이다. 춘(春)자 안에서 하늘과 땅이 만나니, 남녀 간의 정욕, 색정의 의미도 갖게 된 걸로 보인다. 

"흉노의 땅에 풀과 꽃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虯)의 시 <소군원삼수(昭君怨三首)>에 나오는 유명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구절이다. 주인공 왕소군(王昭君)은 나는 기러기가 그 미모에 반해 날갯짓을 멈춰 떨어졌다고 '낙안(落雁)'이라 불리는 중국 사대미인 중 한 명이다.

전한(前漢) 원제(元帝)의 후궁이었으나 가난해서 화공 모연수(毛延壽)에게 뇌물을 주지 못해 초상화가 안 예뻐 황제의 간택을 받지 못하다가, 흉노와의 화친을 위해 호한사단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보내져 평생을 흉노의 땅에서 살다 죽는다.

봄이 왔는데 흉노의 땅이라고 어찌 풀과 꽃이 없겠는가. 늘 보아오던 고향의 풀과 꽃이 없음일 테고,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마음이 생기지 않음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았으리라. 생명이 힘겹게 움을 틔우는 봄은 풀과 꽃으로 오지 않고, 마음의 창문을 열면 불어와 피어나는, 하늘과 땅의 조화와 마음이 만드는 계절임이 분명하다.

<천자문>에 봄 춘(春)자가 없는데, 그건 "하늘 천, 땅 지" 하고 시작하는 순간 이미 만들어지기 때문이며, 굳이 쓰지 않아도 늘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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