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망신주기,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닮았다
[게릴라칼럼] 검찰과 국정원, 언론의 '무서운' 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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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시절보다 퇴임 후에 더 인기 있었던 한 대통령은 하루아침에 검찰에 불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1억 원짜리 금시계 두 개가 버려졌다는 봉하마을 논두렁으로 민심의 등을 떠민 건 언론이었다. 검찰과 국정원 그리고 두 기관의 정점에 있던 이명박 정권의 음모는 애초 언론의 의심 대상이 아니었다. 발가벗겨지고 덧칠해진 대통령은 얼마 후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보수 세력들은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했다. 국장(國葬)도 불가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례식장에서 야유가 쏟아지자, 헌화를 멈추고 뒤돌아보던 이명박 대통령의 그 서늘한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자살'이란 단어가 덮어버린 진실, 그 뒤에는 검찰과 국정원, 언론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망신주기' 공모가 숨어 있었다.
지난달 24일,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를 통해 '논두렁의 시계'는 국정원이 말을 만들어 언론에 흘린 것임을 폭로했다. 다분히 면피의 의도가 담긴 발언이다. 그러나 가장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국정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직·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망신주기에 숟가락 얹었던 검찰, 할 말 있나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600만 달러 뇌물 수수 혐의 사건에서 당시 검찰이 보여준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는 국정원에 책임을 떠넘긴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인규 전 부장의 말이 100% 사실이라고 해도, 수사중인 사건에 대해 언론에 지속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한 검찰의 행위는 위법이다(그것이 비록 빨대들의 소행이라고 해도). 이인규 전 부장의 말대로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망신주기를 기획했다고 해도, 수사중인 검찰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거라는 게 내 판단이다.
그런데 이인규 전 부장의 폭로를 보고 있자니, 뭔가 이상하다. 국정원의 당시 행태는 분명 위법이다. 그런데 위법과 불법을 직접 단죄할 수 있는 검찰은 왜 국정원을 그냥 보고만 있었던 것인가. 물론 당시 검찰의 행동을 보면 의외로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두하기 전부터 '포괄적 뇌물죄'를 운운하며 망신주기에 숟가락을 얹었기 때문이다.
▲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포함해 전체 21명을 기소하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 의혹 부분은 내사 종결했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09.6.12 ⓒ 연합뉴스
이번 이인규 전 부장의 폭로는 국정원이 검찰과는 또 다른 '노무현 망신주기'를 준비하고 실행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나오지도 않는 이야기를 국정원은 각색했고 언론을 통해 유포했다. '1억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국정원의 말 만들기는 국민들의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1억 시계'라는 뇌물의 상징성과 '논두렁에 버렸다'는 비도덕적 행위는 일순간 '노무현 망신주기'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이쯤 되면 자살과 타살의 경계는 모호하다. 검찰과 국정원의 공모 아닌 공모가 사저로 찾아오는 방문객들과 손을 맞잡던 대통령을 부엉이 바위로 밀려 올렸다는 세간의 지적은 단순히 지나친 과장이라 말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국정원의 악행을 폭로했다고 검찰의 악행이 반감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피의사실공표에 의한 망신 주기, 국정원의 거짓 공작에 의한 망신 주기. 도 긴 개 긴일 뿐 죄의 경중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또 두 권력기관 뒤에 숨은 검은 그림자는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다.
무한 반복을 거듭하는 노 전 대통령 망신주기
영화 <남영동 1985>에서 이두한은 김종태를 고문하면서 회중시계를 본다. 물고문, 전기고문을 하면서도 김종태를 죽이지 않기 위해, 죽음 직전의 가장 심한 고통을 안기기 위해 회중시계로 철저히 고문 시간을 계산하는 것이다. 이인규씨의 폭로에서 고문기술자 이두한의 회중시계가 연상되는 건 검찰이나 국정원 모두 노무현 망신주기를 철저히 계획했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했다는 점이다.
고문기술자 이두한이 김종태에게 가장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 회중시계를 꺼내들었듯이 검찰과 국정원은 죽음이나 구속보다 더한 망신을 주기 위해 언론을 통해 수사 정보를 흘리거나, 악의에 찬 거짓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나 국정원의 계산은 빗나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망신과 능욕보다는 죽음을 택했다. 검찰이나 국정원 모두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도 다르지 않다. 부랴부랴 사건을 덮었고 공모자들이었던 검찰과 국정원은 입을 닫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근 낸 회고록 어디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관한 언급은 없다.
노무현 망신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는 남북 대화록을 꺼내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종북 대통령이라고 몰아세웠다. 경제가 어려워진 이유는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라고 한다. '노무현 망신주기'는 그가 죽음을 맞은 이후에도 무한 반복을 거듭하며 진화(?)하고 있다. 여당이나 보수 세력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과 TV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망신주기'가 이어지고 있다.
반복된다는 것은 망신주기를 통해 소위 '재미'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의 잣대가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공소권 없음 결정은 검찰과 국정원, 이명박 정권에 면죄부가 되었다. 남북 대화록 유출에 대해선 사건에 걸맞은 어떤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인규 전 부장의 폭로 내용은 국정원의 위법 행위다. 당시 검찰의 위법 행위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여전히 검찰과 국정원, 현 정권의 뒤에서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들이댔던 그 잣대라면 이명박 정권의 자원외교 폐단이나 국정유린은 벌써 몇 번이나 법의 심판대 위에 올라야 했다.
2009년 국정원과 검찰의 대통령 망신주기 수사는 비극적 역사를 잉태했다. 공모자들에게는 영원히 닫혀 있어야 할 판도라 상자가 또 다른 의도에 의해 열린 셈이라고 본다. 이제 국민이 그 판도라 상자를 손에 넣어야 한다. 검찰과 국정원을 바르게 세우고, 이명박 정권의 국정유린을 단죄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국민의 지혜와 의지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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