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되는 큰애, 1주일 '알바' 시켰더니
[야자 대신 저녁밥 하는 '고딩' 아들 ①] "일해서 번 돈으로 사주는 기분, 좋아요"
▲ 우리 큰애 제굴, 어릴 때 '탑블레이드' 신발이 되고 싶었던 소년. ⓒ 강성옥
중학교 무사히 졸업한 우리 큰애
외판원 청년 그레고르는 자고 일어나보니 커다란 벌레가 되어 있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온다. 생각이 많은 어떤 곰은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마늘과 쑥을 먹으며 견뎌 '웅녀'라는 여자가 됐다. 단군신화에 나온다. 유치원에 다니는 한 아이는 "커서 '탑블레이드' 신발이 될 거야"라고 했다. 최초로 가진 꿈이 무생물, 우리 큰아들 강제굴이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갖자."
여섯 살 밖에 안 된 우리 큰애는 체 게바라가 한 말을 알지 못했다. 얼마 뒤에, 사람이 캐릭터 신발로 변신하는 건 '불가능한 꿈'이라는 걸 알았다. 제굴은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찾은 두 번째 꿈은 편의점 알바. 주말마다 친구들이랑 쏘다니면서 직업의 세계에 눈을 떴나. 뒤이어 찾아온 세 번째 꿈은 피(시)방 알바.
큰애는 컴퓨터 게임 '롤'을 즐겨했다. 게임 하다가 중간에 절대 끄고 나올 수 없는 롤, 나는 식어가는 밥상 앞에서 "제굴아, 쫌!"을 목청껏 외쳤다. 가냘픈(^^) 내 목소리는 어느새 멧돼지와 맞장 떠도 밀리지 않을 만큼 우렁차졌다. 큰애가 '만렙'을 찍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척 해줬다. 중2 여름 방학, 늦잠에서 깨어난 제굴은 네 번째 꿈을 발표했다.
"엄마, 나는 커서 중학교 선생님 할래요. 어른들은 계속 회사 다니는데 선생님은 방학 때 쉬잖아요. 그 때 실컷 게임해야겠어요."
"제굴아, 선생님 되려면 우선 중학교를 졸업해야 해. 너는 수업 시간에 떠들어서 날마다 벌점 날아오잖아. 이러다가는 최종학력이 초졸 될 거야."
올해 2월, 큰애는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고등학생 되니까 각오하고 공부하자"같은 대화는 남의 집 얘기. 나는 큰애에게 "초딩 같은 글씨로 연애편지 쓰면, 여친이 도망갈 거야" 라고 했다. 날마다 공책에 바르게 글씨를 쓰게 했다. 1월부터 2월까지 59일, 큰애는 다해서 7쪽을 필사하고 그만뒀다. 독서는 웹툰이 전부, 똥 눌 때 화장실에서만 책을 읽었다.
긴긴 겨울방학, 나만 늙고 못생겨졌다. 나부터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요새는 "사랑해"라고 문자 보내면 되니까 글씨는 좀 못 써도 되겠지. 한국인 1년 평균 독서가 10권이 안 되는데 제굴은 1월에 <메이즈 러너>시리즈 3권을 두 번 읽었으니까 된 거잖아. 나는 해탈한 사람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제굴에게 거는 기대를 내려놨다. 가짜 득도는 하루도 못 갔다.
"제굴아, 너는 지금이 폭풍성장기(반에서 가장 작던 우리 큰애, 작년에 처음으로 8.5cm 자랐음)야. 밤 11시에는 무조건 자. 그럴 수 있어? 대답 좀 해 봐! 어?"
나는 오후 9시에 큰애와 열 살 터울 나는 꽃차남을 재우러 방에 들어간다. 그러면 큰애는 힙합 음악을 잔잔하게 켠다. 남편이 "욕, 너무 많이 나와서 안 돼"라고 금지해 '롤'을 못하니까 '메이플 스토리' 게임을 한다. <비정상회담>이나 <냉장고를 부탁해>같은 프로그램을 찾아본다. 남편이 밤늦게 퇴근해서 집에 오면, 제굴의 눈은 말똥말똥했다.
뱉은 가래침이 손에 묻자 "으~"
▲ 큰애가 알바하러 갈 곳은 구시가. 큰애에게 버스 노선을 알려주려고 식구 넷이서 함께 버스 타러 나섰다. ⓒ 배지영
지난 일요일인 2월 22일, 남편은 "버스 타러 갈 거야"라고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시내버스를 타는 꽃차남이 팔짝팔짝 뛰었다. 우리 식구들이 여행가는 기분으로 간 곳은 구시가에 있는 한 게스트 하우스. 제굴에게 거기 딸려있는 카페에서 알바 하라니까 "좋아요" 라고 했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까지 하루 3시간씩, 일주일 동안만.
그날은 인턴 알바. 제굴은 점퍼를 벗고 카페 테라스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웠다. 손님이 뱉은 가래침이 손에 묻자 "으~" 신음소리를 냈다. 꽃차남은 "형형, 여기도 있어" "저기 나무속에도 있어" 하며 신이 났다. 바람이 몹시 찼다. 카페는 여행객들로 붐볐다. 참견하는 것에 시들해진 꽃차남은 30분 만에 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큰애에게 말했다.
"우리 아들, 홧팅! 감기 걸리니까 잠바 입고 해."
▲ 카페 주변 청소하는 제굴, 담배 꽁초 줍다가 손님이 뱉은 가래침이 손에 묻어서 "으~" 괴로운 신음 소리를 냈다. ⓒ 배지영
2월 23일 월요일. 제굴은 아침 10시에 집을 나섰다. 버스 노선과 타는 법을 배웠지만 걸어서 갔다. 카페에서 청소하고 주문받고. 손님들은 끊임없이 왔다. 오후 2시, 카페에서 나온 제굴은 집과 반대 방향으로 갔다. 해망굴 앞이었다. 곧 산동네가 나왔다. 당황한 제굴은 계속 걸었다. 항구가 나왔다. 군산공항 간다는 버스 표지판이 보였다.
우리 집이 있는 군산시 나운2동은 아파트 단지 13개로 이루어진 동네. 구시가는 완전 딴판,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근대문화를 보러 오는 여행객이 많아지면서 골목골목은 일본의 어느 도시처럼 되고 있다. 제굴에게 구시가는, 일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공간일 터. 핸드폰이 없는 제굴은 어떤 아저씨에게 핸드폰을 빌려 내게 전화를 했다.
"1시간 반째 이러고 있어요. 어딘지를 모르겠다고요. 완전 짜증나 죽겠어."
"제굴아, 엄마 못 가. 일하고 있어. 돈 있지? 택시 타고 와."
핸드폰을 빌려준 아저씨는 제굴의 사정 얘기를 듣고서는 우리 집까지 데려다줬다. 저녁에는 제굴의 절친 수민이가 자고 간다고 우리 집에 왔다. 길 잃은 게 창피하고 분해서 찌그러졌던 제굴 얼굴은 펴졌다. 나는 더 활짝 피어나라고, 큰애가 좋아하는 쇠고기를 구워주었다. 밥 먹고 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각자 노트북으로 게임을 했다. 제굴은 말했다.
"수민아. 너, 집에 가."
"언제는 같이 자자며?"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 혼자 있고 싶어."
2월 24일 화요일. 전날 그 난리를 치고도 제굴은 "알바 안 가" 소리를 안 했다. 알바 끝나는 시간에 내가 데리러 갔다. 카페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큰애보고 앞서라고 했다. 따라온 꽃차남이 "엄마, 형형 길 몰라서 우리 지금 이러고 다니지?"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큰애 뒤통수가 화나 보였다. 저녁에 수민이가 잘 준비를 해서 우리 집에 왔다. 나는 물었다.
"수민아, 너는 인품이 훌륭한 거냐? 바보냐? 어제 제굴이가 가라고 했을 때 맘 안 상했어?"
"헤~ 저는 인품이 진짜 훌륭해서 그런 일은 괜찮아요."
2월 25일 수요일. 수민이는 친구들이랑 논다고 가고, 제굴이는 40분 동안 걸어서 카페에 갔다. 그 날은 난로까지 싹 청소하고, 또 걸어서 집으로 왔다. 손님이 많아서 점심은 항상 거르기 때문에 몹시 배고프다. 오자마자 꽃차남한테 "야, 라면 끓여 와!" 큰소리를 쳤다. "엄마, 내 생애 첫 노동이야. 완전 힘들어요"라고 했다. 저녁도 안 먹고 7시 반부터 잤다.
2월 26일 목요일. 꼬박 12시간 반을 자고 난 제굴은 개운해 보였다. 나는 제굴에게 왜 버스 안 타고 걸어 다니냐고 물었다. "버스 잘못 타면, 스케일 커져요. 전북외고나 공항까지 가 버리면 어떡해요?"라고 했다. 1시간에 5,580원 받는데 일주일 동안 왕복으로 버스 타고 다니면 1만5천 원이 넘기 때문에 안 된다고도 했다. 알바 마치고 온 제굴은 말했다.
"단체 손님이랑 스무디 종류 별로 시키는 손님들은 너무 힘들어. 주문도 계속 밀리고요."
고등학생 되는 아들 생활전선에 내보낸 '비정한' 아버지?
▲ 카페에 온 손님들이 가고 나면 테이블 닦고 정리한다. ⓒ 강성옥
2월 27일 금요일. 남편의 직장 동료 중 한 사람이 카페에서 일하는 제굴에게 와서 물었다. "너, 강성옥씨 아들이지?"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남편은 고등학교 입학하는 아들을 생활전선에 내보낸 '비정한' 아버지가 되었다. 제굴의 사촌누나 서연은 "카페 알바는 하는 게 아니에요. 매니저들이 진짜 장난 아닌데. 자기들이 무슨 재벌인 줄 알고 갈궈요"라고 했다.
2월 28일 토요일. 제굴은 카페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나는 "무슨 알바가 편하게 엄마 차 얻어 타고 다니냐"라고 하면서 옷을 챙겨 입었다. 데려다 주었다. 토요일이니까 꽃차남이랑 밖을 돌아다녔다. 박물관 갔다가 대보름 굿 보고 집에 오니까 오후 5시, 제굴은 속옷 차림으로 게임 중. 아침도 안 먹고 나갔는데 오자마자 컴퓨터를 켠 모양, 성질이 났다.
"강제굴, 뭐하고 있어?"
"왜 화내요? 알바 갔다 와서 쉬고 있잖아요."
"너는 네 아들이 아침도 안 먹고, 알바 하느라 낮에도 밥 못 먹는데, 집에 오자마자 게임 하면 좋겠냐? 네 아들이 그러면 좋겠냐고?"
제굴은 컴퓨터를 끄고 식탁에 와서 앉았다. 나는, 아침에 남편이 해놓고 간 갈비를 데웠다. 새로 김치를 헐어서 밥상을 차렸다. 서로 별 말 안 했다. <무한도전>할 때야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보면서 많이 웃었다. 집에 온 남편이 꽃차남이랑 윷놀이를 하고 또 나갔다. 나는 내 방으로 왔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장위안 엄마를 보던 제굴이 말했다.
"엄마, 사랑해요."
"응! 엄마도."
3월 1일 일요일. 큰애가 농구 가는 날이다. 제굴은 "농구 수업료 1시간에 12,500원. 알바 2시간이에요"라고 했다. 남편이 "알바는 약속이야"라고 했다. 우리 식구는 다 같이 카페에 갔다. 제굴은 옷 갈아입자마자 주문을 받았다. 탁자 닦고, 바닥에 떨어진 작은 쓰레기를 주웠다. 손님들이 일어선 탁자를 닦기 위해 또 행주를 빨았다. 우리는 제굴만 두고 왔다.
남편은 집에 와서 돈을 계산했다. 최저임금 5,580원에 하루 3시간씩 일주일. 총 117, 880원을 봉투에 담았다. 그 봉투는 카페 사장님(남편의 절친)한테 전해졌다. 사장님은 제굴에게 줬다. 제굴은 돈을 받고 카운터로 갔다. 엄마한테 줄 밀크 쉐이크, 동생한테 줄 딸기 스무디와 젤리를 주문했다. 알바 2시간과 맞먹는 11,100원. 나는 집에 온 큰애에게 잔소리 했다.
"강제굴, 힘들게 일해서 이런 걸 뭐 하러 사?"
"그냥 마셔요."
"다음부터 사지 마. 돈 아까워."
"엄마, 나는 서연이 누나(친남매처럼 자란 사촌)기분을 알겠어요. 누나가 알바해서 나한테 돈가스 사줬거든. 그때 진짜 좋았을 거야."
▲ 1주일간 알바해서 117,880원을 번 우리 큰애. 알바 2시간과 맞먹는 돈을 들여서 엄마와 동생에게 줄 음료를 샀다. 직접 번 돈으로 사는 기분, 엄청 좋았다고 했다. ⓒ 강성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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